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한결 Jun 24. 2022

이번 달 카드 얼마나 썼지?

수입 0원, 눈물나는 방구석에서 시작하다.

‘저번 달에 카드값이 얼마나 나왔었더라…’
‘분명 더 싼 게 있을 텐데… 할인쿠폰은 없나?’
‘왜 꼭 한 번에 다 떨어질까? 도대체 기저귀는 언제 뗄 수 있는 거지?’

아이 용품을 사기 위해 온라인 쇼핑 사이트들을 뒤지고 또 뒤진다. 어떻게든 좀 더 저렴한 것을 찾느라 손가락이 분주하다. 배송비는 있는지, 배송비를 합쳐서라도 단돈 1원이라도 더 저렴한 곳이 있는지 눈에 불을 켜고 알아본다. 매달 필요한 것들인데도 매번 최저가를 비교하고 구매를 한다. 그래야 그나마 억울하지 않았다. 꼭 필요하다는 걸 알면서도 돈이 없다는 사실에 안 사고 싶어진다. 장바구니에서 더 뺄 건 없는지 계속해서 살핀다. ‘결제하기’ 버튼을 누르는 손가락을 바라보면서 머릿속은 다시 분주해진다.

‘이제 이번 달 남은 날짜 동안 최대한 돈 쓰면 안 되는데… 더 살 건 없겠지?’

아이가 아프게 태어났다. 살리기 힘들다 했지만 살려냈다. 살리기만 하면, 내 옆에서 숨 쉬고 클 수만 있다면 세상에 바랄 것이 없었다. 분명 그랬다. 하지만 현실은 그 마음을 유지하기엔 너무 가혹했다. 결혼 전, 종종 TV에서 중증환자가, 혹은 가족 중에 중증환자가 있지만 비용이 감당이 안 되어 치료를 못 받고 도움의 손길을 요청하는 광고나 다큐멘터리를 봤었다.

‘그래도 어떻게든 치료를 해야지… 저렇게 치료를 포기하면 되나… 애도 있고 가족이 있는데…’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었다. 참 안일하고 무지한 생각이었음을 지금은 안다. 물론 태아보험이 있었다. 하지만 세상 어느 엄마가 자신의 아이가 아프게 태어날 거라 예상하고 무조건 비싸게 보험을 들까? 나 역시 당연히 건강하게 태어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래서 당시에 경제적으로 부담되지 않을 정도로만 저렴하게 들어 놓았다. 그래, 이 보험이 있어 더 최악의 상황은 막을 수 있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8개월간의 수술비 등을 포함한 병원비는 그야말로 상상을 초월했다. 신랑은 마이너스 통장을 만들 수밖에 없었고, 나 역시 주부로 거의 되지 않는 대출을 꾸역꾸역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빚은 쌓여만 갔고, 늘 통장은 텅장이었다.

퇴원하고 집으로 데려오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한 달도 채 되지 않아 그 생각은 철저하게 짓밟혔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에게 필요한 분유, 기저귀와 같은 필수품 뿐 아니라, 수시로 해줘야 하는 석션(기관절개를 하면 자연적으로 인체에서 가래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보호자는 수시로 가래를 빼주는 석션을 해줘야 한다.), 소독 등에 필요한 의료용품 비용이 상상을 초월했다. 의료용품이 10가지가 있었다면 그중 9가지는 일회용품이었다. 즉, 한 번 사용하면 바로 버려야 하는 것들이었다. 모두 멸균제품이었기 때문이다. 병원에서 감염 등의 위험이 있어 재사용은 절대 안 된다는 말을 귀에 딱지 앉게 들었다. 그런데도 늘 새것을 뜯고 사용한 후 버리는 손은 덜덜 떨려왔다.

‘이렇게 고작 한 번 쓰고 버려야 하는 건데 뭐 이리 비싼 거야! 도대체 하루에 쓰레기통으로 가는 돈이 얼마인 건지…’
‘도대체 우리 아들은 한 달에 얼마를 쓰는 거지… 후…’

퇴원만 하면 금이야 옥이야 사랑만 주고 키우겠다는 그 마음은 어느샌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렸다. 아이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했으니 말이다. 내 배 속으로 낳았으니 이쁜 걸 말해 뭐하겠는가. 이쁘지 않다는 게 아니다. 당연히 이쁘고 살아줘서 고마운데, 그 이상으로 현실이 고달팠다. 모든 걸 다 내려놓고 도망갈 수 있다면 도망가고 싶었다. 항상 그 생각의 시작에는 ‘돈’이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의 답은 늘 안개 속에 있었다. 결코 선명하게 보이지 않는.

“띠링~! 띠링~! 띠링~!”

카드값을 알려오는 문자가 온다. 분명 아낀다고 아꼈는데도 이번 달 역시 생각했던 예산을 훨씬 뛰어넘은 숫자가 눈앞에 보인다.

‘하.. 이걸 또 신랑한테 어떻게 얘기하지?’

카드값을 입금해주면서 단 한 번도 뭐 이리 많이 썼냐고 타박한 적 없었지만 어느샌가 스스로의 눈치를 보고 있었다.

“여보, 이번 달 생활비 00원이 필요해… 아낀다고 아꼈는데, 병원비에 이만큼 들어가고… 민준이 석션 카테터 이번에 몇 박스 사고…”

굳이 물어보지 않음에도 혼자 작아져서 해명한다. 성실하게 회사 다니며 꼬박꼬박 모든 월급을 가져다주고 마이너스 통장에서 빼서라도 돈을 주는 신랑을 알기에 뭔가 그냥 미안해진다. 사실 내가 잘못한 건 하나도 없는데 말이다.

그렇게 ‘카드값’, 그 3글자는 하루하루 시간이 흐를수록 나를 옥죄어왔다. 마치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에 갇힌 것처럼. 나오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 발이 더 깊이 빠지는 수렁 속에 빠진 것같이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오늘도 집에서 일을 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