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방식,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세 번째 이야기
코로나가 시작되고 1년이 넘은 시점, 지인을 비롯한 많은 분들에게 들었던 말들이다. 어린이집, 유치원 등을 가는 시간만이 육아맘에게 허용되는 달콤한 자유였으니까 말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밥을 먹이고, 옷을 입히고, 가방을 챙겨서 등원 버스를 태우기 위해 달리는 엄마의 모습. 그러고 나면 하루 중 몇 시간은 보장되는 엄마의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 19라는 아직까지는 별다른 대책도 답도 딱히 없는 이 바이러스는 그 달콤한 엄마의 시간을 불투명하게 만들어버렸다. 그리고 눈 뜨면 밥을 먹이고, 치우고 나면 또 밥을 차려서 먹이고, 또 치우고 나면 밥을 먹인다. 그렇게 하루가 번갯불에 콩 궈 먹듯 순삭 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진 2년 반쯤 전이었을까. 새벽 3-4시 즈음이었던 거 같다. 나도 모르게 출구도 없는 깜깜한 터널 속에 있는 그 암담함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려고 했던 순간, 이 세상의 끈을 놓으려고 했던 순간 우리 아들의 인기척으로 제정신을 차린 뒤 바로 신랑에게 보냈던 문자이다. 기관절개를 한 지 얼마 안 되어 아이는 잠이 들어도 엄마인 나는 밤수를 하고 수시로 석션을 해줘야 했다. 이게 잠인지 뭔지 쪽잠도 아니고 사람이 사는 게 아니었다. 친정살이를 하면서 주말부부를 하다 보니, 그 고단함과 힘듦은 나눌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오로지 엄마인 나의 몫이었을 뿐. 그때 알게 되었다. 사람이 정신을 놓는다는 건 정말 한순간이라는 것을. 살아야겠기에 신랑에게 무조건 방법을 찾으라고 했다. 그렇게 상담을 받기 시작했다.
'우울증'이라고 부르는 녀석, 마음의 감기는 너무도 쉽게 우리의 마음을 침범해온다.
'난 그런 거 안 걸려!'
'난 이 정도는 괜찮아'
이런 셀프 위안 따위 마음의 감기에겐 통하지 않는다는 걸 경험해보고서야 알았다. 상담을 받으면서 선생님께 계속 받았던 질문이 있었다.
"뭐가 그렇게 불안하세요?"
"아기가 잠들거나 해서 좀 짬이 생기면 그땐 뭘 하세요?"
처음엔 제대로 대답을 못했다. 뭐라 답해야 할지 잘 몰랐었다. 나 조차도 내가 무엇이 그렇게 불안한지 명확하게 몰랐으니까. 말로는 "혹시라도 아이가 자는 동안 목에 삽입되어 있는 기관절개관을 빼기라도 할까 봐요."라고 말하지만 한편으로는 일단 잠들면 깊이 잠드는 아이의 성향상 그럴 가능성은 아주 낮다는 걸 마음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렇게 말하곤 했다. 그래서 아이가 잠들어도 아이를 보고 있거나 아니면 못한 샤워를 하거나 설거지를 한다고, 그렇게 대답했다. 내 마음임에도 단 한 번도 제대로 마주하고 봐주지 않았던 것이다. 계속해서 외면을 하니 그 마음이란 녀석은 결국 봐달라는 외침을 '마음의 감기'로 표현해버렸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리고 조금씩 조금씩 곪아가고 있었다.
더 이상은 외면해서는 안 될 거 같아서, 외면하고 싶지도 않아서, 살려면 그래야 할 거 같아서 조금씩 마음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아이가 낮잠 든 시간, 피곤하지만 잠을 자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씻고 싶지도 않았다. 그저 생각나는 건 친정집 앞 카페의 달콤한 바닐라라테 한 잔이었다. 그래서 그냥 눈곱만 대충 손으로 땐 채로 카페를 갔다. 바닐라라테를 테이크 아웃해서 동네를 한 바퀴 돈다. 서울에서의 공기가 좋아봐야 얼마나 좋겠냐만은 실질적인 공기의 질이 문제가 아니었다. 그 순간 들이마시는 그 공기는 나에겐 자유의 공기였다. 10분이건 30분이건 시간의 정도는 중요하지 않았다. 거기에서 호흡하는 난 살아있는 사람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다시 세상을 살아보고 싶어 졌다. 출구가 없는 터널 속이라 해도 '출구를 만들면 되는 거지 뭐!'라는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까지 생기게 되었다.
코로나 19로부터 엄마가 살아남는 방법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다시금 살아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게 되면서 조금씩 '마음의 감기'와는 이별을 고했다. 그리고 매일 조금씩 내 마음으로의 여행을 떠나는 시간을 갖는다.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닌 내 마음이 하고 싶다고 하는 것을 한다. 마음이 하는 말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귀담아 들어준다. 그런 생활이 익숙해졌을 무렵 코로나 19는 찾아왔고 내 마음은 코로나 19로부터 크게 위협을 받지 않을 수 있었다.
가정보육, 홈스쿨링...
이런 단어들과 언제 완전히 이별을 고할 수 있을지 아직은 모른다. 언제 올 지 모르는 그 순간을 기다리면서 힘들다고 외치는 마음을 억누르지 말자. 그 외침에 귀 기울여주자. 아이와 함께 하는 일상이지만 자세히 하루를 살펴보면 아이와 24시간 자석처럼 붙어있지는 않는다. 그저 내가 그렇게 생각할 뿐. 아무것도 아니 것처럼 여겼던 그 마음의 외침 소리를 향해 여행을 떠나보는 것, 결국 이것이 스스로 사랑하는 방법이다. 그리고 코로나 19로 인해 감기에 걸린 마음이 나을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