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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혹했던 나의 사이판 여행기

- 이런 여행은 두번 다시 가고싶지 않다 -

by Rio

지난 1월 3일. 나는 아내와 두 딸과 함께 따뜻한 남쪽나라 - 사이판으로 5박 6일간 여행을 떠났다. 말이 5박 6일이지 사실 금요일 밤 비행기로 떠나 토요일 새벽에 도착하고, 그 다음주 수요일 새벽에 출발하는 일정이었으니 사이판에는 토요일,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이렇게 4일간 떠나는 여행이었다.


지난 12월 중순경, 인생에서의 마지막 육아휴직기를 보내고 있던 아내가 복직전 가족들과 함께 해외여행을 떠나고 싶다고 투덜거렸다. 그리고 잠시후 아내는 나에게 스카이스캐너앱 상에 표시된 사이판행 저가 항공권을 보여주었고 너무나도 저렴한 가격에 나 역시 두번 다시 없을 기회다 싶어 아내의 의견에 동의하였다.


취소 불가조건의 항공권을 구매했으니, 이제는 여행을 뒤로 물릴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팀장님께 3주뒤

휴가를 쓴다고 보고를 드렸다. 팀장은 눈이 휘둥그레지며 찜찜한 표정으로 잘 다녀오라고 말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팀장은 수시로 나에게 휴가 떠나기전 일을 꼭 마무리하고 가라고 신신당부하였다. 물론 휴가를 떠나기 전에는 내가 맡은 일을 온전히 마무리 짓고 떠나는 것은 당연지사다. 하지만 이런 신신당부를 자주 해댄다는 것은 내 입장에서는 휴가에 대한 눈치로 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간이 지날수록 나에게 떨어지는 업무량이 갑자기 늘어나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내가 담당했던 업무량이 늘어난 탓이기도 하였지만 팀장의 업무지시가 더욱 구체화 되면서 업무량은 두배 세배로 불어나고 있었다.


게다가 팀장은 더욱 나를 다그치기까지 했다. 차마 휴가 떠나지 말라는 말은 안했지만 언제까지 이것은 끝내놓으라는둥, 언제까지 이것을 보고하라는둥 자꾸만 업무로 나를 압박하는 듯한 느낌이었다.


과도한 업무량과 압박감은 나를 잦은 야근으로 이끈 것은 당연지사. 심지어 점심까지 굶어가며 일하기도 하였다. 이런 피폐한 삶에서 지처가던중, 굳이 내가 왜 사이판 여행을 가기로 결심했는지에 대한 후회가 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내의 마지막 육아휴직이기에 늘 일정을 맞추기 어려웠던 우리 가족이 언제 한번 해외여행을 다시 가겠는가 라는 생각에 나는 후회를 애써 외면하였다.


더 큰 문제는 사이판에 도착하고 나서 발생하였다. 새벽녘에 도착한 사이판 숙소에 들어서자 피곤함에 그대로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하지만 그날부터 나는 고열과 오한이 밀려옴을 느꼈다. 아침이 되어 일어나자 근육통까지 밀려온 터라 나는 이내 독감에 걸렸음을 직감했다.


상비약으로 가져온 애드빌을 먹으니 식은땀이 나며 고열과 근육통이 사라졌지만 이내 저녁이 되면 고열과 근육통이 다시 찾아왔다. 나의 독감 때문에 예정되었던 현지 투어를 취소하였고 주로 숙소와 바닷가에서 아이들과 물놀이를 하는 시간을 보냈다.


아침에 기상하여 애드빌을 먹어 통증이 완화되면 바닷가에 가서 스노클링 하고, 맛있는 음식도 먹기도 하였지만, 저녁 먹을때쯤 되면 음습하는 고열과 근육통, 그리고 지독한 코막힘과 기침 증상은 사이판의 아름다운 풍경과 맛있는 산해진미의 즐거움을 떨어뜨렸다.


이쯤 되니 내가 왜 독감에 걸리게 되었는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일단, 독감 예방주사를 맞지 않았다. 그리고 여행 떠나기전 잦은 야근과 결식으로 내 몸은 이미 피폐해져 있었다. 게다가 인천공항에서는 마스크조차 착용하지 않은 채 돌아다녔으니, 아마도 수많은 인파 속에서 나는 독감에 자연스레 감염된 듯하였다.


전체 여행일정중, 하루를 제외하고 모든 일정을 숙소에서 보내다 보니 여기가 사이판인지 한국인지 싶을 정도였다. (사이판 숙소에는 한국인들이 다수였다.) 물론 아이들은 숙소내의 물놀이 시설과와 운동시설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지만, 나는 숙소 밖 사이판 현지 투어를 가지 못한 것이 뭇내 아쉬웠고 시간이 갈수록 일상이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또한, 직장에서 예상치 못한 사고들이 벌어졌을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이 불현듯 엄습하였고 그럴 때마다 나는 핸드폰 카톡창을 확인하곤 하였다.


여행을 다녀와서 나는 곧장 병원으로 달려갔다. 나의 증상을 설명하고 독감키트 검사를 실시하였다. 하지만 돌아온 의사의 말은 웃프기 그지없었다.

"독감 음성입니다. 아마 지난 5일간 해열제 드시고 하시면서 독감이 치유된거 같아요."


휴가기간 내내 독감 때매 제대로 제대로 즐기지도 못하였는데 돌아와서 다음날 출근할 때 되니 독감이 다 나았단다. 정말 그날부터 나는 고열과 근육통을 더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다. 하지만 지독한 고막힘과 기침, 가래 증상은 계속되었고 이는 나에게 추가적인 약물 복용기간을 요구하였다.


여행에서 돌아온지 2주가 지난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참으로 고생스러운 여행이었다. 휴대폰에 찍어둔 아름다운 배경 사진도 나에게는 그닥 그리운 추억으로 다가오질 않는다.


여행은 두발로 걸으며 현지 문화를 체험하는 것이라는 사고를 가진 나에게 리조트에서 집순이처럼 지내온 이번 여행은 그닥 즐거운 시간으로 기억되지 않는다. 여행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건강임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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