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4호에서의 기록
오늘은 9월 4일이고, 나는 지금 904호에 있다. 이곳은 조계사가 내려다보이는 인사동의 어느 호텔이다. 내가 집이 아니라 호텔에 있다는 건 좋은 신호는 아니다. 그것은 내가 미치기 직전이었다는 뜻이다.
그렇다. 나는 고효율적으로 미쳐가고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건실한 청년이었지만 말이다. 팀에서 가장 일찍 출근했고, 퇴근하면 바로 헬스장에 갔다. 나는 성장하고 싶었다. 더 많은 일을 해내고 싶었다. 회사에서 인정받고 내친김에 근성장도 하고 싶었다. 올해가 가기 전에 뮤직비디오를 만들고 싶었고 영어 회화도 마스터하고 싶었다. 꽃길을 걷는 상상은 즐거웠지만, 현실의 나는 점점 초조해졌다. 어떤 일을 해도 ‘내가 이럴 때가 아닌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녁 메뉴를 고르는 일조차 괴로워졌다. 내가 김밥을 먹을지 서브웨이를 먹을지 고민하는 시간에도 누군가는 더 생산적으로 살고 있겠지. 뇌는 내가 아직 손도 못댄 계획들을 들먹이며 재잘댔다. ‘너 이럴 때가 아니잖아’ 머릿속이 너무 시끄러웠다. 나는 뇌에게 부탁했다. 알았으니 제발 좀 닥쳐.
결국 나는 엄청나게 많은 걸 한꺼번에 보고 듣기 시작했다. 유튜브를 보는 동시에 TV를 켰고, 갑자기 카카오 미니에게 쇼팽을 틀어달라며 소리쳤다. 그러면 뇌는 도파민에 휩싸였고, 나는 불안으로부터 달아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 평생 시끄럽게 살 순 없었다. 나는 잠시라도 떠나야 했다. 조용한 곳으로.
인사동은 여러 가지를 따져봤을 때 가장 적합했다. 거리나 숙박비 모두 부담 없었다. 무엇보다 내가 아는 가장 평화로운 동네였다. 전통부채와 전통차를 파는 가게들이 있는 곳. 중절모를 쓴 어르신들이 벤치에 앉아 신문을 펼쳐 보는 곳. 손을 잡은 연인들이 삼삼오오 걸어 다니는 곳. 때문에 안국역 6번 출구로 올라가자마자 태극기부대를 만났을 때, 나는 조금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부대라고 하기에 인원은 열 명 정도였으므로 ‘태극기 소모임' 정도가 정확하겠다. 그들은 손바닥만 한 태극기가 붙어있는 장대를 들고 어슬렁거렸다. 우리에게 절대 타협은 없다는 결기가 느껴졌다. 나는 긴장했다. 그들이 서 있는 쌈지길 초입 바로 옆에 오늘 내가 묵을 호텔이 있었다.
하지만 비장한 아우라와 달리, 아주머니 한 분만 “…만세”라고 작게 외쳤을 뿐이었다. 그 선창마저 아무도 받아주지 않았다. 오늘 서울의 날씨는 유독 맑았다. 산책나온 사람들도 많았다. 꼬맹이들이 서로를 잡기 위해 뛰어다녔다. 거리 안쪽에선 바이올린 소리도 들렸다. 그들은 이 가운데 막상 큰 소리를 내려니 머쓱한 듯 보였다. 내가 그들을 지나쳐 모퉁이를 돌 때까지도 다음 만세는 들리지 않았다.
904호는 지금까지 내가 피신했던 호텔 방 중 가장 넓었다. 침대는 2개였고, 통창 옆에 소파도 놓여 있었다. 다섯 명쯤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적막했다. 이쯤이면 뇌가 떠들어댈 타이밍이었지만, 머릿속은 고요했다. 나는 그저 눈앞의 풍경에만 집중했다. 창문에 가까이 다가가자, 라이나 생명 빌딩 위로 흐릿한 무지개가 보였다. 올여름의 무지개를 모두 놓쳤던 나로선 특히 반가웠다.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소파 위로 올라섰을 때 덜 닦인 손자국이 보였다. 한두 개가 아니었다. 아까 머들러에 커피 자국도 묻어 있던데....
그래도 괜찮았다. 기묘하게 지켜지고 있는 인사동의 평화를 떠올리며, 아무래도 좋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