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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Apr 29. 2024

묘하게 오버랩되는 세월호, 이태원

달의 아이(최윤석, 포레스트북스, 2023)

# 어느 날. 내 가장 소중한 아이가 갑자기 커진 달의 인력에 이끌려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면?


재난 소설은 항상 극단적이고 예기치 못한 상황을 가정한다. '에이~ 설마 그런 일 있겠어?' 하는 일들이 소재가 되고 이야기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렇게 '설마'했던 일들은 때때로 너무나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고 만다. 세월호가 그랬고 이태원이 그랬던 것처럼. 마치 우리를 비웃기라도 하듯.


어느 날 내 가장 소중한 아이가 갑자기 커진 달의 인력에 이끌려 하늘로 날아가 버린다. 손쓸 틈도 없이 내가 보는 앞에서 둥실 떠올라 하늘 저편으로 사라져 버린다. 하지만 아이들은 죽지 않았다. 초록색 젤리처럼 생긴 보호막에 둘러싸여 잠이 든 것처럼 보일 뿐이다. 부모들의 처절한 구출이 시작된다.


하지만 모든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 때, 골든 타임도 지나고 소위 기적이라는 희망의 능선마저 넘어버릴 때, 우리는 과연 어떻게 되던가. 간절함은 무뎌지고 '잊으라'는 망각은 고개를 들며 '산 사람은 살아야지'하는 말들이 슬그머니 기어 나온다. 구출을, 처벌을, 기억을 요구하는 사람들 또한 공감과 위로의 대상에서, 이기적이고 편협한 집단으로 바뀌어 손가락질받게 되기 일쑤다. 물론 그들 안에서도 마찬가지 분열이 일어난다. 같은 이유다. '이제는 잊어야지', '산 사람은 살아야지'.


소설로만 존재하는 이야기일까. 아니다. 우리는 세월호에서, 이태원에서 실제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마주한 적이 있다. 그렇다. 이 소설, 묘하게 그들을 닮았다.


언제나 후회란 늦는 거야. 어쩔 수 없어.
정말 어쩔 수 없는 걸까...?
우리... 적어도 불행에 익숙해지지는 말자.


정작 진짜 불행은 익숙해지는 순간 찾아온다. 극복할 수 있는 문턱을 넘으려는 노력을 중단하는 순간 불행은 더욱 견고한 벽이 되어 우리 앞을 가로막고 진짜 '불. 행'이라는 표지판을 승리의 깃발처럼 꽂아버린다. 그리고 그 앞에 무릎을 꿇은 우리는 불행의 노예임을 스스로 자처하며 살아남은 희망에 대한 가혹한 학살에 나서기도 한다. 이기심이 폭발하고 갈등이 중첩되는 과정에서 '어쩔 수 없다'는 방패는 무자비한 폭력이 되어 남은 희망의 의지마저 꺾어 버리는 모습을, 우리는 실제로 목격해 왔다. 아니, 가담했을지도.


글쓴이는 이 소설의 끝을 '해피엔딩'이라고 말한다. 희망을 놓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남겨두었기 때문이다. 스스로 파멸로 달려가는 모든 이들을 뒤로하고 자신이 가장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향해 날아오르는, 방패의 뒤에 숨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남겨둠으로써 '익숙해지는 불행'에 저항한다. 그 모습을 일컬어 우리는 과연 '바보'라고 손가락질할 수 있을까. 세월호를 봤고 이태원을 봤던 우리의 내면 깊숙한 곳, 어딘가에 남아 있는 묘한 감정이 다시 눈을 뜬다. 그리고 그들을 응원하게 된다.


저자는 드라마 PD라고 한다. 그래서 소설은 매우 시각적인 영감을 제공한다. 캐릭터들의 말과 행동은 카메라로 담아 놓은 신(scene)을 이어 붙인 것처럼 자연스럽고 극적이다. 저자 역시 캐릭터들을 연기하는 실제 배우들을 상상하며 글을 썼다고 한다. 읽으면서 나름 떠올렸던 배우들이 저자의 상상과 일치할지 궁금해하는 것도 즐거운 일일 듯하다. 물론 정말 영화나 드라마로 나온다면 더욱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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