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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툰앙마 Jul 09. 2024

잘될 거라, 믿어야지.

잘돼가? 무엇이든(이경미, 아르떼, 2018)

필요 이상의 두려움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결국 실수를 만든다. 무서워하든 안 무서워하든 닥칠 일은 닥친다. 그렇다면 안 무서워하는 편이 여러모로 모양새도 안 빠지고 낫다. (불타는 싫은 마음 중)
창작을 하는 데 있어서 가장 큰 자산은, 습작이 아니라 어떻게 살아왔는가 하는 작가의 삶이다. (박완서) 아이 씨, 어떡하지.(2005.05.12.)
남한테 칭찬을 받으려는 생각 속에는 의지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다. 혼자 의연히 선 사람은 칭찬을 기대하지 않는다. 물론 남의 비난에도 일일이 신경 쓰지 않는다. (2005.08.05.)

이경미? 감독?


처음에는 이렇게 물음표가 붙었는데 그동안 연출했던 작품을 보면 아~ 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2008년 장편영화 데뷔작 <미쓰홍당무>와 2016년 인상 깊었던 영화 <비밀은 없다>, 그리고 TV시리즈를 먼저 보고 나중에 책을 찾아본 뒤 정세랑 작가의 팬이 되도록 만들었던 <보건교사 안은영>까지. 적어도 내게는 꽤 흥미롭게 다가왔던 작품들이었다. (그런 작품들을 연출했던 감독을 한 번에 몰라봤던 것에 대해서는 송구함을 전한다...)


'잘돼가? 무엇이든'은 이경미 감독의 두 번째 작품이자 한예종 졸업 작품이었던 단편 영화와 동명의 에세이다. 영화는 전혀 다른 성격의 직장인 여성 둘이 함께 야근을 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충돌과 갈등, 그리고 무기력한 결말을 통해 잘 돼가는 세상살이에 대한 분노와 인간에 대한 연민, 그리고 그것을 넘어서는 연대를 표현한다는 평을 받았다(서울독립영화제)... 는데 솔직히 영화를 보지 않아서 정확한 평가인지는 판단하기 어렵다.(평론은... 이해하기 항상 어렵다.)


하지만 에세이를 통해 간접적으로 추측컨대, 영화의 주인공 지영은 이경미 감독의 투영이지 않았을까 싶다. 에세이 속 작가 이경미가 솔직히 털어놓는 가족사와 개인사, 그리고 영화감독으로서의 번민, 그리고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았던 결혼에 이르는 과정을 보면 작가는 영화 속 영미처럼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의기소침하며, 또 때로는 절망에 이르기도 하지만 결코 삶을 어떤 하나의 표상으로 단정 짓지 않는 것처럼 보이니까. 애당초 우리 삶이 그렇지 않은 것처럼.


작가의 평범한 삶 이야기는 일상의 위트와 뒤집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을 반전의 시그널들이 곳곳에 포진하고 있다. 아버지를 지독하게 미워하는 것 같으면서도 이해하려 애쓰는 모습이나, 단 3편에 불과한(?) 영화감독으로서의 성과에 괴로워하면서도 끊임없이 뭔가를 새롭게 도모해 가는 모습이 특히 그렇다. 사실 그것이 인생을 버티게 만드는 힘, 전부다. 완벽한 삶이란 애초부터 없다. 누구나 길을 더듬으며 나아가고 자기가 걸어온 길에 대해 뚜렷한 확신 없이 나아가기 바쁘다. 그걸 인정하지 않아서 괴로울 뿐이다. 작가는 그걸 새삼 깨달아가는 과정을 우리에게 공유하며 스스로도 치유와 회복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닐까.


'잘돼가? 무엇이든'이라는 물음은 정답을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삶을 바라보는데 필요한 자세를 물음표 뒤에 숨겨 놓고 있다. 정말 무엇이든 잘 돼가려면 '잘될 거야'라는 믿음에서부터 시작하면 되는 거니까. 누구에게 던지는 물음이 아니라 내게 던지는 믿음과도 같은 질문이다. 믿음을 지팡이 삼아 하루하루 견디며 사는 것. 그것이 삶이라는(애초에 불확실하고 종잡기 힘든) 영역에서 가져야 할 버팀의 근본임은 물론이다.


그러니 정답을 기대할 것 없이 내게도 묻고 남에게도 물어주며 함께 살았으면 한다.


"잘 돼가? 무엇이든?"

"잘될 거라, 믿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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