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의 신(이창길, 몽스북, 2023)
사람들은 이마트를 찾아, 롯데리아를 찾아, 김밥천국을 찾아 멀리 가지 않는다. 카피되지 않는 것이 필요했다. 몇 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철학과 시간은 카피되지 않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p.140)
성심당은 1956년 창업한 대전의 전통적인 노포였다. 6.25 당시 흥남 철수 때 월남하던 임길순 창업주가 열차 고장으로 내린 곳이 대전이었고 얼떨결에 정착한 그곳에서 성당 신부님이 내어준 밀가루 두 포대로 찐빵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게 출발이었다.
'당일 생산한 빵은 당일 모두 소진한다'는 원칙 아래 오늘까지 이어온 성심당은 대전 이외의 지역으로 확장하지 않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성심당을 만나려면 대전에 가야 하고 그게 성심당의 경쟁력이자 매력이 되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 성심당의 고집스러움이 떠오른 것도 우연은 아니다. 성심당 빵을 먹으려면 대전으로 오라. 이 얼마나 당찬 자신감인가. 결국 그들은 파x바게트를, 뚜x주르를 이겼고 대전이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되었다. 더 큰 욕심을 부렸다면, 오히려 그들의 빵은 그저 그런 빵이 되었을 것이다. 손꼽을 수 있는 로컬은, 명물은 그렇게 탄생한다.
표준화된 편리함은 이미 주변에 널렸다. 5분 생활권 내에 편의점이나 패스트푸드 등이 존재하고 그들은 전국 어디를 가나 비슷한 편의와 편리를 제공한다. 그런 곳들은 독특한 매력으로 승부하지 않는다. 편의와 편리의 깊이와 범위로 승부할 뿐이다.
매력은 카피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도전에 나서고 있는 수많은 로컬들은 특별한 매력으로 승부하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방법은? 카피되지 않는 매력을 만들어내야 한다. 편의와 편리가 아니고.
매력은 특별한 무엇이다. 모든 사람이 합의한 결과는 무난한 것이지 매력적인 것이 될 수 없다. 사회에서 매력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은 다르다. 특별한 것을 만들어내고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하도록 만든다. (p.208)
매력적인 것을 원하면서도 시간과 돈과 노력이 들어간 것에 대한 보상을 원하는 게 기본적인 사람 심리다. 그래서 결국 손해 보지 않을 결론에 눈을 돌리다가 이도 저도 아닌 평범함으로 전락하거나 모처럼 맞이했던 기회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 비즈니스도 그렇고 정책도 그렇다. 다수결이 항상 정답인 것은 아니다. 예상치 못한 성공은 99%의 다수결이 아니라 1%의 가능성에 기반한 경우가 꽤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글쓴이는 '개항로프로젝트'를 통해 낙후된 동인천 일대 노포들의 매력을 되살리고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했다. 그가 그 프로젝트 과정에서 합의제 방식을 활용했다면 그게 가능했을까? 그렇지 못했을 것이다. 그에게 개항로는 매력적인 비즈니스 공간이었고 그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무난한 방식이 아닌 특별한 고집스러움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개항로의 살아 있는 역사인 사람들과 그 고집스러움을 실현시키기 시작했고 오늘에 이르렀다.
대박이 날수록 보편적인 확장을 속삭이며 성공의 확장을 꼬드기는 사람도 많다. 사기꾼만 그리 하는 게 아니다. 정책을 실행하는 단위의 사람들도 그렇다. 개항로의 모델을 큰 고민 없이 다른 로컬에 이식시키려 하고 개항로 맥주를 인천 전역에서 팔기를 원하며 개항로를 중심으로 방사형 확장에 나서려 시도한다.
그러면 결국 그곳의 색채와 향기는 흩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흩어진 매력은 더 이상 매력이 아니게 된다.
로컬의 성공을 원하는가? 로컬에서의 성공을 원하는가? 그러면 준비는 철저히 하되 그릇을 무리하게 키우려 하지 마라. 무난해진다. 아련한 첫사랑의 추억으로 끝난다.
상대방의 언어로 이야기 하라. / 어르신을 바꾸려 하지 말라. (p.309 / p.311)
실패하는 관계의 상당수는 무조건 내 언어로만 이야기할 때, 내 기준으로 상대를 무리하게 바꾸려 할 때 주고 발생한다.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 했다. 로컬에 가면 로컬에 맞는 언어로 이야기해야 하고 로컬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맞게 나를 포지셔닝해야 한다. 텃새? 그건 어디에나, 어느 시대에나 있었다. 몰아내고, 부수고, 소금까지 뿌려가며 완전히 초토화된 상태에서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는 게 아닌 이상, 그 지역의 역사, 그 지역 사람들의 말과 행동, 그 지역의 분위기를 무시해선 안된다. 스며듦. 그게 로컬의 새 시작을 위한 기본 장착 옵션이다.
개항로 프로젝트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갈아엎으려 하지 않고 녹아들어 가려 노력했다. 그들과 함께 성공하려 했다. 그래서 성공했다. 어느 로컬이나 저마다 역사가 있고 언어가 다르다. 개항로 모델을 다른 로컬에 그대로 적용할 수 없는 이유기도 하다. 그곳이 좋아 보인다고 고민 없이 카피해 왔다가 실패하는 정책을 너~무 많이 봐 왔다. 개항로는 개항로대로, 다른 로컬은 다른 로컬대로 성공의 포인트를 찾아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언어가 필요하다. 상대방을 바꾸려 하기보다 나를 적응시켜야 한다. 그것은 비단 로컬에서의 성공 방정식에만 통용되는 것이 아니다. 승부를 내는 게 필요한 모든 영역에서 적용 가능한, 적응해야 하는 기준이다.
개항로 대장, 이창길을 계속 응원한다. 그리고 그의 방법론으로 무장한 새로운 대장들이 부족장으로 떠오르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