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앞이라 늘 미뤄지는 생일잔치, 올해도 그렇다
"엄마, 올해도 추석날 우리 집으로 오세요"
"뭐하러 그래, 그냥 나는 여기서 고모랑 숙모랑 식당가서 밥 한그릇 먹으면 돼"
"그거랑 그거랑 같나뭐. 겸사겸사 우리집에 와서 생일파티도 하고 며칠 놀다가요"
우리 엄마가 태어난 날이 음력 8월 13일이다.
8월 15일이 추석이니까 추석 이틀전에 태어나신거다.
엄마는 70대 후반이다.
일제강점기 끝자락과 한국전쟁 그리고 보릿고개를 거친 세대다.
어렵게 살던 그 당시, 아이들 생일을 챙길 여유가 없었을테니 생일은 그저 외할머니나 알고 밥을 좀 더 담아줬으려나.
결혼을 하고 나니 시어머니인 우리 할머니 생신이 음력 8월 26이었다.
음력 8월에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같은 달에 생신이 있었으니 엄마 생신은 또 슬쩍 넘어갔다.
할머니 생신과 함께 한다는 명분하에 엄마 생일은 사라졌다.
우리도 어린 마음에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아빠도 일찍 돌아가셔서 엄마 생일을 챙겨주는 사람이 없었다.
엄마 생일은 축하한다는 말 한마디로 끝났다.
나 역시 명절에 집에 가기때문에 한 주 전에 시골 집에 다녀온다는 것도 부담스러웠다.
그렇다보니 결국은 생일이 지나고 추석 연휴가 되어야 엄마를 보고 축하를 하고 선물을 드릴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그것조차 힘들었다,
추석날도 친정에 안갔으면 하는 시어른들의 마음이 느껴졌지만 과감하게 일어섰다.
그리고 그 다음해부터는 8월 13일 저녁에 친정에 가서 저녁을 먹었다.
음식도 준비하고 케잌도 사서 생신을 챙기고 다음날 시댁으로 갔다.
물론 매년 일찍 오라는 시어른들 눈치는 보였지만 두 분 생신을 내가 차려드리는데 우리 엄마 생신은 당연히 챙겨야하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우리 엄마 생일을 다시 정해요"
그래서 의논끝에 8월 15일 광복절에 생일잔치를 하자고 했다.
공휴일이라 형제들이 모이기도 좋고 여행도 가도록 휴가도 맞추자고 했다.
그런데 한 번 해보기도 전에 숙모가 8월 14일에 돌아가셨고 기억하기 쉽고 자식들이 오기도 쉽도록 한다며 제삿날을 8월15일 광복절로 정했다고한다.
그렇게 우리가 정한 좋은 생일날이 사라졌다.
그사이 시어른들이 돌아가셨다.
큰 형님이 추석에는 각자 집에서 한두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산에서 보자고 하셨다.
추석날 아침에 한시간 거리에 있는 산으로 가면 되니까 부담이 엄청 줄어들었다
.
그래서 2년 전부터 추석이 되면 엄마를 우리집으로 모신다.
엄마도 연세가 있으시니 올해가 마지막 생신일지 내년이 마지막 생신일지 모르겠고
혼자 걸어다니고 맛있는걸 맛있다 느낄 수 있는 날이 언제까지 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생일파티도 하고 며칠 우리집에서 쉬면서 놀러도 가고 그러기로 했다.
올해는 코로나19때문에 여행은 못가도 집에서 맛난것 해먹고 산책이나 하면서 보내려고 한다.
오늘 시장을 보고 음식준비를 했다.
오후 내내 서서 일했더니 뒤꿈치가 아프고 허리도 아프다.
그런데 행복했다.
엄마를 위해서 내가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렇게 고마울수가 없다.
비록 명절 앞이라 두번 걸음이 힘들어 뒤로 미룬 생신이지만 내가 엄마의 생신을 준비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쁘다.
내일도 동생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엄마를 모시고 오기로 했다.
내게 생신은 핑계일수도 있다.
그걸 핑계삼아 엄마를 며칠 모시고 싶은거다.
나중에, 아주 나중에 내가 가지게 될 후회의 무게를 줄이고 싶은걸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그냥 좋다.
내일이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