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올해는 동네 사람들이 뭔 바람이 불었는지 내 빼고 땅콩 다 심었다카더라.
내 혼자 늦게 심으면 비둘기들이 따 빼먹어서 마 그냥 심었다. 너희들은 와서 놀다 가라"
이번 주말에 땅콩을 심으러 가기로 했는데
3일을 못 참고 그새 땅콩을 다 심었다고 한다.
그럼 또 밤새도록 몸이 아파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할거 뻔히 아는데
속상하기도 하고 화도 났다.
예전 같으면 또 잔소리하며 마음 불편하게 전화 통화를 끝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냥 네~ 하고 대답만 한다.
농사일은 나보다 엄마가 전문가이다.
엄마 계산으로 그것이 맞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한 일이다.
이야기가 길어지면 결국 언쟁이 되고 말더라.
연세가 있으니 앞으로 몇 년... 어쩌면 올해가 마지막 농사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하는 동안에는 독재를 해보시라 한다.
우리가 충신이 되겠노라고.
하지만 엄마! 나는 엄마가 너무 힘들지않았으면 좋겠어.
허리 수술을 해서 오래 걷는 건 힘들어도
마음은 만평 농사도 거뜬한 우리 엄마.
10 년 전만 해도 새벽에 밭에 나가서 어두워져야 집으로 왔다.
오토바이가 엄마의 교통수단이 된 건 벌써 30년이 되어간다.
"엄마! 밭 일 하는 게 좋아?"
"나는 밭에 있을 때가 제일 좋다. 경로당에 가도 서로 헐뜯기나 하고 싸움만 하는데
저거 봐라 어제 요만한던게 벌써 저만큼 커졌다. 가서 저거 따온나"
"엄마도 일 안 하고 놀고 싶을 때가 있을 거 아니야"
"놀기야 지금도 안노나, 겨울에도 놀고 비가 오면 놀고. 그래도 일 하면서 노는 게 진짜 노는 거다"
자식들이 떠난 빈자리를 이제는 엄마 손을 거친 작물들이 자식 노릇을 하고 있다.
엄마가 좀 덜 힘들게 하시라고 큰 일은 우리가 가서 해드리고 온다.
3월 말에는 땅콩이랑 고추 심을 땅에 비닐을 덮고 왔다.
땅콩은 엄마가 심었다고 하는데 진짜 내일 집에서 놀 수 있나?
내 평생 경험상 반드시 다른 일거리가 있을 거다.
엄마가 분명 뭔가 다른 일거리를 준비하고 있을 것 같다.
우리 엄마가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