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급통장 보는 재미에 푹빠진 우리 엄마.
"야야 내가 됐단다. 전화왔더라"
"네? 뭐가 돼요?"
"면에서 하는 공공근로 얼마전에 신청했는데 그게 됐단다. 온 동네 노인들 다 신청했는데 나는 됐다고 연락 왔는다. 아마 안된 사람이 있어서 오늘 경로당이 또 시끄럽지 싶다"
엄마 목소리는 아이 마냥 한껏 들떠있었다.
이럴때는 같이 기뻐해줘야한다.
"아이고 우리 엄마 또 일 년 직장 구하셨네. 축하드려요"
"어 그래 고맙다. 끊는다"
본인 할 말을 하고는 전화를 끊는 우리 엄마.
엄마가 노인일자리 사업에 참여하게 된 건 과수원이 도로에 편입되면서
일할 땅이 사라져 버린 그 다음해부터다.
넓은 밭일을 하다가 손바닥만한 땅만 남으니 심심하셨나보다.
그때 노인일자리사업에 참여하고 있었던 동네 아지매 권유에
엄마도 신청했다고 한다.
대상연령이 되는 사람 중에 서류 안 넣은 사람이 별로 없었을 정도로 인기였다.
이미 경쟁이 높던때라 "되겠나" 하면서 서류를 넣었는데 뽑혔다고 한다.
"예전에는 공공근로 하는 거 부끄러워했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서로 할라고 난리다.
포도농사 일년 지어도 약값떼고, 품값떼고 나면 그 돈 보다 적은데 그걸 왜 안하겠노"
그랬다.
겨울 지나서 땅이 녹기 시작할즈음 포도밭일을 시작하면 9월 중순까지 일을 해도
계산할거 다 계산하고나면 2,3백이 고작이었다
농약값이나 품삯, 퇴비값이 만만치않았기때문이다.
게다가 수확기에 비라도 며칠 며칠 내리면 포도가 터져
한해 농사를 접어야 했던때도 있었다.
그런데 하루 세 시간 한 달에 열 번만 나가서 일하면
한달에 27만원가량이 통장에 고스란히 찍히는 걸 경험한 뒤로
엄마는 별세상을 만난듯했다.
처음엔 우리도 뭘 그런걸 하려느냐고 말렸는데
엄마가 좋아하는 모습을보니 이제는 잘한것 같다.
비단 금액 때문만은 아닐것이다.
평생 농사꾼으로 월급통장이라는걸 가져본 적이 없는 엄마다.
봄부터 여름지날때까지는 지갑이 마르다가 가을이 되면 반짝 지갑이 두둑해지고
그 걸로 또 한해를 살아야했던 엄마다.
노령연금, 국민연금처럼 나이를 먹어서 그냥 받는 것이 아니라
정당하게 출근을 해서 일을 하고 당당하게 월급처럼 받으니
엄마 입장에서는 아주 특별한 한 해 직장을 얻은 것이다.
일하러 가는 날은 옷도 차려입고 조끼입고
간식 담당이 되는 날엔 달걀도 삶고, 끓인 물을 보온병에 담고 커피도 챙긴다.
팀별로 만나 풀도 뽑고 청소도 하고 간식 먹으며 수다도 떨고
그러다보면 세시간은 금방이라고 한다.
일흔 중반을 넘은 우리 엄마가 월급통장 보는 재미에 빠질 줄 우리도 몰랐다.
다달이 이런저런 항목으로 통장에 돈이 입금되는데
생각만큼 안모인다고 며칠 고민을 했다는 엄마.
마침내 그 이유를 알았다고 전화가 왔다.
"야야 내가 돈이 없다캤더니 적금을 하나 넣었더라"
부지런한 울 엄마 그새를 못참고 연초에 적금을 넣고
그만 깜빡하고 돈이 다 어디갔냐고 혼자 끙끙했다고 한다.
자동으로 적금통장으로 빠져나가니까
엄마는 왜 이렇게 안모이나 했던 것이다.
그래도 좋단다. 적금통장에 돈이 모이니까.
엄마가 좋다면 됐다.
나는 엄마가 건강하게 많이 웃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출근 도장도 찍고 좋아하는 농사일도 하시다가
종종 여행도 가고,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며
좋은 추억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가끔은 통크게 한턱 내는 엄마의 밥상도 얻어 먹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