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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Mar 28. 2024

모닥불 같이 따뜻한 관계

내 의대생활은 즐겁지 못했다. 쏟아지는 공부 양도 한 가지 이유였지만, 나에게는 마음을 기댈 친구가 별로 없었다. 저학년 때 안 맞는 친구들과 있다가 무리에서 떨어져 나온 후에는 친구가 많지 않았고, 다른 동기들과의 갈등도 있었다. 돌아보면 내가 미숙했던 부분도 있었고, 동기들도 다름을 받아들일 수용력이 부족했다. 학생시절에 많이 외로웠다. 한동안은 잘 어울리지 못했던 내 사회성을 탓하고, 스스로를 별종이라고 생각했다. 다행히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바뀐 이유는 여러 가지지만, 그중 의료사협에서 보냈던 시간이 명확한 한 부분을 차지한다. 의원에서 일을 시작했을 때 많은 환대를 받았다. 협동조합이라는 회사 구조 아래 원장님, 이사님, 국장님이라 서로 호칭을 불렀지만 우리는 동등했다. 회사 사람들과 같이 밥 먹고 술 먹으며 서로 동료이자 친구가 되었다. 동료들과 친해지는 과정에서는 편안함을 느꼈다. 그들은 일단 따뜻하고 좋은 사람들이었다. 우리가 (부천) 지역 사람들의 건강권을 위해, 그리고 건강을 토대로 한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함께한다는 그 마음가짐이 서로의 연결점이 되었다.


1년 정도 일할 계획이었던 의료사협에서는 2년을 일하게 됐다. 그 시간이 매일 행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도, 좋은 추억들이 가득했다는 점은 확실했다. 유독 친했던 ‘엄마’ 국장님과 아파트 사이의 나무길을 걸어 집으로 향했던 기억, 의료봉사동아리에서 학생들과 협동조합 사람들과 같이 섬으로 엠티 및 의료봉사를 갔던 기억(배에서 갈매기에게 새우깡을 주는 게 참 재밌었다.), 사람들끼리 같이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으며 책모임을 했던 기억 등, 여러 장면들이 내 머릿속에 선히 남아있다. 이때 맺은 소중한 관계들은 앞으로 오래오래 기억 속에 남을 것이다. 


우리가 의료사협에서 맺었던 관계는 거미줄처럼 촘촘했고, 따뜻했다. 그 관계들에서 많은 위안을 얻었다. 이 사람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내 맘속 단단한 심지가 되어 앞으로 힘든 순간이 와도 버텨나갈 자신감을 주었다. 이곳에 지내면서 나는 두 가지를 깨달았다. 첫 번째는 내가 사람들과 친해지고 관계 맺는 걸 굉장히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두 번째는 사실보다는 믿음으로, 내가 꽤 괜찮은, 어쩌면 좋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나를 꽤나 미워했다. 나약하고 못난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이곳에 와서 좋은 사람이 되었다. 아낌 받고 사랑받았다. 언젠가 또다시 홀로 남겨진 느낌이 들었을 때, 그 시간을 돌아볼 것이다. 추울 때 모닥불을 때는 것처럼, 따뜻한 기억이 나를 데워줄 것이라 믿는다. 내가 받은 환대는 신선했다. 축축하고 회색이었던 내 삶에 따스하고 노란 불빛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아무래도 받은 건 나눠주는 성격이라, 나 또한 따뜻함을 주고받는 관계를 자꾸 만들려고 노력한다. 크리스마스 트리의 전구 하나하나는 아무 빛을 내지 못하지만, 전선으로 연결되어 있을 때는 트리를, 그리고 밤을 밝힌다.  


덧. 이 글을 쓰면서, 눈물이 났다. 왜일까. 그 사람들이 보여준 따뜻한 마음이 고마워서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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