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점이 단점 되고, 단점이 장점 되는
나는 이전부터 황희정승이었다. 무슨 뜻이냐면, 이 말을 들으면 이게 맞는 것 같고, 그에 다른 의견을 들어도 어 이게 맞나? 하고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그래서 논쟁에 약하다. 어떠한 주장에 반대된다는 생각이 들어도 이건 아니지, 하고 감정이 울컥 들뿐, 논리적으로 반박을 잘하지 못한다. 산업재해가 교통사고와 같이 어쩔 수 없는 것 아니냐,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도 그렇다. ‘어떻게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라는 울화가 들었지만, 정작 말로는 떠듬떠듬 내 의견을 말할 뿐이었다. 내 동기가 이렇게 말할 정도였다. “무하야, 너는 말을 참 못 하는구나. 그래도 넌 의료봉사활동 몇 년간 계속 해왔으니까, 너의 신념을 인정한다.”
몇 년 전인데도 그 말이 계속 기억나는 걸 보면 꽤나 충격을 먹었나 보다. 어쨌거나 말을 잘 못하는 것은 나의 콤플렉스였다. 친구들을 보며 왜 나는 이렇게 의견이 뚜렷하지 못하고 말을 잘 못할까, 속앓이를 했다. 의대 막학기 때 나의 세계를 만들어가는 시간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며 내 역할을 가지며 그러한 생각은 점점 잊혔다. 나는 점차 나의 장점, 단점, 그리고 둘다에 해당하지 않는 다양한 모습들을 인정해 갔다. 사실 장단점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었다. 그러한 생각을 하게 된 건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와 대화 속에서였다.
생각이 뚜렷하지 못하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의견에 수용적이라는 뜻이다. 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그렇게 일러준다. 날카롭지는 않아도, 무디고 둥글둥글한 곁에는 사람들이 좀 더 편안함을 느끼는 듯하다. 나를 좋아하는 친구들은 내가 따뜻하고, 옆에 있으면 편하다고 말했다. 게임 속이라면 ‘힐러’ 역할이었을 거라는 얘기도 들었다. 그러한 말을 듣고 조금 마음이 편해졌다. 늘 단점이라 생각해 왔던 나의 비판능력이 부족하다는 점이 나의 공감 및 지지능력이 충분하다는 점이 되었다.
마찬가지로 뭔가 잘못 말할까 봐 걱정하는 내 소심함도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쓰면서도 내가 무언가 잘못 쓰고 있지는 않은지 다시 곱씹어 생각하는 중이다. (가끔은 덜 소심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사람은 제각기 다 다르고, 그만큼 온전한 자기 역할이 다르다. 완벽한 사람은 없다. 과유불급으로, 특정한 뛰어남이 과하면 오히려 오점이 될 수 있다. 한 사람이 가진 결핍과 부족은 그로 인해 다른 사람과의 공감과 연대의 통로가 될 수 있다. 그만큼 사람을 한 가지 측면으로만 납작하게 볼 수는 없다. 특히 차별이 될 수 있는 지점, 약자의 정체성으로만 한 사람을 보는 것은 폭력이다. 남들을 입체적으로 이해하듯, 나 또한 입체적으로 볼 필요도 있다. 나를 장점 또는 단점 하나만으로 보지 않고, 다양한 모습들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게 나 자신과 친해지는 과정인 듯 싶다. 그동안 나의 부족함으로 나를 미워했다면, 이제는 그 미움에 대해 미안하다 사과하고 나와 좀 친해지고 싶다. 아니 친해져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