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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Aug 28. 2023

아무래도 괜찮았던 혼자 여행기

일상에 꼭 붙어있다가 벗어나는 방법 

태국 치앙마이에 혼자 여행을 다녀왔다. 무려 4박 6일 동안. 지금까지 해외로 혼자 여행을 간 적이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혼자 자유여행을 하려는 의도는 없었다. 여행을 그렇게 좋아하지도 않았고, 특히 여행계획 짜는 걸 극도로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친구를 따라다녔다. 안 그러면 잘 안 갔다. 그래서 4년 동안 해외여행을 안 갔다. 그런 상황이기에 혼자 패키지여행 가기, 일행 구하기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다 실패했고, 쫄래쫄래 혼자 해외로 떠나게 되었다. 여행을 가지 말까도 고민해 봤지만, 기껏 낸 휴가도 있기에 눈 꼭 감고 비행기표를 예매했다. 


제일 걱정되는 건 안전이었다. 이전에도 여권, 지갑, 핸드폰 등 다양한 물품을 잃어버렸기에 이번에도 중요한 안전 관련 문제가 생기면 어떡할지, 특히 일행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문제가 생기면 어떻게 해야 할지 걱정이 컸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20대 초반의 나보다는 조금 더 성숙했는지, 필요한 물건과 일정을 제때제때 챙길 수 있었다. 치앙마이 여행은 나에게 참 편안하고 즐거운 경험이 되었다. MBTI P에 속하는 나는 그때그때 끌리는 대로 계획을 세웠고, 길 가다가도 마음에 드는 곳이면 망설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나의 모든 일정을 내가 결정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든든한 자기 효능감을 주었다. 


나는 생각보다 이 여행을 즐겼다. 여행을 떠나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한국에서는 안 먹어봤을 음식들을 먹어보고, 아름다운 풍경들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무엇을 안 좋아하는지 알아갈 수 있었다. 나는 자연 풍경을 좋아했구나. 나는 코코넛을 좋아하는구나. 고수를 그렇게 싫어하지 않았구나. 나는 사원을 보는데 관심이 별로 없구나. 하나하나 부딪히는 사건들이 나에게는 경험이 되었다.


여행을 떠나는, 특히 혼자 여행을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의 답은 나를 좀 더 잘 알기 위해서이다. 여행은 밖을 탐험하는 행위이지만, 동시에 여행을 통해 거울처럼 나를 비춰볼 수 있다. 내가 마주하는 새로운 환경들은 일상생활 속 나와 사뭇 다른 나를 만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나는 나와 여행하며, 스스로와 대화한다.


그렇게 보면 기쁘고 재밌는 경험만이 중요한 건 아니다. 여행에서 진정으로 나쁜 경험은 없다. 별로인 경험은 있을 수 있다. 맛없는 밥, 안 오는 택시 등 여행 중 마주친 당황스러운 상황은 아무래도 기분 좋지 않게 다가온다. 그러나 이것 또한 ‘나’라는 연못에 던져진 돌 같아서, 새로운 파동을 일으킨다. 나는 이런 상황에 어떤 기분이 드는지, 어떻게 대처하는지 또한 알 수 있다. 어떠한 경험이든 나를 아는 새로운 계기이다. 경험 자체의 속성보다는 그에 따른 나의 생각과 행동이 여행에서는 더 중요한 부분이다. 


삶 또한 나와 같이 하는 여행이지 않을까? 나는 어떤 일 또는 상황에서 무슨 생각을 하는지 귀 기울이고, 또한 자신의 반응을 결정하고 스스로를 바꿔나갈 수 있다. 나는 종종 내 안에 두 명의 사람이 있는 것처럼 여긴다. 경험하는 나, 그리고 이를 관찰하는 나. 사건을 접하고 감정을 느끼는 나는 배처럼, 나를 관찰하고 내 행동을 결정하는 나는 그 배를 모는 선장처럼 느껴진다. 배가 잔잔한 물결을 만나든, 거친 파도를 만나든, 항해의 방향은 내가 결정한다. 나는 파도와 바람을 오롯이 느끼고, 나의 배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천천히 앞으로 나아간다. 


지금까지는 내 일상을 너무나 소중하게 여겼다. 비슷한 하루하루를 즐겼고, 새로운 상황은 나에게 스트레스라 여겼다.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은 듯하다. 일상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하는 마음은 아무래도 두려움 때문이겠다.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경계를 한 발짝이라도 넘어가면 나에게 안 좋은 일이 생길까 봐 걱정했다. 이번에는 그 경계를 훌쩍 넘어봤다. 우려했던 나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내 경계가 나의 발자국을 따라 한 발 넓어졌다. 생각보다 괜찮은 경험이었다. 


사실 아직도 새로운 경험에 발을 담그기가 좀 무섭다. 유칼립투스 나무를 안고 있는 코알라처럼 안온한 내 일상에 꼭 붙어있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그 나무가 내 삶의 전부가 되면 자꾸자꾸 내 시야도 좁아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마음을 열자. 나무에서 땅으로 내려오자. 그러면 또 다른 세상이 펼쳐진다. 눈을 꼭 감고 땅의 감촉을 느낄 때, 더 이상 땅은 낯설고 두려운 곳이 아닌 나의 새로운 지평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코알라가 아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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