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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무하 Aug 11. 2023

오늘도 한 걸음씩

나를 향해 가는 길 

똑, 똑, 똑. 오늘도 혈압계로 사람의 맥박이 뛰는 소리를 잰다. 늘 비슷한 하루이다. 혈압을 재는 일은 손이 많이 간다. 혈압이 늘 일정하고 이미 혈압이 괜찮은 사람들에게는 한 번 혈압을 잴지 안 잴지 물어보고 넘어가기도 한다.

매일 비슷한 일상. 8월은 한가하다. 공부도 해야 하는데 아무래도 긴장이 풀리다 보니 손에 잘 안 잡힌다. 9월 되면 바빠지기 때문에 미리미리 여름휴가도 잡아놨다. 


요즘의 시간은 빈 시간들이 많아 다소 따분하기도 한다. 중간중간 환자가 없을 때 팔짱을 끼고 깜빡 잠이 들기도 한다. 그러면 팔에 옷 접힌 자국이 남는다.  진료실에는 나와 모니터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는 시간들이 있다. 이럴 때는 오히려 일이 더 하고 싶기도 하다. 일, 내가 사랑하는 나의 역할. 


나는 이 의사 일을 참 좋아한다. 사람을 돕는, 그러면서도 전문성을 가진 독자적인 이 일은 나와 찰떡처럼 맞는다. 아무 역할 없이 끌려다니듯 살았던 의대생 시절과 어엿한 일과 주체성을 가진 의사 시기는 천지 차이로 느껴진다. 하지만 의사가 아닌 나는 누구일까? 의사라는 가면은 내 얼굴에 덮여 떨어지지 않는다. 


예전부터 나는 나의 생산성, 아웃풋을 그 무엇보다 중요시하게 여겼다. 남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는 나, 즉 ‘뛰어난’ 내가 아닌 나는 쓸모없게 느껴졌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전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다. 만약 내 친구가 나에게 자신이 쓸모없다는 느낌이라고 말하면 나는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사람의 쓸모가 그 사람의 가치를 정하지는 않아. 그냥 너 있는 그대로 괜찮아. 당당하게 살아가면 돼.”

아직도 어떤 나는 나를 인정하지 못한다. 나의 마음 안에는 엄격한 부모가 들어앉아있다. 그 부모는 ‘좋은 나’에게만 인정과 사랑을 주며, ‘못난 나’에게는 가차 없는 냉기를 보인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한다니, 참 비극이다. 


왜, 왜, 도대체 왜 나는 그런 걸까? 무엇이 이렇게 나와 나 사이에 뿌리 깊은 골을 만들었을까. 내 마음속을 걸어 들어가 보아도 희뿌연 구름뿐이다. 어떤 건 자라온 환경 때문일 수 있겠다. 하지만 과거를 계속 파고 싶지는 않다. 과거의 이해가 도움이 되겠지만, 남은 건 원망밖에 없을 테니까. 결국 내 앞에는 나만이 앉아있다. 앞에 앉아있는 나에게 말을 건다. 


“내 자신이 많이 미워?”

“너의 어떤 부분들은 용서할 수가 없어. 너는 나약했고, 그 나약함 때문에 많은 고통을 받았어. 너는 엄마의 과보호 속에 온실 속 화초로 자랐잖아. 약한 네가 부끄러워.”


온실 속 화초로 자랐다,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나는 그런 성장환경을 택한 적이 없다. 나에게 주어진 후, 그건 나의 약점으로 손가락질받았다. 이 말을 들으면 나는 내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나를 나약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힘, 즉 역할에 집착했다. 좋은 나는 인정받는 나이며, 주위 사람들 간의 관계에서 힘과 주체성을 가진 나이다. 나에게 인정을 받을 수 없는 나는 주위의 인정을 갈구했다. 결국 밑 빠진 독에 물 붇기이다. 남들의 인정은 아이스크림과 같아서, 그때는 달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녹아서 사라지고 만다. 그리고 남은 자리에는 나 혼자만이 덩그러니 있다. 


언제쯤 나와 친해질까. 언제 나는 내 앞에 앉아 있는 나와 손을 잡고 화해할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내가 계속 걸어가는 삶은 결국 나를 향한 길이다. 온전한 나, 강하지 않아도 괜찮은 나, 그냥 있는 그대로 괜찮은 나. 나를 사랑한다는 말은 좀 아무래도 오글거리니, 나와 잘 지낸다는 표현이 어울릴 만큼 그 길을 자꾸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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