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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장 Jan 03. 2024

식집사는 오늘도 자란다

제자리에서 조용하지만 강하게


 작년 생일, ‘몬스테라’를 선물 받았다. 기왕이면 원하는 걸 주고 싶다며 생일마다 ‘무슨 선물 받고 싶어?’하고 묻는 친구로부터. 딱히 갖고 싶은 게 떠오르지 않았고, 이사 온 지 얼마 안 됐으니 화분이나 하나 있으면 좋겠다 했다. 그렇게 나는 불쑥, 식집사의 길에 들어섰다.


 몬스테라의 가장 큰 매력은 ‘찢어진 잎’, 일명 ‘찢잎’인데, 어른 손바닥보다 커다란 잎이 여러 갈래 갈라져 자못 이국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어디서나 쑥쑥 잘 자라는 데다, 존재만으로도 ‘트로피컬’ 분위기를 물씬 더해주는 이 식물을 누가 좋아하지 않을 수 있겠나. 잎이 크면 클수록, 찢잎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그렇다. 이 때문에 대부분의 식집사는 찢잎을 보기 위해 몬스테라를 키운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나 또한 마찬가지.


 몬스테라의 첫 찢잎을 본 순간 생전 처음 느껴보는 유형의 감동을 맛봤다. 꽃과 나무가 콘크리트보다 흔한 시골에서 자란 내게, 식물은 도심 속 빌딩만큼이나 뻔하고 흔한 것이었다. 도시 사람들이 매일 보는 건물을 ‘어떻게 변하나?’ 쳐다보지 않듯이 나도 내 주위의 식물을 이토록 유심히 관찰한 적이 없었다. 그래서일까? 강아지나 아기처럼 움직이는 동물이 자라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한 자리에 잠자코 있던 식물의 생장에선 조금 더 경이로운 생명의 신비 같은 것이 느껴졌다.


 하지만 벅찬 감동도 한 때뿐. 첫 찢잎을 이후로 내 몬스테라는 자라는 족족 ‘안 찢잎’만 틔워 내기 시작했다. 부랴부랴 인터넷의 선배 식집사들에게 조언을 구했다. 아뿔싸. 햇빛이 너무 적으면 그럴 수 있단다. 열대우림에서도 햇빛을 골고루 받기 위해 찢잎을 낸다는 것이다. 슬프게도 우리 집은 햇빛이 귀한 ‘정북향’이었다.


 그런 내게 어느 식집사가 구원의 댓글을 남겼다. ‘화분을 자주 흔들어 보세요. 바람을 많이 맞으면 찢 잎이 나온대요.’ 야생에서 비바람에도 잎이 꺾이지 않도록 찢잎을 내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후 나는 생각날 때마다 몬스테라를 열심히 흔들었다. 선풍기를 세워두고 바람도 쐬어 주었다. 멀대처럼 자라 휘청이는 몬스테라를 보며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렇게 몇 주 뒤, 드디어 내 몬스테라는 두 번째 찢잎을 내었다.


 몬스테라를 선물해 준 친구를 포함, 여기저기 자랑을 했다. 볕 잘 드는 좋은 환경은 아니지만 끝내 찢잎을 내어준 내 몬스테라가 자랑스러워 미칠 노릇이었다. 아, 내가 잎사귀 하나에 이렇게 일희일비하게 되다니! 문득 우리나라에서 ‘한 그루에 4500송이의 포도가 열리는 나무’를 키워 낸 농부 이야기가 생각났다. 일부러 나무가 어려서부터 멀찍이 물을 주어 나무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게 해 줬다는 이야기. 가능하면 온실 속 화초처럼 귀하게만 자라면 좋겠지만, 갖은 풍파를 이겨내고 자라는 것이 어쩌면 훨씬 더 큰 성장을 위한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식물이든, 사람이든 말이다.


 이제 겨우 허리춤까지 오는 몬스테라 한 그루와 함께, 나는 오늘도 식물처럼 조용히 성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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