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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사강 Aug 06. 2023

행복한 미소의 네 얼굴, 나 더이상 무얼 바라겠니

듀스 <여름안에서>



이번 여름 휴가는 제주도의 동쪽, 월정리와 세화리에서 보냈다. 매일 폭염 경보를 알리는 안전 안내 문자와 함께한 4박 5일이었다. 야외 활동을 자제하라는 문자를 받고는 바다에 들어가 뜨거운 태양과 평행선을 그린 채로 하늘을 바라 보았다. 해가 떨어지고 나면 조용한 해안가 동네를 산책했다. 모래사장에 앉은 사람들의 등을 별보다 많이 보았다. 그리고 그 나흘의 밤과 닷새의 낮 동안 나는 계속 한 노래를 듣고, 또 그 한 노래를 흥얼거렸다. 바로 여름을 대표하는 노래 듀스의 <여름안에서>였다.


이 노래가 발표된 것은 1994년으로 사실 따지자면 나는 듀스 세대가 아니다. (2003년에 서연이 리메이크한 버전이 내 세대의 노래다.) 이후로도 많은 가수들이 커버를 했고 2020년에는 '놀면뭐하니?'라는 프로그램에서 리메이크를 하기도 했다. 발표된 지 30여 년이 흘렀음에도 여름 노래의 대표로 이 노래를 꼽는 사람들이 많다. 그 사람들에게 이 노래를 좋아하는 이유를 묻는다면 저마다의 이유가 나올 만큼 이 노래의 매력은 많다.

파도가 부서지는 소리로 시작하는 인트로나, 흥을 돋우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서정적으로 느껴지는 멜로디, 진심이 느껴지는 투박한 창법 모두 이 노래의 매력이지만 나에게는 단연 이 노래의 가사가 가장 큰 매력으로 느껴진다. 진솔하고도 단순한 여름과 사랑의 찬가가 내 마음을 벅차게 만든다. 별다른 수식어구도 없고 세공된 단어들을 쓴 것도 아닌데 바로 그 담백함이 이 노래의 백미다. 1절의 가사도 좋지만 특히 2절의 가사는 단 몇 줄만으로 단박에 나를 행복하게 만든다.


같은 시간 속에 이렇게 함께 있는 것만으로도 난 좋아 행복한 미소의 네 얼굴 나 더이상 무얼 바라겠니

저 파란 하늘 아래서 너와 나 여기 이렇게 사랑하고 있어 나는 이렇게 행복을 느껴


우리 말에는 '더할 나위 없다'라는 관용구가 있다. 말 그대로 지금 그 상태로 완전하기 때문에 더 할 것이 없다는 뜻이다. 행복하게 웃고 있는 네 얼굴, 그것만으로 더할 나위가 없으므로 나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바라겠니'라는 의문형은 나는 네 행복 말고는 바랄 것이 없고, 네 행복이 나의 전부인 것을 너도 자명하게 알고 있다는 느낌을 준다. 언제나 꿈꿔 온 순간이 여기 지금 내게 시작되고 있어 그렇게 너를 사랑했던 내 마음을 넌 받아 주었어라는 가사로 노래가 시작된 것을 생각하면 더 마음에 와닿을 수밖에 없다.


너를 푸른 바다와 등치시키는 은유나 '난 너를 사랑해'라는 단순한 가사의 반복도 좋지만 가장 감탄스러운 부분은 지시어의 사용이다. 짧은 가사로 사람을 전율하게 하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했다고 느껴지는 부분이다.

1절에서 나는 너를 '그렇게' 사랑했다. 그리고 2절에서 우리는 '이렇게' 함께 있고, '이렇게' 사랑하고 있으며 '이렇게' 행복을 느낀다. 아주 단순하면서도 이보다 더 적확할 수 없는 단어의 사용 아닐까.

네가 내 마음을 받아주기 이전, 과거의 내 사랑은 '그렇게'의 사랑이다. 우리말에서 '그'는 듣는 이에게 속하거나 가까운 대상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그것 좀 줘봐, 그렇게 생각해? 등의 용례를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그리고 '이'는 말하는 이에게 속하거나 가까운 대상을 지칭할 때 사용된다. 이것을 달라고? 나는 이렇게 생각해, 등의 용례와 마찬가지다. 이것을 시제와 결합시키면 '그렇다'는 보통 과거와 결합하게 된다. 그렇게 좋아했는데, 그땐 그랬지, 등. 반면 '이렇다'는 보통 현재와 결합한다. 이렇게 할 거야? 이렇게 좋아해도 되나 싶어, 등.

그러니까 내 마음을 네가 받아주기 이전의 내 사랑은 너에게 가까운 것이고, 또 과거의 것으로 나는 너를 '그렇게' 사랑한 것이다.

그리고 내 마음을 네가 받아주어서 내 기분만큼 태양은 밝게 떠올랐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함께 있고 사랑하고 있고 또 바로 그 이유로 나는 '이렇게' 행복을 느낀다. 너와 나의 거리가 '그렇게'에서 '이렇게'로 가까워지면서 내 사랑은 현재의 사랑으로 비약한다. 더할 나위 없는 사랑의 표현이다.

이렇게 행복한 기분을 느끼는 화자는 우리에게 더 이상의 슬픔은 없을 것이라 단언한다. 얼마나 현재가 행복하면 우리의 미래에 슬픔이 없을 것이라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일까? 이런 무모함 때문일까. 이 노래는 청춘의 여름을 대표하는 노래처럼 느껴진다.  



제주도의 어느날, 잠깐의 비가 내리고 난 뒤 바다 위로 커다란 무지개가 그것도 두 개나 떴다. 나는 엘리멘탈의 웨이드가 다녀간 모양이라고 얘기했고 남편은 가볍게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나는 이 노래의 가사 속 화자의 마음을 백퍼센트 이해하는 사람이 되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고, 이렇게 행복을 느꼈다. 이런 순간들이 마음 속에 쌓이고 고이고 녹아서 내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 것이라는 이상한 확신까지도 함께.

이 노래가 청춘의 노래라는 것은 청춘들만이 즐길 수 있는 노래라는 뜻이 아니라, 청춘을 지나온 그 누구라도 벅차게 만들 수 있는 노래라는 뜻이다. 뜨거운 태양 아래 서 있고 이어폰에서는 이 노래가 흘러나올 때, 나는 이렇게 행복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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