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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르카 Jan 27. 2022

[서평] 우리는 왜 정의를 묻는가?

'정의란 무엇인가'를 읽고

책이름: 정의란 무엇인가?
글쓴이: 마이클 샌델(Michael J. Sandel), 이창신 옮김
출판정보: 김영사, 2010년 


프랑스의 철학자 앙드레 콩트-스퐁빌은 그의 저서 ‘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에서, 1968년의 혁명을 겪은 ‘정치의 세대’와 비교하여 오늘날의 세대를 ‘윤리의 세대’로 진단했다. 이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과거 세대보다 윤리적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윤리에 대해 더 많이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윤리가 담론의 중심 주제로 떠올랐다는 의미이다. 


그의 접근에 따르면 오늘날 한국 사회의 젊은 세대를 ‘정의의 세대’라고 불러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만큼 정의와 공정이 정치적․사회적 담론의 주요 화두로 언급되었던 적이 있던가. 우리는 샌델 교수의 ‘정의란 무엇인가?’가 큰 인기를 끌었던 이후로 또다시 정의의 문제를 마주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을 다시 읽으며 우리 사회가 마주한 정의의 담론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작업이 유의미하다 하겠다.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존 롤스에 이르기까지, 정의(justice)를 정의(definition)하는 작업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이를 정리하여 저자는 정의를 바라보는 관점으로 크게 공리주의, 자유지상주의, 그리고 목적론적 정의론의 세 가지 틀을 제시하면서, 정의에 대한 논의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보여준다.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을 정의라고 여겼던 공리주의의 입장에서는 ‘총량’이 중요했기 때문에, 그것을 구성하는 개개인에 대한 성찰이 부족했다. 인간은 다만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일 뿐이었다. 자유지상주의적 정의관은 이러한 한계에서 나아가 비로소 인간 개인을 성찰하기 시작했다. 칸트는 그의 철학을 통해 순수 이성에 기초한 인간 자유의 본질을 규정하며, 이 자유에 근거하여 인간의 지위가 생기고 도덕이 성립함을 진지하게 성찰하였다. 이 입장에서의 정의란 개인의 자유가 보장받는 상태이다. 인간은 본디 자유롭기 때문에, 그러한 본래의 상태를 보존해 주는 것이 정의라는 생각은 오늘날에도 큰 영향력을 가진다. 존 롤스는 여기에 더해, 자유에 기초한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서는 평등한 전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우리는 사실 타고난 자질, 국적 등의 우연적인 요소들로 인해 온전한 자유를 침해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상의 흐름을 보면, ‘정의란 무엇인가?’ 라는 물음의 바탕에는 그러한 정의를 묻고 누리는 ‘인간이란 무엇인가?’ 라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자리 잡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생득적인 불평등을 교정하고자 하는 롤스의 입장은 발전하는 현대의 과학기술에 힘입어 이 질문을 한층 더 절박하게 만든다. 인간은 불평등한 유전자 분배의 산물일 뿐인가?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나’와 ‘너’는 무엇이길래 정의로운 바탕 아래 살아갈 권리를 가지게 될까?


저자는 역사적으로는 가장 우선하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목적론적 정의론을 마지막에 소개함으로써 이 질문을 현대로 가져오고자 한다.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정의란 인간이 그 목적에 맞게 올바른 삶을 살도록 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인간 존재가 목적을 지닌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론이 담겨있다. 샌델 교수는 이 고전적인 인간 이해에 주목한다. 그는 쾌락을 추구하는 존재, 자유로운 존재라는 기존의 인간 이해에 만족하지 못하고, 매킨타이어의 서사적 인간이해를 대안으로 삼는다. 이에 따르면 인간 존재는 하나의 이야기로서, 독립적이기보다는 서사 속 타인들과의 연대 속에서 규정된다. 나는 부모나 사회 구성원, 시대의 역사 등과 무관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과 만들어온 이야기의 총체에 가깝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그 모든 것들에 대한 최소한의 의무가 생겨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필연적인 하한선이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연대해야 한다! 이에 따라 저자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정의는 이 하한선 위에서 논의되어야 한다.


오늘날 ‘정의의 세대’에게도 이러한 인간 이해가 필요할 것 같다. 우리는 ‘정의란 무엇인가?’ 묻지만, 그것만으로는 목표를 달성할 수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정의가 부재하여 묻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의 정의가 다르기 때문에 묻는다. 그렇지만 이 다양성 가운데 보편의 합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라고, 그럴 수 있다고 믿는다. 그 보편성은 어디에 근거하는가? 그 답을 위해, 우리는 정의가 무엇인지 묻기에 앞서 ‘왜 정의를 묻는가?’라고 물어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부터 샌델 교수를 거쳐 이 책을 읽는 우리를 이어주는 것은 다름 아닌 ‘정의를 묻는 인간’이다.


공교롭게도 앙드레 콩트-스퐁빌의 ‘자본주의는 윤리적인가?’와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는 같은 해에 출간되었다. 두 저자는 윤리와 정의라는 서로 다른 관점으로 오늘날의 세상을 진단하지만, 도덕적이고 정의로운 세상을 만들기 위한 바탕을 인간 보편의 가치에 두고자 한다는 점에서는 꼭 같다. 아무리 냉정한 자유주의적 입장에 서더라도, 인간은 마땅히 따라야 할 보편 선의 개념을 포기할 수 없다. 우리는 단순히 정의를 정의하는 것으로는 만족할 수 없다. 진정한 정의는, 질문을 던지는 타인과 내가 같은 인간임을 깊이 깨닫는 데서 구현된다. 서경식 교수는 현대인에게 필요한 교양은 타인에 대한 상상력이라고 말하였다. 시대의 온갖 불의에 맞서, 끊임없이 정의를 구하는 타인에 대한 상상력만이 정의의 유일하고도 가장 견고한 바탕이 아닐까.



이 글은 2021년 전북대학교 우수서평공모전에 응모하여 시상한 글로, 본인이 직접 작성하고 가져왔음.




브런치에 발행하는 모든 글은 작가의 개인 블로그(https://surca.tistory.com/)에 동시에 게재합니다. 

내용이 같거나 약간씩 다를 수도 있으나 모두 작가 본인이 직접 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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