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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로 Nov 11. 2020

제주도 - 1

<내 친구 이야기>

-다시 태어나도 친해지고 싶은-



*

일성이는 롱디 커플이었다. 여자 친구가 일본에서 유학 중이라 일성이의 일상은 솔로인 나와 다를 바 없었다. 남자끼리 허구한 날 붙어 다니며 술을 마실 수 있었던 이유다. 여자 친구는 방학 때나 한 번씩 한국을 다녀가는 모양이었다. 결혼이 얼마 남지 않은 어느 여름, 일성이가 한국에 온 여자 친구를 소개해 준다고 자리를 마련했다. 일성이랑 꽁냥꽁냥 연애는 당최 연결이 되지 않아서 여자 친구가 어떤 사람일지, 믿어야 존재하는 산타클로스처럼 지난한 독수공방에 지쳐 허언증으로 발전한 경우는 아닌지, 나는 하루빨리 일성이의 여자 친구를 확인하고 싶었다. 오도리(보리새우회가 정확한 명칭)에 한창 꽂혀있을 때라 우리는 종로의 횟집에서 만나 소주를 마시기로 했다. 내가 먼저 도착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일성이가 여자 친구와 함께 횟집에 들어왔다. 푸짐한 몸매의 일성이와 왜소한 체격의 여자 친구가 한 앵글에 잡히니 영락없는 토토로와 메이였다. 

    

(사투리)“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실존하는 인물이셨군요. 유니콘 같은 존재라고 생각했는데…”

(사투리)“왜요? 혹시 선배가 솔로 행세하고 다닌 건 아니죠?”

“아뇨. 일성이는 여자 친구가 있다고 자꾸 우기는데 믿을 수가 없어서요. 반갑습니다. 흐흐”     


일성이의 여자 친구는 울산 사투리를 쓰는 작고 귀여운 아가씨였다. 일성이가 제대하고 복학했을 때, 같은 동아리의 순진하기 그지없던 신입생 여자 친구를 꼬셔 CC가 됐다고 했다. 여자 친구는 당시의 일성이가, 거역하기 힘든 카리스마 충만한 동아리 선배였다고 회고했다. ‘위계에 의한…’, 나는 속으로만 생각했다. 잠시 후 주문한 소주와 오도리가 나왔다. 일본어 원래 뜻처럼 살아있는 새우가 파닥거리며 춤을 췄다. 나는 상체를 뒤로 젖혀 방어태세에 돌입했고, 일성이는 그런 나를 보며 혀를 찼으며, 여자 친구는 자애로운 미소를 짓다가 접시를 자기 쪽으로 끌어당겼다.     


(사투리)“이런 거 무서워하시나 봐요? 이래서 서울 남자는 안된다니까. 큭! 제가 까드릴게요!”     


여자 친구가 새우의 머리를 똑 똑 꺾어가며 야무진 솜씨로 껍질을 벗겨냈다. 대가리와 함께 전의를 상실한 새우가 내 앞 접시에서 슬로비디오로 꼬리를 움직였다.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일성이가 배려심 많은 괜찮은 여자를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횟집에서 나온 우리는 피맛골에 있는 막걸리 집에 갔다. 눈치가 없었다. 중간에 빠져주거나 2차까지 동행을 할 거라면 여자 친구를 배려해 장소를 정했어야 했다. 화장실도 불편한 피맛골의 막걸리 집을, 그저 내가 자주 가는 단골집에 데려가고 싶다는 짧은 생각으로 앞장섰다. 다행히도 일성이의 여자 친구는 싫은 내색 없이, 일본에서도 막걸리 인기가 많다며 맞장구를 쳐주었다. 우리는 고갈비 안주에 막걸리를 마셨다.   

  

“일성이랑 오랜만에 만난 건데 어디 여행 안 가요?”

(사투리)“그렇지 않아도 주말에 제주도 여행 갈 생각이에요. 흐흐. 같이 가실래요?”     


사춘기를 갓 지난 중학생도 알 것 같은 웃음의 의미를 포착하지 못했다. 술 때문이었다. 일성이가 좋은 여자를 만났다는 생각에 마냥 기분이 업된 나는, ‘넌씨눈’의 심연 속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도 돼요?”     


*

다음 날 일성이에게 연락이 온 건 해장으로 뼈해장국을 먹을지 순댓국을 먹을지 고민할 때였다.   

   

“해장은 하셨습니까?”

“아직, 속 쓰려 죽겠다. 어제 너무 마셨나 봐.”

“형! 그런데 진짜 제주도 같이 갈 거야?”

“아, 생각을 해봤는데 결혼 앞두고 연애시절에 가는 마지막 여행이잖아.”

“여자 친구가 엄청 기대하고 있는 것 같긴 해.”

“나 혼자 눈치 없이 거기 껴서 가봤자 혹 밖에 안 될 거 같고.”

“역시 그렇지? 아쉽지만 형이랑은 다음에…”

“그래서 친구를 한 명 불렀어!”

“응?”

“승권이 알지? 걔도 같이 가기로 했어. 나는 승권이랑 놀 테니까 신경 쓰지 않아도 돼. 세상에 이런 형이 또 어디 있냐?”

“…”       


그렇게 해서 제주도 여행은 일성이랑 나, 승권이랑 셋이 가기로 했다. 넷이 아니라 셋이어서 전개가 좀 이상할지도 모르겠다. 일성이의 여자 친구는 내가 친구를 불렀다는 소리를 듣고 남자들끼리 다녀오라고 양보를 해줬다. 뭔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고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뒤늦게 나는 빠지겠다며 둘이 다녀오라고 했지만 소용이 없었고, 김포공항에 일성이가 나타났을 때는 여행의 설렘 같은 건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근심 가득한 얼굴이었다.       


*

일성이는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거라고 했다. 촌스럽게 그동안 뭐하고 살았냐고 타박했지만, 사실 나도 서른을 넘어서야 비행기를 처음 탔었다. 대학교 졸업여행 때 비행기 탈 기회가 있었지만 집에다가는 다녀온 척하고, 자취하는 친구네서 신세를 지며 졸업여행비를 유흥비로 탕진했었다. 일성이는 졸업여행을 어디로 다녀온 건지, 별로 궁금하지 않아 물어보지는 않았다. 일성이의 꿀꿀한 기분도 풀어줄 겸 비행기 처음 타는 친구에게 하는 흔한 농담을 건넸다.      


“비행기 탈 때 신발 벗고 타야 되는 건 알지?”

“언제 적 개그를 해. 유치하게.”

“미안. 검색대 통과할 때 숨 참아야 되는 건 진짜다. 그냥 지나가면 삐 소리 나.”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고 비행기나 타러 가자!”     


우리는 비행기를 타기 위해 수속을 밟으러 갔다. 보안 검색대는 승권이가 가장 먼저 통과하고 나, 일성이 순이었다. 나는 승권이와 함께 마지막으로 보안 검색대를 통과하는 일성이를 기다리고 있었다. 일성이가 보안 검색대를 통과할 때 삐 소리가 울렸다. 공항 직원이 일성이에게 가방을 열어 내용물을 보여줄 것을 요구했다. 나는 ‘그러게 숨 참으라니까!’란 싱거운 농담을 하며 일성이에게 다가갔다. 일성이가 둘둘 말아 끈으로 묶은 무언가를 풀어 검색대 옆 테이블에 올려놨다. 촤라락 탁! 영화 <공공의 적>에서 강철중 형사가 용만이에게 칼 세트를 풀어놓을 때와 똑같은 장면이 재현됐다. 일성이 가방에서 나온 것은 서슬 퍼런 칼날이 보기에도 섬뜩한 회칼 세트였다. 만화의 한 장면이었다면 그곳에 있던 모든 사람들의 머리 위 말풍선에는 느낌표가, 일성이 머리 위 말풍선에는 물음표가 떴을 것이다. 일성이는 낚시해서 회를 뜨기 위해 준비한 칼이라며, 억울하게 범죄 용의자로 몰린 사람처럼 변명했다. 나는 공항 직원이 일성이를 제압해 수갑을 채우지는 않을지 조마조마했다. 다행히도 회칼 세트는 공항에 맡기고 돌아오는 길에 찾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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