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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로 Nov 08. 2020

창업

<내 친구 이야기>

-다시 태어나도 친해지고 싶은-



*

카피라이터는 이직을 많이 한다. 시작이 메이저 종합광고대행사가 아닌 경우의 얘기다. 회사 규모가 작게는 다섯 명에서 많게는 서른 명의 고만고만한 광고회사에 다닐 경우, 카피라이터가 경험할 수 있는 광고주에는 한계가 있다. 분양광고에 대한 카피를 쓰려면 광고에 대한 지식 외에 부동산에 대한 지식도 있어야 한다. 화장품 광고도, 자동차 광고도, 치약 광고도 모두 마찬가지다. 카피라이터는 2년에 한 번씩 조금 더 나은 회사로 옮기는 것이 경쟁력을 키우는 방법이다, 라고 주장하는 카피라이터 선배도 있었다. 프리랜서 카피라이터가 되기 전, 나는 열 곳이 넘는 광고회사를 다녔다. 2년의 사이클을 지키며 옮긴 건 아니었지만, 덕분에 나는 같은 연차의 다른 카피라이터들보다 다양한 광고를 만들 수 있었다. 회사를 옮길 때마다 연봉은 조금씩 올라갔고, 점점 더 잘 나가는 카피라이터의 코스를 밟아간다고 생각했다. 나는 자신감이 하늘을 찔렀을 때 회사를 관두고 프리랜서 카피라이터가 되었다. 그리고 일성이는 나와 조금 다른 궤적의 카피라이터 생활을 이어나갔다.  


*   

일성이의 첫 명함은 학원 광고 전문회사의 신입 카피라이터였다. 설마 일성이가 ‘나는 우리나라 최고의 학원 전단지 광고 전문가가 될 거야!’라는 결심을 하고 입사한 건 아니었을 거다. 아무리 작은 광고기획사라도 카피라이터로 취업하기 쉽지 않은 시절이었고, 내가 그랬듯 훗날의 도약을 위한 디딤돌 정도의 전략적 취업이 아니었을까. 비록 꿈에 그리던 회사는 아니었을지 몰라도 일성이는 누구보다 성실하게 회사를 다녔다. 퇴근 후 약속을 잡으면 매번 늦곤 했는데, 눈치 없는 일성이가 상사 눈치 보느라 지각 퇴근을 한 것 같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언제나 회사 일 앞에서 개인사는 잠시 미루는 그놈의 고지식함이 원인이었다. 광고 전단지 인쇄 일정상 누군가 주말에 회사를 지켜야 하는 것도 언제나 일성이 몫이었다. 언젠가 나는 그런 일성이가 답답하고 안쓰러워 물어본 적이 있다.

      

“주말 근무를 돌아가면서 하지 않고 항상 신입 카피라이터한테 시키는 거야?” 

“아니, 내가 자청하는 거지. 주말에 집에 혼자 있느니 사무실 나오면 밀린 신문도 읽고 밥도 회삿돈으로 먹고 좋잖아. 흐흐”

      

나는 혼자 살아본 적이 없어서 당시에는 일성이의 대답을 듣고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궂은일을 항상 도맡아 하는 일성이의 성향을 안 건 시간이 한참 흐른 후였다.


하도 약속시간에 늦어 타박을 몇 번 했더니 일성이가 약속 장소에 먼저 와서 기다린 적이 있었다. 할머니 혼자서 장사를 하는 조그만 막걸리 집이었는데, 내가 도착했을 때 일성이는 다른 테이블에 밑반찬과 소주를 갖다 주고 있었다. 평소 얼마나 자주 왔으면 그럴까 싶어 자리를 잡고 앉아 일성이를 기다렸다. 일성이가 곧 물통과 컵, 기본 안주를 쟁반에 담아 내가 있는 곳에 와서 앉았다.      


“엄청난 단골이구만! 손님으로 와서 일손을 다 돕고 있네.” 

“나도 오늘 처음 왔는데. 흐흐. 할머니 혼자 바쁘시니깐!”     


일성이의 넉살이 부러웠다. 학창 시절의 나는 수업시간에 질문을 해본 적이 없다. 손을 들고 일어나 질문할 때 나에게 일제히 쏠릴 친구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식당이나 술집에서 멀리 있는 점원을 불러야 할 때는 근처에 올 때까지 기다린 적도 많다. 어쩔 수 없이 불러야 할 때는 ‘저기요!’가 고작이다. 일성이처럼 우렁차게 ‘이모님!’하고 불러보고 싶지만 마음뿐이다. 소심한 성격 탓에 우리가 함께 있을 때 주문은 언제나 일성이의 몫이었다.     


*

일성이는 현재 직원 예닐곱 명이 상주하는 조그만 광고기획사의 사장님이다. 부침 많은 광고계에서, 더구나 영세한 광고기획사가 십 년을 넘게 버티는 건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자기 잇속 챙기는 것에 둔한 일성이여서 나는 몇 년 못가 회사를 접을 줄 알았다. 광고쟁이로서 일성이의 능력을 못 믿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사실 일성이의 창업은 시작부터 허술했다.      


“회사를 차리기로 했어!”

“차려. 하루라도 젊었을 때 차려야 금방 망하고 정신 차려 다시 취업하지.”

“형이 돼가지고 투자는 못할망정 악담이나 하고. 쯧쯧.”

“혹시 모를까 봐 알려주는 건데 회사를 차리려면 사무실도 있어야 하고, 책상이랑 컴퓨터도 여러 대 있어야 돼. 그리고 이런 게 있으려면 돈이란 것이 필요하고. 너 일억은 있냐?”

“일억은 무슨, 백만 원도 없는데.”

“그럼 무슨 돈으로 회사를 차리게.”

“빌렸어.”     


일성이가 생각한 창업자금은 삼천만 원이었다. 천만 원은 여동생에게 빌렸다고 했다. 매제와 부부 싸움하는 여동생의 모습이 눈에 훤했다. 천만 원은 함께 일하기로 한 팀장에게 빌렸다고 했다. 쌍팔년도도 아니고 취업시켜줄 테니 천만 원만 빌려달라고 하는 사기가 통하다니, 일성이보다 더 순박한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나머지 천만 원은 신용카드 대출을 받았다고 했다. 검소함이 몸에 밴 일성이가 신용카드를 긁어 대출을 받았다는 사실도 선뜻 믿기지 않았다.     


“뭐야? 네 돈은 한 푼도 안 든 거잖아.”

“그러네.”

“그러네? 이 계산이 어려워? 너 그러다 감옥 가.”

“허허. 갚으면 되지. 감옥에 왜 가.”


*

충무로 남의 사무실 구석자리에 있는 2평 남짓한 공간을 빌려 호가 법정일 것 같은 팀장과 회사를 시작한 지 일 년도 되지 않아 지금의 사무실로 옮겼고, 직원도 한두 명씩 늘어 착실하게 지나온 세월이 어느새 십 년이 넘었다. 사무실을 구하는 것부터 직원이 늘어나는 것까지 가까이서 지켜보며, 나는 일성이가 전 직장에서 꽤 많은 학원  광고주를 갖고 나왔다고 생각했다. 믿는 구석이 있어 무일푼 창업을 하면서도 당당했구나. 오해였다. 창업할 당시에 확보된 광고주는 딸랑 두 군데가 전부였고, 광고주별 수익이 적은 학원 광고계 특성상 그건 없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숫자였다. 회사를 운영한 지 십 년이 지났을 때쯤, 일성이는 한 번도 안 했던 회사의 위기 순간을 얘기한 적이 있다. 알고 보니 회사는 늘 위기였었다. 다음 달 직원들 월급이 여분으로 있었던 적이 십 년 세월 동안 한두 번이 다였다고 했다.      


“월급날이 이십오 일인데 이십 일에도 회사 통장에 돈이 부족한 거야. 미치는 거지. 그런데 신기한 건 그 오 일 사이에 어떻게든 돈이 모여서 간신히 금액이 맞아. 결제 질질 끌던 거래처에서 돈이 들어오기도 하고, 암튼 십 년 동안 늘 그랬다니까.”     


놀라운 이야기였지만 나는 이내 그 비밀을 알 것도 같았다. 언젠가 조류독감 때문에 한 오리 프랜차이즈 회사의 홍보물을 만들어주고 수천만 원을 물린 일성이에게, 나는 그 회사에 쳐들어가서 컴퓨터라도 들고 나오라고 한 적이 있다. 일성이는 그때도 허술했다. 


"나중에 상황 좋아지면 결제해주겠지. 뭐. 그나저나 이번 달 월급이 문젠데…." 


어쩌면 일성이네 회사의 법정 팀장도, 십 년을 이어온 거래처들도 다 허술한 사람들이 아닐까. 일성이가 그랬던 것처럼 일성이가 어려울 때 자기 사정은 뒤로 미루고 도와주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니 나를 비롯해 대부분의 주변 카피라이터들은 자의 반 타의 반 광고계를 떠났고, 일성이는 여전히 처음 만났을 때처럼 묵묵히 학원 광고를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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