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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로 Nov 04. 2020

<내 친구 이야기>

-다시 태어나도 친해지고 싶은-



*

나는 일성이가 귀엽다. 기분이 우울할 때도 일성이를 떠올리면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아무거나 다 잘 먹는 식성을 지닌 주제에 입맛이 섬세한 것처럼 맛집을 찾아다니는 것도 그렇고, 고등학교 시절에 문예부에 심취해 있었다는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는 박장대소를 했다. 내가 너무 크게 웃으니 일성이는 도대체 그게 왜 웃긴 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어서 더 웃었다. 일성이의 외모는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판매 중인 만화책 <바(bar) 레몬하트>의 등장인물 중 카피라이터 마쓰다씨를 꼭 닮았다. 술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유명한 만화지만 만화를 보지 않았다면 누군지 모를 테니 좀 더 대중적인 캐릭터로 예를 든다면, 지브리 애니메이션 <이웃집 토토로>의 토토로가 사람으로 환생한다면 아마도 일성이 그 자체일 것이다. 일성이가 충무로의 직장에 다닐 때, 택배 같은 것을 보낼 일이 있으면 수신인에 언제나 충무로 토토로 일성이라고 적어 보냈었다. 나중에 술집에서 만난 일성이가 ‘애들도 아니고 유치하게 토토로가 뭐야?’라며 입을 삐죽거리면 그 모습이 재미있어 난 또 크게 웃곤 했다. 술에 취해 일성이의 커다란 배를 쓰다듬은 적이 있었는데 어디선가 고양이 버스가 나타날 것 같기도 했다. 내가 일성이랑 친하다는 이유로 내 눈에만 귀여워 보이는 것은 아닐 것이다. 일성이의 보편적 매력에 대한 일화도 몇 가지가 있다.

      

*

내가 마라톤에 관련된 에세이를 냈을 때의 일이다. 책이 나올 때쯤에 담당 편집자는 홍보용 독자 사은품 같은 것에 대해 고민하고 있었다. 평소 잘나가는 유명 작가들의 출간 마케팅 툴로 제작되곤 하던 북 트레일러(영화 예고편 같은 책 광고 동영상)가 내심 부러웠던 나는 조심스럽게 제안을 했다. 편집자는 ‘당신이 북 트레일러 제작할 레벨의 작가?’란 속내를 숨기며 제작비가 만만치 않을 거라고 난감해했다. 나는 눈치 없이 아는 동생의 친구가 독립영화감독이니 굳이 부탁을 해보겠다고 했다. 편집자는 오십만 원 정도의 비용을 출판사에 청구할 수 있다고 했고, 다행히도 소개받은 감독은 금액에 대한 이견 없이 흔쾌히 작업을 수락해줬다. 어쩌면 아는 동생이 미리 사정을 설명한 것도 같았다. 불쌍한 형이니 돈 생각하지 말고 도와주라고. 며칠 후, 내가 건넨 보잘것없는 마라톤 대회 사진 자료들이 훌륭한 북 트레일러 영상이 되어 돌아왔다. 나는 고마운 마음에 소개해준 동생과 북 트레일러를 만들어준 감독에게 맥주 한잔을 사기로 했고, 겸사겸사 일성이도 불러 같이 마시기로 했다. 우리는 홍대 근처의 호프집에서 만나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영화감독님께서 직접 제 책의 북 트레일러를 만들어주시고 가문의 영광이었습니다. 자료도 부실해서 작업하기 힘드셨을 텐데, 결과물은 백 퍼센트 마음에 들게 보내주셔서 죄송하고 감사했습니다.” 


지인의 친구이기에 한껏 예의를 갖춰 감사인사를 건네니 감독이 입을 가리고 수줍게 웃었다. 아는 동생에게 들어 미리 알고 있었지만 영화감독은 사실 동성애자였다. 혹시나 내 의도와 상관없이 실수라도 할까 봐 조심스러웠고, 일성이를 부른 것도 좀 더 편안한 분위기를 위해서였다. 일성이는 어떤 술자리든 사람들의 마음을 둥글게 조각할 줄 아는 능력자니까! 다행히도 오고 가는 술잔 덕분에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일성이가 오줌을 누러 가고 아는 동생이 담배를 피우러 갔을 때였다. 뭔가 할 말이 있는 듯 머뭇거리던 감독이 화장실 쪽을 힐끔 쳐다보더니 나에게 물어왔다. 


“저, 혹시 일성씨 결혼했나요?” “네. 농사만 짓다 혼기 놓친 노총각처럼 보여도 벌써 애가 둘이나 있는 아빠입니다.” 


나는 그저 침묵이 어색해 아직 친해지지 않은 감독과 싱거운 대화를 하고 있다고만 생각했다.       


*

일성이 같은 스타일을 동성애자들의 세상에서 베어형이라고 부른다는 건, 감독이 먼저 자리를 뜬 후 아는 동생이 설명을 해줘 알 수 있었다. 아는 동생은 동성애자 친구를 둔 덕분에 내가 몰랐던 사실들을 많이 알고 있었다. 그쪽 세계에 대해 잘 몰랐던 나는 평소 남성 동성애자라고 하면 예쁜 남자 혹은 여성스러운 남자만을 떠올렸었다. 일성이처럼 듬직한 스타일의 동성애자 이미지도 익숙하지 않았지만, 심지어 동성애자들에게 인기 많은 스타일이란 사실에 나는 또 웃음이 나왔다. 


“그러게 왜 일찍 결혼해서 뭇 남정네의 마음에 대못을 박는 거냐? 감독님 연락처 알려줄 테니 가끔씩 야심한 밤에 문자메시지라도 보내드려!” 

“무슨 쓰잘데기 없는 소리야? 오늘 처음 그것도 잠깐 봤는데 문자메시지를 왜 보내?” 

“감독님, 자꾸 생각나요, 같은 다정한 멘트 좋잖아!” 

“허허” 


일성이는 예의 그 좋지도 싫지도 않은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술을 마셨고, 그날의 안주거리는 술자리가 끝날 때까지 졸지에 베어형 킹카로 급부상한 일성이였다.

     

*

어쨌든 일성이가 성적 소수자들에게만 국한되어 귀여운 매력을 발산했다면 보편적이란 말을 붙일 수는 없을 것이다. 남자의 외모에 비교적 깐깐한 연령대인 이십대의 여자도 일성이의 귀여움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그녀는 내가 소개팅으로 만나 짧게 연애를 했던 여자였다. 모 광고기획사의 디자이너였는데 쾌활하고 성격이 밝은, 어느 자리에서든 잘 어울리고 상대방 기분까지 환하게 만들 줄 아는 여자였다. 삼십대 때의 나는 연애를 시작할 때마다 일성이에게 소개해주는 자리를 만들었는데, 그날도 일성이를 불러 셋이 술을 마실 생각이었다. 늘 그랬듯이 홍대의 술집에서 약속을 잡았고 나는 여자 친구를 일성이에게 소개해주었다. 


“안녕하세요? 드디어 뵙네요. 오빠가 일성씨 얘기를 얼마나 많이 하던지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네요. 흐흐” “안녕하세요? 어쩌다가 이렇게 누추한 형님과 연인관계가 되셨는지….” 


일상적인 인사가 오고 간 후 술을 몇 잔 마시지도 않았는데, 여자 친구가 초면의 일성이에게 뜻밖의 요청을 했다. 


“저 혹시 볼 한 번만 잡아 봐도 돼요?” 

“네?” 


여자 친구가 평소 무례하거나 경우에 없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언젠가 홍대 거리를 함께 걷다가 털이 북슬북슬한 차우차우를 만난 적이 있었는데, 여자 친구는 딱 그때의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때도 견주에게 그랬다. '어머, 얘 이름이 뭐예요? 너무 귀여워요. 한번 쓰다듬어 봐도 돼요?' 처음 만난 여자에게 얼떨결에 양 볼을 내준 일성이는 다시 베어형 킹카로 등극했을 때의 어색한 표정을 지었고, 여자 친구는 일성이의 두툼한 양볼을 아프지 않게 움켜쥐었다 만족스럽다는 듯이 손을 떼며 얘기했다.

     

“친한 형이 이상한 여자 만나서 별 고초를 다 겪는다. 그죠? 근데 곰 인형 같이 너무 귀여우세요. 아까 들어오실 때부터 볼따구, 아니 볼을 만져보고 싶었어요.”

“붙임성이 많이 좋으신 거 같네요. 허허, 이것 참.”


*     

나는 인간관계에 있어서 모진 편이다. 코드가 안 맞는 사람과 어쩔 수없이 관계를 맺다가도 결국에는 못 참고 인연을 끊어 버린다. 우리라는 세계에서 내가 나가거나 상대를 쫓아내는 식이다. 덕분에 커뮤니티별로 한두 명의 불편한 관계를 만들고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대학원이나 광고 모임, 그 외에 함께 어울리는 어떤 집단에서도 일성이를 싫어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요시다 슈이치의 <요노스케 이야기>란 책을 보면 주인공 사후 주변인들이 인터뷰하는 장면들이 나온다. ‘바보 같은 녀석이지만 착했어요.' '요노스케를 떠올리면 즐거운 기억밖에 안 나요.’ 사람들이 일성이에 대해 얘기할 때도 비슷하다. ‘착하잖아.' '일성이라면 괜찮지.' '일성이 난 좋은데, 왜?’ 일성이를 안 지도 십 몇 년이 훌쩍 지났다. 그동안 난 단 한 번도 일성이가 짜증이나 신경질 내는 것을 본 적이 없다. 한 살 많은 것도 벼슬이라고 일성이에게 짓궂은 장난도 많이 치고, 때론 선을 넘은 농담으로 인내심을 시험해 봐도 유치한 형을 젠틀하게 무시하고 말 뿐이었다. 앞발로 머리를 툭툭 치는 조그만 고양이를 상대하지 않고, 그저 무심히 고개를 돌리는 골든 레트리버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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