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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로 Nov 04. 2020

자취방

<내 친구 이야기>

-다시 태어나도 친해지고 싶은-



*

집값 비싼 서울 시내에서 저렴한 집을 구하기 위해서는 세 가지만 충족하면 된다. 교통이 불편할 것. 햇빛이 잘 들지 않을 것. 애인을 데려오기 곤란할 정도의 낡은 건물일 것. 결혼 전 일성이가 자취하던 이태원의 달동네 빌라가 딱 그랬다. 맨 정신에 걸어가도 힘든 언덕길을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걷다 보면 욕이 절로 나오는 곳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구장창 자러 갔던 이유는 집보다 일성이네가 편해서였다. 열두 시 넘어 술에 취해 귀가하면 할증 택시비도 아까웠지만, 독립을 하지 못한 나는 부모님 눈치가 보여 야근하다가 회사 근처 사우나에서 잔다고 둘러대곤 했었다. 물론 일성이를 알기 전에 단돈 만 원으로 하룻밤 잘 곳을 해결할 수 있던 사우나를 종종 이용하기도 했다. 술을 마시다가 처음으로 일성이네 자러 간 날,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바로 냄새였다. 일성이가 자취하고 있던 곳은 방 두 개,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 부엌 하나가 딸린, 가난한 신혼부부가 부모 도움 없이 첫 살림을 꾸릴만한 초라한 다세대 주택이었다. 비슷한 집들이 밀집한 산비탈에 있어 1층임에도 반지하 같던 구조 덕분에 햇빛이 잘 들지 않았고, 음지의 세탁물이 뿜어내는 꿉꿉한 냄새가 집안 곳곳에 배어있었다. 남자 혼자 사는 집 특유의 짠한 공기도 냄새에 한몫했을 거다. 그러나 나는 일성이네 집이 조금도 불편하지 않았다. 방과 거실 바닥은 매일 쓸고 닦아야 가능할 깔끔함이 유지되어 있었고, 두 번째 방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의 책들은 반듯하게 꽂혀 있었다. 냄새가 날지언정 가지런히 걸려있던 거실 건조대의 빨래에서도, 한 번도 설거지감이 쌓여있지 않았던 정갈한 싱크대에서도, 나와는 달리 일성이의 공간에서는 게으름의 흔적을 전혀 찾을 수 없었다. 


*

냄새 다음으로 인상적이었던 건 책상 앞에 붙여놓은 아버지의 편지였다. 생각해보니 나는 아버지에게 단 한 번도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성인이 된 후로 세상의 모든 아버지와 다정함이란 단어는 결코 연결될 수 없는 것이었다. 일성이가 씻는 동안 읽어본 편지도 결코 다정함과는 거리가 먼 내용이었다. 엄밀히 말해 그 편지는 온통 잔소리로 채워져 있었다. ‘너는 집안의 가장이다. 서울에서도 정신 바짝 차리고 열심히 살아야 한다. 일전에 말했던 돈 부쳤으니 아껴 써라. 아침에 일찍 일어나라. 술 조금 마셔라.’ 편지를 찬찬히 읽어 내려가다 난 뜻밖의 전개에 웃음이 터졌다. 편지의 중간부터 살 빼라는 내용이 등장했는데, 일성이의 아버지는 편지가 끝날 때까지 일관되게 살 빼라는 내용을 반복해서 강조하셨기 때문이다. ‘비만은 만병의 근원이다. 너는 지금도 뚱뚱한 편이니 더 살찌면 안 된다. 회사일이 바쁘더라도 시간이 날 때마다 운동을 하거라. 항상 노력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생활태도가 중요한데, 사람이 게을러서는 절대로 성공할 수 없다. 많이 먹고 적게 움직여 체중이 늘면 그만큼 게을러지기 마련이다.’ 단순한 걱정을 넘어 준엄한 꾸짖음까지 느껴지던 일성이 아버지의 편지에서, 성인이 된 후 내 아버지에게서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는 다정함을 만날 수 있었다. 객지에서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회사에서 못된 상사를 만나 곤욕을 치르지는 않는지, 당신의 집보다 열악한 환경에서 서러움에 하루를 마감하지는 않는지, 고향에 계신 부모님 입장이라면 서울에서 자취하는 일성이가 말 그대로 물가에 내놓은 애였을 것이다. 일성이 아버지는 낯간지러운 안부는 가슴 깊은 곳에 숨겨두고, 혼자 지내는 일성이가 혹시나 해이해질까 편지에 잔소리를 꾹꾹 눌러 담으셨다. 일성이는 일성이대로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장남의 사명감으로 책상 앞에 편지를 붙여두고 심기일전용 부적처럼 여기지 않았을까. 일성이가 샤워를 끝마쳤을 때 괜한 부러움을 숨기려 나는 일성이를 놀리기 시작했다. 


“일성아! 아버지가 살 빼라고 하시잖아.” 

“어허, 왜 남의 편지는 훔쳐보십니까?” 

“살 좀 빼! 1차로 삼겹살에 소주 먹고, 2차로 생맥주에 치킨 먹고, 3차로 편의점 두부김치에 소주가 웬 말이냐?”

“그래서 안 드실 겁니까?” 

“나야 먹어도 되지. 우리 아버지는 나보고 살 빼라고 안 하셨거든.”

     

*

나는 아버지와 상극이었다. 아버지와 갈등이 시작된 건 대학생 때부터였지만 상극이라고 할 만큼 사이가 멀어진 건 아버지 회사에 다니면서였다. 대학교 졸업반 때 취업이 요원했고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해 아버지가 운영하시던 중소기업에 말단사원으로 들어갔었다. 첫 사회생활을 아버지 회사에서 시작해 나의 무의식 속에 ‘사장 아들’이라는 특권의식이 섞여있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삼십여 년 가까이 된 아버지 회사는 내가 보기에 문제가 많았고, 사원들은 아버지가 남의 말 잘 안 듣는 스타일인 걸 알기에 개선의 여지가 있는 부분 앞에서도 입을 닫아버리기 일쑤였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의 회사가 더 나아지길 바라는 마음을 담아 ‘사장님’에게 사사건건 대들었다. 결정적으로 사장님 방에 혼자 있는 아버지에게는 보이지 않고, 사원의 입장에서는 확실하게 보이는 어느 월급도둑 부장의 행태를 아버지에게 고자질해버린 것이다. ‘하루빨리 사장님이 그 부장의 쓸모없음을 깨달아야 할 텐데….’ 안타깝게도 아버지는 그 부장 대신에 나를 잘랐다. 후에 그 부장은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친 후 쫓겨났고 아버지의 역점적인 사업 하나도 문을 닫게 되었다. 나는 아버지 회사를 나와 곧 카피라이터가 되었고 시간이 한참 흘러 다시 아버지 회사에 들어가는 우를 범했다. ‘아버지가 뭐라고 하셔도 이번에는 무조건 참고 죽은 듯 지내야지. 아버지도 내일모레면 여든이신데 좀 부드러워지셨겠지!’ 완전한 착각이었다. 아버지도 나도 십몇 년 전 성격 그대로였고 우리는 예전보다 더 격렬히 부딪쳤다. 아버지와 한바탕 한 날이면 난 일성이에게 연락을 해 술 약속을 잡곤 했다. 속상한 마음에 일성이를 만난다고 좋은 소리를 들었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놈의 성질머리 좀 고치라니까. 에휴. 형이 변해야지, 팔십 평생 한결같이 살아오신 아버님이 변하실까?” 


유난히 쓴 소주를 마시며 일성이에게 혼이 나고 나면, 꽉 막혀 아프기까지 했던 가슴이 조금은 편해졌던 것 같다.

      

*

지금은 카톡을 ‘읽씹’해도 바빠서 그러려니 할 정도로 막역하게 지내는 사이지만, 이태원의 낡은 빌라를 들락거리던 시절의 일성이는 나에게 미안할 정도로 잘해줬다. 사회에서 만난 고작 한 살 차이의 형이 집에까지 따라와 술에 취해 고꾸라지면 귀찮을 법도 한데, 일성이는 침대 밑에서 한 번도 안 쓴 새 이불세트를 꺼내 손수 잠자리를 준비해줬다. 아침에 일어나 허겁지겁 출근 준비를 할 때면 지난 밤의 술상은 이미 치워져 있고 싱크대도 깨끗해진 상태였다. 열 번을 가면 열 번 다 그랬다. 어떤 책이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좋은 일상을 유지하고 싶다면 사랑하는 사람이 하늘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것처럼 생활하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이제는 건강까지 안 좋아져 지긋지긋한 불효자 타이틀을 숙명처럼 받아들이고 사는 요즘, 가끔씩 나는 일성이가 혼자 살던 이태원 달동네의 다세대 주택을 떠올린다. 열심히 청소를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아버지의 편지와 함께 좋은 글귀들을 포스트잇에 메모해 붙이고, 매일매일을 열심히 살아내던 일성이. 어쩌면 그때부터 일성이는 성큼성큼 어른스러운 발걸음으로 나보다 앞에서 달려가고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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