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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로 Nov 12. 2020

제주도 - 2

<내 친구 이야기>

-다시 태어나도 친해지고 싶은-



*

일성이가 결혼하기 전에는 함께 낚시를 많이 다녔다. 물고기도 못 만지면서 낚시를 좋아하는 나에게 일성이는 최고의 파트너였다. 내 낚싯대에 물고기가 걸리면 일성이는 툴툴거리며 와서는 매번 물고기를 빼주고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한 번은 여름휴가철에 속초로 낚시여행을 갔었다. 아바이 마을에서 오징어순대로 점심을 해결하고 금강대교 밑으로 낚시를 하러 갔다. 채비를 준비하려고 인근 낚시가게에 들렀다 알게 된 포인트였다. 공략 어종은 황어, 낚싯바늘이 특이했다. 물음표 모양의 커다란 귀걸이 같은 바늘이었는데 상어도 잡힐 것 같은 위용이었다. 두 시간을 넘게 서있었는데 피라미 한 마리도 안 잡혔다. 현지인으로 보이는 아저씨들은 울돌목에서 숭어를 끄집어내듯 잘도 잡았다. 철수해서 술이나 마실 생각이었다. 내 낚싯대를 걷고 일성이에게 갔다. 일성이도 낚싯대를 걷고 있었다.     


“너 잡힌 거 아냐?”

“응? 뭐가?”

“낚싯대가 휘잖아. 어 어, 황어다!”     


어른 팔뚝만 한 황어 한 마리가 일성이 낚싯대에 걸려 나왔다. 바늘도 입에 문 것이 아니라 몸통 중간에 꽂혀 있는 걸로 봐서 눈먼 황어가 지나가다 그냥 얻어걸린 상황이었다.     


“뭐야? 넌 얼마나 둔하면 잡힌 것도 모르냐?”

“어허, 챔질 타이밍을 본 거지. 모르긴 누가 몰라?”

“바늘 위치를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오냐?”

“훌치기낚시는 원래 이렇게 잡는 거야! 뭐, 황어를 잡아봤어야 알지!”     


우리는 황어 한 마리를 챙겨 인근 회센터에 가서 술을 마시기로 했다. 황어와 함께 우럭, 노래미 등을 사서 손질을 부탁드렸더니, 직원이 황어는 맛이 없어 회로 잘 안 먹는다고 했다. 일성이가 펄쩍 뛰었다. 고집을 피워 기어이 모둠회 한쪽에 황어회를 올렸다. 태어나서 그렇게 맛없는 회는 처음이었다. 아무 거나 다 잘 먹는 일성이도 머리를 갸웃거리며 한두 점 먹고는 우럭과 노래미만 먹었다. 숙소로 돌아올 때는 거의 다 남은 황어회를 일성이가 굳이 또 챙겨 왔다. 다 방법이 있다며 튀김가루와 식용유를 사 와서 남은 황어 살들을 튀겼다. 신발도 튀기면 맛있다는데 황어는 튀겨도 맛이 없었다. 다 남겼다.     


*
제주도 여행의 메인 테마 역시 낚시였다. 우리는 제주도에 도착하자마자 성산포항 종합여객터미널로 이동했다. 우도에서 낚시 장비를 대여해 2박 3일 동안 낚시만 하다 나올 생각이었다. 숙소는 미리 예약한 해오름 민박이란 곳이었다. 목줄을 하지 않은 똥강아지 한 마리가 꼬리를 흔들며 우리를 반겼다. 민박집 마당에서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놀고 있으니 개량 한복을 입은 사모님이 나오셨다.     


“서울에서 오신 분들이죠?”

“안녕하세요? 강아지 이름이 뭐예요? 너무 귀엽네요!”

“오름이예요. 성은 해, 이름은 오름. 먼 길 오셨는데 들어와서 차 한 잔 하세요!”     


민박집 건물 1층에는 수제비누나 공예품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사모님이 주신 차를 마시고 있을 때 사장님이 들어오셨다. 햇볕에 그을린 까만 피부와 주름살, 군복을 입은 모습이 나이보다 들어 보이는 전형적인 시골 농사꾼의 모습이었다. 얘기를 나눠보니 포항 분들이셨다. 남자는 해병대 출신 특유의 자부심이 대단했고, 여자는 시도 쓰고 공예품도 만드는 예술가 타입이었다. 두 분이 어떻게 만나셨을까, 란 생각을 할 때, 일성이가 특유의 친화력으로 대화를 주도해 나갔다.     


“사장님은 해병대 출신이라 그러신 지 전혀 육십대로 안 보이십니다. 사십대라고 해도 믿을 것 같아요.”

“그래요? 젊은 친구가 사람 볼 줄 아는구먼. 하하!”

“저는 비록 육군 탄약병 출신이지만, 아버님이 월남전에도 참전하셨습니다.”

“오! 훌륭한 아버님을 두셨군. 어쩐지 셋 중에서 제일 사내답더라니.”

“두 형님들은 서울 약골들이라 영 쓸 데가 없네요. 하하”     


사장님은 일성이가 마음에 쏙 든 눈치셨다. 낚시 장비 대여점을 물어봤더니 자신의 것을 공짜로 빌려주시는 것은 물론, 포인트를 알려줄 테니 함께 가자고 하셨다. 우리는 2층의 방에 짐을 풀고 내려와 사장님의 1톤 트럭을 탔다. 사장님이 일성이를 콕 집어 조수석에 타라고 했다. 나와 승권이는 짐칸에 올라탔다. 사장님이 데려간 곳은 우도항 근처의 갯바위였다. 이미 두세 명의 주민들로 보이는 사람들이 낚시를 하고 있었다. 우리는 사장님 트럭에서 낚시 장비들을 내려 갯바위로 옮기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나와 승권이가 안 보이는 것처럼 유독 일성이에게만 말을 걸었다.     


“자네 낚시는 좀 해봤나?”

“부산 사나이가 낚시 못한다고 하면 말이 되겠습니까?”

“그럼 낚싯대 좀 펴놓고 있어. 난 뭐 좀 잡히나 보고 올게!”

“걱정 붙들어 매십쇼! 릴까지 싹 다 달아놓겠습니다.”

“아! 좋아 보이는 릴 하나가 있을 거야. 독일제 선물 받은 건데 비싼 거니까 조심히 다뤄야 돼.”

“옛썰!”     


*

일성이가 능숙한 솜씨로 낚싯대를 꺼내 하나씩 세팅을 하기 시작했다. 낚시를 전혀 할 줄 모르는 승권이와, 비교적 초보자인 나는 일성이가 하는 것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프로의 손놀림으로 작업에 열중하는 일성이에게 말을 걸었다.     


“일성아, 우리가 뭐 도와줄 거 없어?”

“형들은 가만히 있는 게 도와주는 거야!”     


주민들의 조황을 확인하고 온 사장님이 어느샌가 돌아와 일성이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계셨다.     


“씨알이 굵진 않은데 한두 시간 하면 횟감은 나올 거 같아.”

“준비 끝났습니다. 저희는 어디서 할까요?”

“자네들은 여기서 해. 나는 저기서 할 테니. 제일 큰 거 잡는 사람은 내가 아끼는 술 한 잔 줄 테니 다들 파이팅해보자고!”     


사장님은 우리들에게 연식이 돼 보이는 낚싯대를 하나씩 나눠준 후, 독일제 릴이 달린 근사한 낚싯대 하나를 챙겨 포인트로 이동하셨다. 멀리서 사장님이 멋진 폼으로 캐스팅을 하였다. 크게 휘며 바다로 향하는 낚싯대와 더 큰 궤적으로 날아가 버리는 사장님의 애지중지 독일제 릴. 백 미터 정도의 거리에도 빛과 소리의 시간차가 있는 것일까. 번개가 친 후 천둥소리가 들리듯 뒤늦게 릴이 바다에 빠지는 풍덩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일성이가 릴을 끼운 후 제대로 조이지 않아 캐스팅할 때의 관성력을 이기지 못하고 날아가 버린 것이다. 민박집으로 돌아오는 길, 일성이는 차마 조수석에 타지 못하고 우리와 같이 짐칸에 자리를 잡았다. 쭈그리고 앉아 시무룩한 얼굴로 먼바다를 보는 모습이, 아마도 여자 친구를 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여행이 끝날 때까지 가급적 사장님과 마주치지 않으려고 노력했고, 낚시 대신에 거북손을 잡으며 시간을 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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