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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별로 Nov 17. 2020

선물

<내 친구 이야기>

-다시 태어나도 친해지고 싶은-



*

일성이는 말하는 걸 좋아한다. 일성이는 하루에 세 마디 한다는 부산 남자다. 부조화다. 먹성이 좋다. 더불어 맛집을 찾아다니는 미식가다. 아이러니다. 각종 무슨 데이에 무심하다. 하물며 생일 때 술 먹자고 연락하면 ‘나 음력 쇠는데’라며 머리를 긁적이는 소리가 핸드폰 너머로 들려온다. 그래도 만나서 술은 마셨다. 본인의 기념일에는 시큰둥한 곰이어도 타인의 기념일에는 때론 여우 짓을 하기도 한다. 땅콩에 환장하는 나를 위해 생일 즈음에 우도 땅콩을 사서 보내는 식이다. 땅콩 좀 먹어본 사람은 알 것이다. 중국산 땅콩의 세 배 가격이 국산 땅콩, 국산 땅콩의 한 배 반 가격이 여주 땅콩, 여주 땅콩의 두 배 가격이 우도 땅콩이다. 땅콩은 마을 단위로 들어갈수록 비싸지는 와인과 닮았다. 동글동글 조그만 우도 땅콩을 껍질 채 먹을 때 고소함이 입안에 퍼지며 자꾸 웃음이 나왔다. 계절 바뀐 줄도 모르고 춘삼월에도 겨울 옷 입고 다닐 것 같은 녀석에게 이런 센스라니! 물론 매년, 매번 챙기는 건 아니다. 기념일이 뭐 대수냐며 그냥 지나치다가 가끔씩 깜짝쇼를 열어 평범한 날을 특별하게 만드는 식이다.     


*

집에 불이 난다면 무엇을 제일 먼저 갖고 나올 것인가. 누군가 나에게 묻는다면 떠오르는 물건이 있다. 언젠가 생일도 한참 지난 어떤 날에 일성이에게 받았던 냉장고 자석이다. 한동안 냉장고 자석을 모았었다. 선물을 하기에도, 선물로 받기에도 냉장고 자석은 부담 없이 딱 좋다. 여행용 선물로 제일 만만한 것이 열쇠고리일 것이다. 그러나 열쇠고리는 성의 없는 선물의 대명사로 전락했다. 비밀번호가 열쇠를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하며 위상은 더 추락했다. 고마움을 표시하며 받고 나서 서랍 속에서 잊힐 확률이 높다. 냉장고 자석은 하루에 한두 번은 어김없이 보게 된다. 달걀을 꺼내고 김치를 꺼내고 남은 치킨을 집어넣을 때마다 선물한 이를 생각나게 한다. 선물 받지 않고 여행지에서 산 냉장고 자석은 10달러 미만의 푼돈으로 만날 수 있는 무한리필 추억 선물이다. 냉장고 자석이란 정체성만으로도 나는 기쁘게 받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일성이에게 받은 냉장고 자석은 조금 더 특별한 것이었다. 회사 대표란 지위를 남용해 회사 디자이너들에게 나의 캐리커처 작업을 시켜 만들었다. 회사일로도 바쁠 직원들이 툴툴거리며 작업하는 모습이 눈에 선했다. 기어이 악덕 고용주를 자처하면서 내가 좋아할 모습에 일성이는 흐뭇한 미소를 지었으리라. 작은 회사다 보니 디자이너들의 솜씨가 빼어나지는 않았다. B급 감성에 다소 조악한 퀄리티의 냉장고 자석을 받고, 나는 하마터면 울 뻔했다. 그렇게 정성 깃든 선물은 일찍이 여자 친구에게도 못 받아본 것이었다.      


*

일성이의 깜짝쇼는 아내에게도 펼쳐진 적이 있었다. 나와 준영이, 일성이랑 셋이 마라톤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호놀룰루에 갔을 때였다.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날 밤에 우리는 면세점 투어를 했다. 명품 브랜드에 해박한 준영이가 설명을 해주면 나와 일성이는 비싼 가격에 입맛만 다시며 따라다녔다. 셋 중 유일한 유부남이었던 일성이는 여행을 허락해준 아내에게 괜찮은 선물을 사가야 하는 미션이 부여됐다. 검소한 일성이와 면세점의 명품은 참 안 어울렸다. 나와 준영이는 퍼스널 쇼퍼가 되어 삼사십만 원대의 적당한 아이템들을 일성이에게 추천했다. 

     

“무슨 동전지갑이 삼십만 원이 넘어?”

“명품이잖아!”

“동전은 끽해야 만 원어치 들어가겠네.”

“일성아, 이 구두 어때? 페라가모야!”  

“칠만 원이면 살게. 얼마야?”     


마지막으로 간 곳은 루이뷔통 매장이었다. 돌아다닌 곳 중에 가장 고급스러운 분위기였다. 왠지 물건들을 함부로 만지면 안 될 거 같아 직원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흰 장갑을 낀 손으로 보석을 다루듯 물건을 꺼내 보여줬다. 직원과의 커뮤니케이션은 영어에 능한 준영이 담당이었다. 나와 일성이가 영어를 잘했다고 해도 역할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마침 일성이는 우리 중에  막내라는 이유로 잡동사니가 들어있는 검은 비닐봉지를 들고 있었다. 탑골 공원에 있으면 자연스러울 행색에 도도한 루이뷔통 직원은 일성이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반면에 한껏 멋을 낸 나도 반면은 무슨, 일성이와 함께 ‘공략대상 아님’ 판정을 받았다. 훤칠한 키에 멀끔한 외모, 유창한 영어실력의 준영이가 루이뷔통 직원과 대화를 할 때였다. 일성이가 둘 사이에 끼어들며 한마디 했다.      


“준영이형, 나 이거 살래!”             


일성이가 고른 것은 백만 원도 넘는 여성용 지갑이었다. 가격표에서 두둥 소리가 나는 것 같았다. 여행에서 돌아와 몇 달이 지난 후 일성이와 술을 마실 때 제수씨의 반응을 물어본 적이 있었다. 누가 일성이 부인 아니랄까 봐 딱히 좋아하는 내색도 없었다고 했다.     


“그래도 계속 갖고 다니긴 하던데.”     


다 지난 일 뭘 그런 걸 물어보냐는 표정으로 일성이는 술을 마셨다.     


*

나는 일성이 아버지와 하루를 단둘이 보낸 적이 있었다. 일성이 신혼집을 알아보기 위해 부산에서 아버지가 올라오셨는데. 회사일로 바쁜 일성이가 아버지의 일일 운전기사가 되어 달라며 부탁을 해왔었다. 나는 일성이 아버지와 같이 집을 보러 다니고 점심식사도 같이 했다. 편한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일성이가 왜 아버지를 존경하는지는 짐작이 갔다. 퇴근한 일성이를 만나 헤어질 때까지 아버지는 나에게 계속 존댓말을 사용하셨다. 아들 친구에게 반말은 ‘국룰’인데도 말이다. 그런 아버지에게 일성이가 깜짝쇼를 선물한 적이 있었다. 아버지의 예순여섯 번째 생신 때 직접 쓴 카피로 신문광고를 만든 것이다. 일성이는 쑥스럽지만 자랑하고 싶은 예의 그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링크를 보내줬었다. 카피라이터 선배로서 냉정하게 봤을 때 흡족한 카피는 아니었다. 맞춤법, 띄어쓰기, 같은 조사의 반복, 오글거리는 톤 앤 매너, 정돈되지 않은 카피 레이아웃 등. 일성이의 진심 앞에서 전부 무용한 잣대들이었다. 당시에 나는 ‘기특하네!’ 정도의 반응을 보였던 것 같은데, 나이를 먹고 다시 보니 뭉클한 감동이 새삼 전해졌다. 어느 유명한 작가가 트위터에 소개하기도 하고, 네티즌들 사이에 잔잔한 반향을 일으키기도 했던 일성이 깜짝쇼의 백미. 다음은 일성이가 이천십년 십일월 이십오일 경남도민일보 19면에 게재한 광고 카피다. 

              

아버지 생신 축하드립니다

     

6살

유치원 입학 전, 집안 어르신 부탁을 거절할 수 없어 당신께서 서명했던 연대보증으로 마당 넓은 이층집과 이별해야 했습니다.     

13살

취수장 말단 공무원으로 삶의 2막을 연 당신,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매주 낮과 밤이 바뀌는 당신의 2교대를 먹고 저는 그렇게 자랐습니다.     

18살

어줍잖은 성적으로 꾸중을 들었던 그날, 처음으로 당신의 분노에 대꾸했습니다. 늦은 저녁, 취기 오른 얼굴에 맺힌 당신의 눈물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25살

제대 후 동아리 활동에 더 열심인 저를 보며 홀로 공부를 시작하셨습니다. 노후를 스스로 개척하겠다는 당신의 의지는 10년 가까운 책과의 씨름으로 이어졌습니다.     

33살

정년퇴직을 하신 당신의 손에는 돋보기와 함께 공인중개사와 주택관리사 자격증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35살 

나이 앞에 무기력한 자격증을 등 뒤로 감추고 당신은 아파트 경비원으로 취직하셨습니다. 24시간 격일근무를 한 당신의 손에는 80여만 원과 자식에게 손 벌리지 않는다는 자부심이 쥐어져 있었습니다.     

37살

체력저하와 야간근무로 인한 피로누적으로 뇌경색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왔습니다. 수술로 건강은 어느 정도 회복됐지만 이제는 몸 걱정을 하면서 살 나이가 되었습니다.

     

‘나’를 던져 ‘우리’의 깃발이 되어주고자 살아온 당신, 당신의 65년 힘겹고 숨 가빴던 노동에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힘겨운 오르막길, 늘 혼자였지만 이제는 저희가 당신의 다리가 되겠습니다. ‘건강’과 ‘행복’이 남은 여생, 삶의 화두가 되기를 소원하면서…

      

사랑하는 아버지 강용호의 65주년 생신을 맞아 아들 일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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