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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우 Sep 26. 2022

#15 2022 연초

위기

 여자친구는 잡지사에 다니는 기자다. 요즘 시대에 누가 종이 잡지를 읽을까? 나는 내심 앞으로의 미래가 걱정되는 직업군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여자친구는 2년 전부터 꾸준히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도대체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 건지는 같이 살고 나서 제대로 알 수 있었다. 바로 시상식 영업이었다! 네임드 잡지사가 주관을 하는 시상식. 무슨 무슨 브랜드 대상. 소비자 경영 대상.. 뭐 이런 식의 시상식이 바로 영업을 통해 이뤄지는 거였다. 업체들에 전화를 돌려 시상식을 따내면 그 비용에서 얼마를 잡지사 기자가 떼 가는 식이었다. 방송에서도 이런 시상식의 문제점이 방송되기도 했다. 돈을 받고 시상식을 해주다니... 생각해보면 좀 어이없는 일이었지만, 잡지사는 이런 식으로 생명력을 연장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여자친구는 집에서 근무를 하기 시작했다. 나는 아프기 전부터 백수 신분이었으니 계속 집에 있었다. 24시간 365일 같은 공간에서 같이 있다 보니 스트레스가 점점 커졌다. 좁은 집이라 옆방에 있어도 어쩔 수 없이 여자친구가 영업하는 전화 목소리를 계속 들을 수밖에 없었다. 여자친구는 백 군데에 전화를 걸어 한두 군데 업체에서 인터뷰 약속을 따냈다. 스피커폰으로 통화하는 여자친구의 목소리는 옆방에 있는 내게 생생하게 들려왔다. 스팸 전화 취급하는 업체 대표들의 냉랭한 목소리도 함께였다. 


 영업이라는 것이 원래 그렇지만, 계속되는 거절에 익숙해져야 했다. 내가 영업하는 것도 아닌데도 그 거절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가 굉장한 스트레스였다. 저런 거절을 이겨내고 꾸준히 영업에 성공하는 여자친구가 대단했다. 요령이 생겼는지 여자친구의 월급은 점점 올라갔다. 2021년이 끝나갈 무렵 여자친구가 번 돈을 계산해보니 대충 7천 정도였다. 세금 떼고. 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월급이 250이었으니 프리랜서로 전환하고 거의 두 배가 넘게 뛴 셈이었다. 대단한 성과였다. 이런 식이면 2022년에는 1억 연봉이 가능할 것 같았다.


 나도 이제 뭔가를 해야 했다. 당장 조감독일을 할 수는 없으니 시나리오를 다시 쓰는 방법밖에 없었다. 집에서는 여자친구의 전화통화 소리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내가 나가기로 했다. 근처 스터디 카페를 알아보니 하루에 5천 원 정도면 4시간 정도 쓸 수 있었다. 4시간 내내 집중해서 시나리오를 쓰긴 힘들겠지만, 집에 있는 것보다는 나았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떨어져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너무 늦은 걸까. 여자친구는 연초가 되자 더욱더 불안해했다. 매달 600씩 꾸준히 벌다가 1월달에 500 정도로 떨어질 것 같자 심하게 우울해했다. 연초에 1억 연봉을 목표로 하겠다고 했는데, 시작부터 삐걱대니 그럴 만도 했다. 나는 250 벌던 시절 생각해봐라. 그래도 500이면 큰돈 아니냐고 위로했지만, 여자친구는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여자친구가 아침에 업체에 영업 전화를 돌리다 말고 울기 시작했다. 계속되는 거절 전화에 지친다고 했다. 너무 힘들다고 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여자친구가 힘든 건 바로 나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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