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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우 May 15. 2022

#14 2021 연말

생계

 실제로 몸 컨디션이 꽤 좋아졌다. 꾸준한 운동과 식단 관리. 스트레스받지 않는 생활. 그것만큼 건강에 좋은 건 없다. 건강 회복만을 꿈꾸며 오직 그것에만 매진한 결과였다. 생계유지를 위해 일을 계속해야 되는 상황이 아니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내 몸은 건강해지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완치가 된 건 아니었다. 내 요추와 흉추 어딘가에 암세포는 아직 남아있었다. 많은 암환자들이 완치 판정을 받고 예전 생활로 돌아갔다가 다시 재발하곤 한다.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면서도 일단 검사 결과가 좋자 내 마음가짐은 조금씩 흐트러졌다.


 그동안 억지로 참았던 음식들이 먹고 싶어졌다. 라면과 치킨, 콜라. 아프기 전엔 매일같이 먹던 음식이었는데, 그동안 참는 게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특히 라면은 계속 생각날 정도로 먹고 싶었다. 그래서 여친이 외출하고 없을 때 몰래 라면을 먹었다. 그렇게 먹고 싶었던 라면이었는데, 막상 먹으면 예전과 같은 맛이 아니었다. 괜히 속도 더부룩한 것 같기도 하고. 죄책감 비슷한 감정도 들었다. 


 운동 횟수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일주일에 세 번씩 산에 올랐었는데, 횟수가 한 번으로 줄 때도 있었고, 아예 빼먹은 주도 생겼다. 여자친구는 그런 나를 보며 걱정을 했다. 


"너무 몸 관리 안 하는 거 아냐?"

"내가 알아서 할게, 걱정 마"


 암이라는 것은 언제 어떻게 커질지 모르는 상황이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하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한 번 마음가짐이 흐트러지자 몸 관리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일단 건강에 관한 이슈가 잠잠해지니, 그동안 암묵적으로 꺼내질 않았던 직장과 결혼 문제가 슬슬 수면 위로 나오기 시작했다. 건강 회복에만 힘쓰라며 아부지가 금전적인 도움을 주고 계셨고, 작년 한 해 동안 쉬면서 주식 투자에 신경을 썼더니 나름 괜찮은 수익도 올리고 있었다. 


 하지만 코로나는 끝날 줄 몰랐다. 사회적 거리두기는 내가 몸담고 있던 영화업계 전체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극장에 사람들이 안 가기 시작했고, 그러는 동안 OTT 산업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극장에서 돈을 벌 수가 없으니 찍어놓은 영화도 개봉을 안 하기 시작했다. 창고영화들만 간간히 개봉을 했지만, 완성도가 떨어지니 더욱더 관객들에게 외면을 받았다. 영화업계의 이런 분위기는 더욱더 신인감독의 입봉을 더욱더 힘들게 했다. 내 미래에 대한 고민은 더욱더 커졌다. 이제 영화가 아닌 드라마를 해야 하나? 드라마도 데뷔하려면 영화 경력이 있어야 할 텐데. 영화 시나리오보다 드라마 대본부터 써야 되나? 


 비슷한 매체이지만 영화와 드라마는 확연히 다른 분야이다. 2시간에 이야기를 마무리하는 영화와 호흡을 길게 가져가는 드라마는 애초에 이야기 틀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 혼란스러웠다. 코로나가 끝난다고 해도 극장이 살아날까? 완전히 없어지진 않겠지만, 예전처럼 천만 영화는 꿈의 관객수일까?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다.


 코로나와 내가 아픈 시기가 정확히 겹쳐서 좋은 게 하나 있다면, 나 하나만 X 된 것은 아니라는 점이었다. 다들 힘들어했다. 영화 투자가 위축이 되다 보니 시나리오가 있어도 투자심사 자체가 열리지 않았다. 참 못 된 심보이지만,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위로가 되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다들 잘 나가는데, 나는 뭐 하고 있나?라는 생각을 매일같이 했을게 뻔하다. 


 그렇게 2021년이 끝나가고 있었다.

아버지는 2022년부터는 금전적인 도움을 끊겠다고 했고, 나도 그러시라고 했다. 이제 몸도 나아졌으니 슬슬 일을 다시 시작할 타이밍이었다. 


 굳이 여자친구한테 그 이야기를 하지는 않았다. 워낙 불안감이 많은 사람이라 괜히 걱정거리를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똑같이 생활비를 내며 그 돈으로 같이 생활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일상생활하는 것은 문제가 없었다. 그동안 모아놓은 돈을 조금씩 쓰며 2022년에는 뭐든 할 생각이었다. 


 2021년 12월 말. 여자친구와 오랜만에 양꼬치를 먹으러 갔다. 맛있게 양꼬치를 먹는 중에 여자친구가 물었다.


"아버지는 계속 돈 주신대?"


 순간, 멈칫했다. 사실대로 말해야 하나? 하지만 숨겨서 뭐하겠어?

그래서 사실대로 말했다. 아버지 돈은 이제 안 받기로 했고, 당분간은 모아놓은 돈 쓰면서 살 거라고. 


 그랬더니 여자친구의 표정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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