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연수 Jan 25.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48장: 싸움과 폭력  

누가 더 강한지

[48장: 싸움과 폭력]



초중고 시절, 남자아이들 무리에서 지내면서 주먹다짐을 볼 일이 참 많았다. 놀다가 서로 감정이 상하면 쌍욕을 주고받다가 한 쪽이 다른 한 쪽을 때린다. 맞은 쪽이 맞받아쳐서 반격을 하면 싸움이 시작되고, 주변 아이들은 “야야 맞짱 뜬다!!” 라며 우루루 몰려와 구경을 한다.

한창 혈기왕성하고 제각각인 10대 남자애들을 교실이라는 작은 공간에 넣어놓았으니 얼마나 서로 부딪칠 일이 많았겠는가. 장난치고 놀다가 기분나빠서 싸우기도 하지만 단순히 누가 더 쎈지, 서열을 매기기 위해 싸우는 경우도 많았다. a가 b를 이겼는데 b는 c를 이긴적이 있다고 하면, a는 자동으로 c보다 강한 것이 된다. 그런식으로 상위권에 랭크된 강자는 그만한 권력을 누리게 되고, 자신보다 하위권인 아이들끼리의 싸움을 부추기기도 한다. 그런 시스템(?)에 의해서 나도 딱 한 번 거의 최하위권이었던 아이와 싸움을 해 본적이 있다. 이기긴 했지만 그 다음부터는 겁나서 그만두었고, 최하위권 바로 위 서열에 머물렀다.


철없 어린시절 이야기를 왜 하느냐면 폭력이 무엇인지를 생각해보기에 앞서서, 우리가 무엇을 ‘싸움’이라고 부르고 있는지를 먼저 짚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상대가 싫고 기분이 나빠서 싸울수도 있고, (좋은건 아니지만) 누가 더 우위인지 서열을 매기고 싶어서 싸울수도 있다. 그런데 이 때 전제가 하나 있다. 바로 양측간의 동등성, 즉 힘의 균형이다.

상대가 나를 먼저 때렸다면 나도 곧장 때릴 수 있어야 싸움이 성립할 수 있고, 상대가 나보다 확실히 강한지 약한지 단정할 수 없는 정도여야 싸움이 성립할 수 있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둘이 체격이나 힘 차이가 나서 한 쪽만 때린다면 그건 싸움이 아니라 일방적 폭행이 된다. 애들끼리의 말로 (a가 b를)‘깠다’ 혹은 ‘털었다’고 표현하고는 했다.     

물론 사람이 사람을 때려서는 안 된다. 신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우리는 말로도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않기 위해 조심해야 한다. 그렇지만 두 사람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의 싸움을 한 것이라면 그건 관계의 문제이고, 관계의 문제는 서로간의 솔직함과 용기만 있으면 많은 부분들을 해결해나갈 수 있다.


그런데 훨씬 더 많은 권력과 힘을 가진 쪽에서 상대적 약자에게 일방적으로 상처를 준 경우라면 조금 다르다. 그건 단순히 두 사람의 관계문제를 넘어서 두 사람을 둘러싼 사회구조와 연관이 있을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사장이 직원에 대해, 어른이 아이에 대해, 남성이 여성에 대해, 비장애인이 장애인에 대해 갖는 권력은 그 개인이 잘나서 갖게된게 아니라 단지 그 개인의 사회적 위치가 그 권력을 승인해줬기 때문이다. 직원은 사장한테 아무리 욕을 해도 별다른 타격을 줄 수 없지만, 사장은 직원에게 “너 일 잘 못하네” 라고 한 마디만 해도 직원은 해고당할 불안을 겪게 된다. 대개 여성이 남성에게 “강간해버리겠다” 라고 해도 남성은 별다른 위협을 느끼지 않겠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그 말 자체로도 꽤나 심각한 (성)폭력이 된다.


내가 겪었던 폭력 중에 가장 큰 폭력이 가정폭력인데, 글쎄, 부친과 내가 동등한 위치였더라면, 부친이 나에게 폭언과 모욕을 일삼을 때 나도 똑같이 되받아칠 수 있는 위치였더라면 내가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학창시절 남자아이들처럼 싸우고 화해하고 툭툭 털어내고 그럴 수 있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때의 나는 너무나 어렸고 여렸다. 그 때 부친으로부터 겪었던 폭력이 영혼의 상처가 되어 평생토록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내가 아직도 그 날에 살고있는 것 같다가도, 어쩌면 그 날 이후로 이미 나는 죽은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트랜스젠더로서도 당연히 무수한 폭력을 겪어왔고, 앞으로도 나는 죽을때까지 겪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누군가가 나의 트랜스젠더 정체성을 공격한다면 그것 또한 싸움이 아니라 폭력으로 분류될 것이다. 나를 공격하는 사람과 나의 위치가 대등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트랜스젠더가 아닌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를 알고있는가? 뒤에서도 다시 설명하겠지만, 트랜스젠더의 반댓말은 시스젠더(cisgender)라고 한다. “트랜스젠더는 징그럽다” 라고 말하는 사람에게 내가 똑같이 “시스젠더는 징그럽다” 라고 받아친다 한들, 어떤 타격이 있겠는가? 시스젠더가 뭔지도 모를텐데. 트랜스젠더 뿐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의 위치에 놓여있는 사람들은 그러한 혐오나 폭력에 대해서 모두 자유롭지 못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싸움을 이어가고자 한다. 내가 사회구조와는 대등하지 못할지라도 내 자신과는 대등한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내 안에서는 삶을 더 이어가고자 하는 마음과 끝내고싶은 마음이 서로 싸우고 있다. 그렇게 매일매일의 싸움에서 이긴 내가 또 이렇게 오늘을 살아간다.




작가의 이전글 <나의 트랜지션 일기> 47장: 나의 신앙고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