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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Sep 18.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68장: drop the 'T'

save the 'T'

[68장: drop the 'T']



역사적으로 성소수자운동은 동성애자운동이었다. 주로 시스젠더 동성애자들, 특히 백인 게이남성 위주로 동성애자의 권리를 위한 운동이 전개가 되었다. 동성애자의 권리라고 하면 동성과 연애할 권리, 동성과 섹스할 권리, 동성과 결혼할 권리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당연하게도 동성애자권리운동은 트랜스젠더의 권익을 대변해주지 못했다. 트랜스젠더라는 용어가 보편화되기 이전의 시대, 즉 성소수자=동성애자였던 시대에는 많은 트랜스젠더들이 혼란을 겪었다. 소위 말해 ‘기집애같은 남자’는 다 게이로 통용되었기에, 남자를 좋아하지 않거나 치마를 입고 싶어하는 트랜스여성은 자신을 설명할 언어가 없었다.      


트랜스젠더는 언제나 이곳에 존재했다. 다만 동성애자 커뮤니티의 커다란 깃발 아래 머물러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동성애자라는 것과 젠더가 분리되기 시작하면서 트랜스젠더라는 새로운 용어가 필요해졌다. 많은 비백인 커뮤니티의 트랜스젠더는 여전히 자신을 동성애자라고 칭했다. 미국 백인 문화가 성적 지향과 젠더를 나누는 극소수의 문화에 속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실제로 많은 나라에서 트랜스젠더라는 표현은 거의 쓰이지 않는다. 동성애자권리를 옹호하는 이들은 크로스드레서, 트랜스섹슈얼, 드랙퀸, 인터섹스, 스톤부치에게 앞으로 싸워야 하는 투쟁을 떠맡겼다. 동성애자권리옹호자들이 퀴어함을 사랑할 수는 있었겠지만, 퀴어하게 보이거나 행동할 수 있었을까? 대답은 여전히 아니오였다.   
/리키 윌친스, 『퀴어,젠더,트랜스』中   


동성애자권리운동은 젠더 자체나 ‘퀴어하게 보일 권리’ - 예를 들어 지정성별 남성이 치마를 입을 권리 –를 요구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오히려 혐오세력의 공격에 대한 전략으로서 정상성 규범(남성성 및 여성성)에 더욱 순응하는 방식을 택하기도 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성소수자운동을 비판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만큼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 동성애자의 위치성이 다르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함이다.

그렇기에 해외에서는 ‘drop the ’T’ 라는 구호도 있다. LGBT에서 ‘T’를 빼자고 하는 주장이다. 당연하게도 소수자라고 해서 항상 소수자 편이 아니듯이, 게이,레즈라고 해서 다 트랜스젠더를 옹호하는게 아니다. 동성을 사랑하는 것은 선천적인 것이고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자신의 성별을 바꾸려고 하는건 정신병이고 자기학대라고 생각하는 게이.레즈가 많다. 그래서 해외에서는 LGB의 권익만을 위하는 단체도 있다.      




해외 drop the T 이미지



우리나라도 당연히 그런 기조가 있다. 앞에서 말한 TERF 이외에도 게이,레즈 커뮤니티에서도 트랜스젠더에 대한 무지와 혐오가 심각하다. 동성애자 정체성을 가졌으면서 트랜스젠더를 이해못한다고 하거나, 트랜스젠더는 퀴어에서 빼야한다고 하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트랜스젠더들도 당연히 성적 지향이 다양하게 존재하는데. 트랜스젠더인 사람이 게이 커뮤니티나 레즈 커뮤니티에 들어가기는 쉽지 않다. 대부분이 시스젠더인 곳이다보니 사람들은 트랜스젠더가 있을 것이라고 잘 상상하지 않는다. 대화를 하다가 트랜스젠더라고 커밍아웃이라도 한다면 “저는 ‘진짜’ 여자(남자)가 좋아요”라고 퇴짜를 맞기 일쑤다. 그러니까 트랜스여성이나 트랜스남성은 배제되는 것이다. 실제로 나도 모 레즈비언 어플에서 친구를 구하려고 쪽지를 보냈다가 트랜스젠더라는 이유로 거부당한 적이 있다. 트랜스젠더는 퀴어 커뮤니티에서조차 발붙이기 힘든 것이다.         


트랜스젠더가 이렇게 이중, 삼중의 억압을 겪는 것에 비해 자신을 설명할 언어가 정말로 부족하다고 느낀다. 동성애자의 경우 “당신들(이성애자들)이 이성을 좋아하는 것처럼 우리는 동성을 좋아한다”라고 설명하면 이해시킬 여지가 있는 반면 트랜스 정체성은 그게 어렵다. “당신이 여성인데 누가 자꾸 당신을 남자 취급하면 어떻겠는가?” 라고 질문해봤자 시스젠더에게는 애초에 미스젠더링이라는 개념이 성립하지 않으니 이걸로는 설명할 수 없다(시스젠더 여성이 남자 취급을 받는것과 트랜스젠더 여성이 남자 취급을 받는게 어찌 같겠는가?). 설명하기 힘들다보니 이해시키기도 어렵고, 그러다보니 혐오와 조롱에 더 노골적으로 노출될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사회적 소수자는 차별과 혐오를 당하는게 일상이다. 그런데 종류에 따라 그 타격의 정도가 다르다. 여성혐오는 여성집단 전체를 공격하는거고, 성소수자혐오는 성소수자 집단 전체를 공격하는 것이라 그래도 다같이 얻어맞는다는 동지의식(?)이 있다. 그런데 ‘drop the T’는 퀴어 중에서도 트랜스젠더만을 배제하고 혐오하는 것이기 때문에 더 고립감이 강하게 든다. 나만 얻어맞는 기분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무지개 플래그만 봐서는 안심할 수 없게 되었다. ‘성소수자’,‘퀴어’,‘무지개’ 같은 키워드를 내세우고 있는 곳에서도 트랜스혐오를 많이 겪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나는 성소수자 중에서도 트랜스젠더만을 더 적극적으로 지지하는 트랜스젠더 앨라이가 많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읽는 분들이 트랜스젠더 앨라이가 되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drop the 'T'에 대항하여 save the 'T' 가 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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