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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Sep 28.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70장: 트랜스여성으로 산다는 것

참을 수 없는 무거움

[70장: 트랜스여성으로 산다는 것]


※ 이 글에는 혐오표현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트랜스여성은 트랜스젠더로서의 억압과 여성으로서의 억압을 교차적으로 겪는다. 사회적 여성성을 수행하려고 하는 사람이기에 여성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당하며, 그러면서도 동시에 여성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존재를 부정당한다.

나는 트랜스여성에 대한 기사나 사람들의 인터넷 반응을 유심히 보는 편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일반적인 혐오표현이나 욕설에 더해서, 여성혐오적인 악플들도 많다. 트랜스여성이 여성에게 강요되는 사회적 미에 부합한다면 성적 대상화나 성희롱의 대상이 되고, 부합하지 못한다면 “저딴게 어떻게 여자냐”고 모욕을 당한다. 트랜스여성이 얼마나 ‘여성’스러운지 검열하고 평가하는 그 시선이, 바로 이 사회에서 여성이라고 호명되는 모든 집단에게 향하는 가부장적 시선이다.      


예를 들어 어떤 트랜스여성의 큰 체격과 굵은 목소리, 호쾌한 성격에 대해 ‘남자 같다’ 라고 조롱하고 비하하는건 여성에 대한 어떤 자격이 있음을 전제로 한다. 시스여성들 중에서도 사회적 미에 부합하지 못하고 ‘여성’스럽지 못하는 사람들은 아주 많다. 그 여성들을 향해왔던 시선이 트랜스여성에게도 고스란히 향하는 것이다. 그래서 트랜스여성들이 트랜지션을 하거나 여성성 수행을 할 때, 여성에게 가해지는 그 사회적 시선을 그대로 내면화하게 된다. 머리를 기르고 살을 빼고 화장을 하고 가슴을 키우고 하늘하늘한 옷을 입는 등의 외모적인 부분 뿐만 아니라 말이나 행동에서도 ‘여성스러움’을 체화하게 된다. 본인이 원하고 좋아해서일수도 있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여성임을 인정받지 못하니까. 물론 그 모든 것을 성실히 수행해서 간신히 인정받게 되어도 비난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되면 또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강화한다’ 는 비난을 받게 된다. 연예인 하리수 씨는 자신이 원래 성격이 털털하고 시원스러운데, 하도 ‘원래 남자였던 사람이라 저렇다’고 조롱받으니까 눈치를 보게 되면서 성격도 바뀌게 되었다고 한다. 다리를 벌리고 앉았더니 남자같다고 욕을 먹어서 다리를 가지런히 모으고 앉게 되었는데 또 그러면 그런대로 너무 여자다움에 집착하는거 아니냐고 욕을 먹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뭘 어찌하든 욕을 먹는 것이다. 안 꾸미면 남자같다고 욕먹고 꾸미면 여성성 강화한다고 욕먹고 체격이 크면 남자같다고 욕먹고 체격이 왜소하면 ‘남자무리에서 도태됐으니까 만만한 여자무리에 끼고싶어서 그러는거다’ 라고 욕먹고 여자를 좋아하면 ‘그냥 여자 좋아하는 남자 아니냐’, ‘성도착증 변태 아니냐’고 욕먹고 여자에 관심없으면 ‘역시 남자라서 여자 입장에 공감 못하네’ 라고 욕먹고 수술을 안했으면 ‘꼬추달렸는데 왜 여자냐’ 라고 욕먹고 수술을 하면 ‘그냥 고자 아니냐, 꼬추없다고 여자되냐’고 욕을 먹는다. 한때는 내가 이리저리 조심하고 검열하면 욕을 안먹을줄 알았다. 좋은 모습을 보이며 차분히 설명하면 설득이 될줄 알았다. 그런데 그것은 나의 순진한 착각이었고 뭘 어찌하든 욕할 사람은 욕하더라. 어차피 뭘해도 욕먹을거면 내가 원하는대로 살기로 했다.      


어차피 욕할 사람은 욕하고, 특히나 위축되어 있으면 더 욕한다는 사실을 아주 충격적으로 깨닫게 된 사건이 있었다. 트랜지션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됐을 때, 어떤 심리상담센터에서 하는 집단상담 프로그램을 참여한 적이 있었다. 자조모임처럼 서로 위로하는 곳이 아니라 인간관계 연습이 주 목적인 곳이었고, 트랜스젠더지만 ‘평범하게’ 사람들이랑 어울리고 싶었기 때문에 집단상담을 통해 그걸 훈련하고 싶었다. 그 곳의 가장 중요한 원칙은 ‘솔직함’ 이랄까, 각자가 서로에게 느끼는 감정은 그 무엇이던간에 솔직하게 표현하는게 중요시되었다. 사회에서는 여러 이해관계나 맥락 때문에 표현하는게 힘드니까, 그걸 훈련하려면 여기서만큼은 최대한 솔직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가 갔다. 하지만 바로 그게 문제가 되었다. 회차마다 돌아가며 자신의 이슈를 얘기하는게 룰이었는데 중간 회차쯤 되니까 상담사가 나에게 “본인이 하고싶은 얘기가 있으니까 여기(집단상담)온거 아니냐, 오늘은 얘기좀 해봐라” 라고 했다. 나는 쭈뼛쭈뼛 망설이다가 집단원들에게 내가 트랜스젠더임을 밝히고, 이 문제 때문에 내가 사람들이랑 어떻게 어울릴 수 있을지 고민이 되어서 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원체 서로 부정적 감정도 여과없이 표현하며 언성이 높아지거나 거친 말도 오가는 분위기인 곳이었으니 더더욱 긴장이 되었다. 내가 말을 꺼낸 순간에도 분위기가 싸했고, 상담사는 나에게 집단원들 한 명 한 명씩 짚으며 트랜스젠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보라고 지시했다. 그러니까 상담사 딴에는 내가 두려움을 직면하고 부딪치기를 유도한거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한 명씩 붙잡고 물어봐야 하는 상황은 나에게 너무나 큰 압박으로 느껴졌다. 집단원은 나를 제외하고 모두 시스여성들이었다. “트랜스젠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라는 나의 질문에 첫 번째 사람은 “별 생각 없다, 나쁘게 생각하지는 않는다” 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두 번째 사람.


“나는 트랜스젠더를 좋아하지 않는다. 여자로 인정할 수 없다. 여자인 친구들하고는 편하게 지낼 수 있지만 트랜스젠더랑은 그렇게 지낼 수 없다.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라는 말을 하였다. 아무리 솔직함을 중요시하는 곳이라지만 나는 그런 말을 내 앞에서 대놓고 할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머리가 하얘지고 가슴이 쿵쾅대고 온 몸이 벌벌 떨렸다. 약간의 공황상태였던거 같다. 아직 질문을 못한 집단원들이 남았지만 나는 더 못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상담사는 나에게 지금 장난하냐, 당신은 여기에 당신 듣고싶은 말만 들으려고 왔냐, 여기서 그만두면 집단원들은 뭐가 되냐라며 화를 벌컥 내었다. 그 상황이 나는 그저 너무 무서워서 고개 숙이고 눈물만 흘렸다. 그러자 끝 쪽에 앉아있던 사람이 굉장히 격앙된 어조로 “뭐 결국 자기가 트랜스젠더라서 이렇게 힘들게 사니까 위로해달라는거 아니냐, 우리가 자기를 위로해주는 수단인줄 아느냐, 이래놓고 만약에 우리가 자기를 위로해주지 않으면 나쁜 사람으로 몰아갈려고 하지 않겠냐, 역겹다.” 라며 나를 향해 쏘아붙였다. 물론 위로가 목적인 곳은 아닌거 알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왜 그렇게까지 비난받아야 했는지 지금도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무슨 말을 듣던 상담사는 아무런 제지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솔직함이 중요한 곳이라고 해도 모든 발언을 자유롭게 놔두는게 맞는지 모르겠다. ‘네가 싫다’ 와 ‘트랜스젠더가 싫다’는 엄연히 다르다. ‘네가 싫다’ 에는 ‘나도 네가 싫다’가 응수할 수 있지만 ‘트랜스젠더가 싫다’는 말은 사회적으로 기울어져 있는 권력에 기대어 나오는 말이기 때문에 내가 동등하게 응수할 수가 없다. 트랜스젠더와 시스젠더는 동등하지 않을뿐더러 내가 설령 ‘시스젠더가 싫다’ 라고 한들 그들은 그게 뭔지도 모를테니까. 나는 한참을 울고서 그 집단상담 도중에 뛰쳐나왔다. 그 때 뼈저리게 느낀 것은 내가 아무리 조심스럽게 무해한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해도 혐오할 사람은 혐오한다는 것이며, 위축되어서 고개숙이고 질질짜고 있으면 오히려 만만하게 보여서 더 물어뜯는다는 것이다. 내가 화를 내거나 격한 모습을 보이면 사람들이 트랜스젠더에 대한 안좋은 편견을 더 갖게 될까봐, 혹은 ‘역시 남자새끼라서 남자본능 나오네’ 라고 할 거 같아서 더 조심하고 더 검열했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으므로 그냥 화날땐 화내고, 싸워야 할 때는 싸우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참 많은 싸움을 해왔다.

나에게 산다는 것은 너무나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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