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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연수 Sep 28. 2024

<나의 트랜지션 일기> 72장: 어떤 몸, 어떤 노동

탈락한 여성들의 연대 / 다양한 신체를 허하라

[탈락한 여성들의 연대]



성별이라는 영역에 있어서는 확실히 남성에 비해 여성이 더 약자라고 할 수 있지만, 우리를 구성하고 있는 다양한 요인들에 따라 우리는 어떤 영역에서는 기득권이 되기도 하고, 약자라고 여겨지는 집단 안에서도 위계가 존재한다. 따라서 여성이라는 범주도 단일하지 않고, 여성집단 안에서도 다양한 여성들이 있다. 극단적인 예시로 청와대에 잠시 있었던 박근혜씨의 삶과, 불안정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월세에 허덕이는 청년 여성의 삶을 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또한 그 여성의 범주도 일종의 자격이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트랜스여성은 그 ‘여성의 자격’을 인정받지 못하는 대표적인 집단이다. 성별정정을 한 이후 여성으로서의 신분증을 손에 쥐게 되었을 때 형식적으로는 ‘여성 자격증’을 취득한 기분이었다. 나는 형식적으로라도 인정받았지만  

성별정정을 하지 못한 수많은 트랜스젠더들은 여전히 자신답게 살 ‘자격’을 박탈당한 채로 살아가고 있다.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도 주류 여성의 범주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에서 일종의 동질감을 느낀다. 가만히 있어도 더럽다,역겹다고 욕을 먹고, 때로는 무례하게 성적 호기심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일부 페미니스트들한테서는 여성인권을 저하시킨다는 비난을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트랜스여성의 처지와 상당히 비슷하다고 느낀다. 트랜스여성이 기괴한 ‘여장남자’,‘성도착증 변태’,‘젠신병자(젠더+정신병자)’ 라는 낙인을 죽을때까지 짊어지고 살아야 하듯,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은 ‘더려운 창년’ 이라는 낙인으로 인해 숨어살며 고통받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성매매에 종사하는 여성들, ‘창녀’들의 권리를 지지하는 사람이다.

 




파주시에는 ‘용주골’로 알려진 성매매집결지가 있다. 용주골은 6.25전쟁 이후 국내 최대 규모의 미군 기지촌 중 하나로 형성된 곳으로서, 2023년인 현재 시점에도 수많은 여성 종사자들이 거주하고 있다. 그런데 파주시에서는 재개발을 명분으로 용주골을 갑작스럽게 폐쇄하려고 하였고, 일부 시민단체와 시민들도 가세하여 ‘성매매 근절’을 외치고 나섰다. 용주골 안에서 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당장 폐쇄해버리면 이 사람들은 어디로 가라는 것인가. 이에 종사자단체와 성노동자운동단체는 용주골 종사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한 투쟁을 시작했고 나도 연대하여 피켓시위와 기자회견 등에 참가하였다. 한 종사자분은 기자회견에서 ‘영원히 집결지에서 일하고 싶은게 아니니 충분히 자립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셨는데,  권리보장에 대한 정당한 요구임에도 불구하고 “이 곳의 존재만으로도 시민분들이 불편하실거 압니다, 죄송합니다” 라는 말씀을 울먹이며 하셨다. 존재만으로도 불편함을 끼치고 사과를 해야하는 존재. 그 마음을 조금은 알거같아서 나도 같이 눈물이 났다. 여성을 착취하는 성산업 구조는 나도 당연히 반대하고, 철폐되기를 바라지만, 동시에 그 구조 속에 있는 개인의 생존권 또한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전쟁과 군사주의에 반대하면서도 군인들의 처우개선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처럼 말이다. 성매매 종사자, 혹은 성노동자를 더럽다고 낙인찍고 비난할 때, 혹은 그들이 가진 삶의 맥락을 소거하고 근절되어야만 하는 불법적인 존재로 대상화할 때, 결국 이득을 보는 것은 기득권과 남성들이다. 그래서 나는 ‘창녀’와 같이 주류 여성의 범주에서 탈락한 여성들과의 연대를 꿈꾼다. 창녀 해방 없이는 여성 해방 없고, 모두가 해방될 때까지는 아무도 해방될 수 없다고 믿는다. 



[다양한 신체를 허하라]



사회적으로 남성은 다양한 체형이 용인되지만 여성에게는 마른 체형만이 허용되고, 마르면서도 가슴과 엉덩이는 볼륨감이 요구된다. 허용되는 미적 체형을 벗어나 일정 체중을 넘어가는 신체를 가진 여성들은 사회에서 온갖 비난과 조롱을 당한다. ‘돼지같다’라는 등의 원색적인 인신공격도 그렇지만 ‘게으르다’, ‘자기관리를 안 한다’는 식으로 성품이나 삶의 방식을 멋대로 판단하고 단정짓는 무례한 말들도 늘상 따라온다. 심지어 주변사람들로부터 따돌림이나 괴롭힘을 당해서 힘들었다는 영상에도 “그러니까 왜 살 안빼?” 라는 악플이 달리는 현실이다. 뚱뚱한 체형을 가졌다는 것만으로 그 사람을 게으르다고 할 수 없을뿐더러, 설령 게을러서 뚱뚱해진거라고 해도 그게 왜 비난받을 이유가 되는지 모르겠다. 애초에 왜 모든 사람이 그렇게 부지런 떨어가며 마른 체형을 유지해야 되는건가. 뚱뚱하면 건강이 안좋은거 아니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누군가의 겉으로 보이는 체형만으로 건강상태를 어떻게 진단할 수 있겠으며, 비만인들의 건강상태를 그렇게 염려하는 사람이라면 욕을 할게 아니라 치료비라도 지원해줘야 하는게 아닐까? 건강 운운하는건 사실상 핑계에 불과하고 그저 자신들의 미적 기준에 안맞는 외모를 가진 사람들이 거슬리는 것 뿐이지 않나. 그렇게 욕하는 사람들의 외모지상주의와 비만혐오야말로 건강에 해로운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권장되는 날씬한 몸을 가진 사람이라고 해서 다 건강하다고 할 수 도 없는 노릇이다. 마른 체중에 대한 강박 때문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섭식장애를 겪는 여성들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적 미의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 여성들은 비난과 조롱을 당하기 전에 스스로를 먼저 자조하고 희화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하면 사람들이 공격하지 않고 유쾌하게 받아들이고 넘어가기 때문이다. 일종의 생존전략인 셈이다. 트랜스젠더 유튜버 풍자님이 다양한 티비 프로그램에 출연하게 된건 너무나 잘된 일이긴 하지만 풍자님 역시도 그런 맥락에서 희화화되는 것 같은 느낌이 있어서 마음이 약간 안좋다. 여전히 시대는 뒤쳐져 있고 저열한 악플을 다는 사람들은 많지만 풍자님의 원래의 강점과 매력을 잘 살려서 ‘털털하고 시원스런 입담의 멋진 언니’ 포지션을 계속해서 잘 밀고나갈 수 있으면 좋겠다. 나를 포함하여 풍자님을 지지하고 응원하는 사람들 또한 아주 많기 때문이다. 


나는 마른 체형이든 뚱뚱한 체형이든, 키가 크든 키가 작든, 피부색이나 장애유형이 어떻든, 우리 사회에 다양한 신체가 자연스럽게 공존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서로가 다 다르고, 다양한 성격과 능력과 취향을 가지고 있는데 신체도 꼭 정형화된 미에 부합해서 다 비슷한 모습이어야 할 필요가 없지 않을까. 우리는 다양할수록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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