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 Kim Jan 11. 2024

스케쥴을 보면 정체성이 보인다

‘9월 10일, 오후 5시, OO 보고서 제출’, ‘9월 14일, 오후 6시, OO 저녁 약속’ 이와 같은 일정들을 비롯해서 다양한 약속이나 개인적으로 기억해야 할 일 등이 휴대폰에 저장되어 있다.


일정들을 살펴보니 몇 가지 특징들이 보인다. 먼저 대부분의 일정들은 잊어버리거나 놓치게 되면 자신에게 해(害)가 되거나 불이익을 받게 되는 일인 것이다. 주로 업무적인 일들이나 경제적인 측면과 관련된 일들이 그렇다.


그래서 전날 또는 몇 시간 전에 이를 알려주는 알람을 설정해 놓기도 한다.


또 다른 특징은 지키지 못하면 관계가 훼손되는 일들이다. 가족이나 친구와의 약속을 비롯해서 이메일 회신 등도 포함된다. 물론 한두 번 정도의 일정 조정이나 양해를 구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이상 반복되거나 지켜지지 않는다면 신뢰의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이른바 동화 속 양치기 소년이 될 수도 있다.


그리고 주로 머지않은 시간에 이루어질 일이라는 것도 특징으로 볼 수 있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대개는 몇 개월 이내의 일정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개인의 일정은 주로 미시적이고 단기적인 측면에서의 일들을 중심으로 선정되고 저장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러한 일정들은 현상을 유지하는 측면에서 보면 문제가 없다. 다만 미래를 준비하는 것에는 부족함이 생긴다.


한편 개인적인 측면에서의 중요한 일들도 저장된 일정들의 특징 중 하나다. 스스로 정한 목표나 일상에서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일들이 예가 될 수 있다.


이와 같은 일들은 업무적인 측면이나 관계적인 측면에서 볼 때 중요한 일들은 아닐 수 있다. 그래서 지키지 않아도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성격의 일정들은 자신과의 약속이기에 지키지 못하는 경우에는 사뭇 결이 다른 상실감을 느끼게 되기도 한다.


이와 같은 특징들은 공통점이 있다. 주로 자신을 중심에 놓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자신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이 주로 자신의 일정표에 저장되어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일정을 만드는 경우에도 그렇고 일정을 조율하거나 조정해야 하는 경우에도 비슷하다.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아쉬움은 남는다. 자신의 일정에 저장되지 않은 일들에 대해서는 미루거나 등한시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쉬움을 없애기 위해서는 해야 할 일들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 이른바 우선순위를 재정렬해보는 것이다. 지금껏 현재와 가까운 미래에 해야 할 일들을 중심으로 자신의 일정들이 채워졌다면 보다 장기적이고 거시적인 관점에서 수행해야 할 일들을 선별해보는 것이다. 그 일들은 자신이 추구하는 삶의 목적과 가치와 관련된 일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해야 자신의 삶에 있어 중요한 일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이와 함께 그동안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약속이 주를 이루었다면 관계를 형성하고 강화하기 위한 약속을 계획해봐야 한다.


일례로 자신이 소중하게 여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함께 하는 시간이 일정에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아울러 자신에게 도움이 되고 이익이 되는 것을 넘어 타인에게 도움을 주고 이익을 줄 수 있는 것들도 자신의 일정으로 들어와야 한다.


넓게 보면 이타적인 삶을 위한 포석이기도 하고 좁게 보면 공동체 일원으로서의 삶을 살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개인의 일정에는 이와 같은 일들이 저장되어 있어야 한다.


그동안 저장하고 기록된 자신의 일정들을 살펴보자. 바쁘게 지낸 것과 계획된 일정을 차질없이 소화한 것에 대한 만족감을 느끼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동안의 일정이 얼마나 의미가 있었는지를 돌이켜보기 위해서다.


다음으로는 의미가 있는 일정을 계획하고 저장하고 알람을 설정해보기 위해서다. 개인의 일정은 표면적으로는 해야 할 일들로 보인다. 하지만 심연에는 개인이 추구하고 지키고자 하는 가치와 비전 그리고 목표가 담겨있다. 그래서 개인의 일정은 자신의 정체성과 삶의 방향을 보여주는 이정표이기도 하다.


만일 자신의 일정을 보고 스스로를 설명하기 어렵다면 스스로를 설명할 수 있는 일정들을 생각해보고 기록해보자. 이것만으로도 삶의 의미와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다.

작가의 이전글 변화는 직선으로 나타나지 않는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