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되는 일이 있다. 대개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함께 주변의 의견을 무시하고 선택한 일들이다. 한마디로 자만(自慢)한 결정의 결과다.
이와 같은 일들을 돌이켜보면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어떤 결정을 할 때 주변에서 들려오는 이야기들을 귀담아듣고 한 번 더 생각해봤다면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상대방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수용하는 것이 말처럼 쉽지 않다. 특히 조직에서 리더의 역할을 맡고 있다면 더 그렇다.
개인별로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확증 편향(confirmation bias)에서 자유롭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말만 들으려는 현상이다. 당연히 스스로의 신념이나 가치관에 영향을 받는다. 과거의 성공 경험도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자신만의 확증 편향에 사로잡히게 되면 자연스럽게 독선(獨善)에 빠지게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이나 결과를 마주하고 싶지 않다면 방법은 있다. 레드팀(red team)을 만드는 것이다.
레드팀은 가상의 적군이라고 할 수 있다. 냉전시대 당시 아군의 취약점을 확인하고 분석하여 대비하고자 미군에 의해 도입되었는데 이후 조직의 의사결정 기법으로 발전되었다.
레드팀은 의사결정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편향을 사전에 방지하고 결함을 파악해서 보다 나은 결정에 이르도록 하는 것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
일반적으로 레드팀의 역할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잠재적인 상황을 미리 시뮬레이션하여 대비책을 마련하거나 상대방의 입장에서 조직의 취약점을 탐구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기존의 접근 방식이나 관점과 다른 대안을 제시하는 것도 포함된다.
그런데 조직 내에서 이러한 레드팀을 구성하고 운영하는 것이 만만치는 않다. 제도나 인력 측면에서의 여러 가지 제한도 있고 서로가 안고 있는 부담도 있다.
이와 같은 이유 등으로 인해 레드팀을 만드는 것이 어렵다면 대안으로 악마의 변호인(Devil's Advocate)을 곁에 두는 방법도 있다.
이는 자신의 반대편에서 서서 자신의 생각이나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일종의 반대자의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레드맨(red man)이라고 새롭게 명명해 볼 수도 있다.
자신에게 레드맨이 있는 사람은 필연적으로 생각을 재고(再考)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레드맨이 의도적으로 반대의 입장 혹은 다른 입장을 표명하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레드맨을 통해 적어도 하고자 하는 일이나 선택과 관련해서 간과한 내용은 없는지 고려해야 할 부분을 놓치지는 않았는지 등에 대해 보다 세심하게 살펴볼 수 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실수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물론 보다 나은 결정을 하는데에도 도움이 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레드맨이 큰 부담을 갖는다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필요한 역할이고 누군가는 해야 하지만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이다. 특히 구성원들간 심리적 안전감이 약한 조직문화에서 레드맨처럼 보여지게 되면 자칫 주변 사람들로부터 부정적인 사람으로 인식될 수도 있고 불평이나 불만이 많아 보일 수도 있다.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부담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레드맨을 공식적으로 지명하고 알릴 필요가 있다. 제비뽑기로 정해도 문제없다. 그리고 레드맨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는 기간을 한시적으로 정하고 레드맨의 역할을 골고루 맡겨야 한다. 이렇게 하면 레드맨의 역할을 수행하는데 있어 부담은 덜게 되고 효과는 누릴 수 있다. 더군다나 건설적인 비판과 다른 관점에서 보는 연습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개인과 조직의 역량이 한층 더 배가될 수도 있다.
아울러 조금 더 적극적인 방법도 있다. 그것은 자신에게 필요한 레드맨을 찾고 레드맨이 되어달라는 요청과 부탁을 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진정성도 있어야 한다. 서로 간의 신뢰와 친밀함이 전제가 되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야 자신의 레드맨이 하는 말을 들을 수 있고 레드맨으로서 상대방에게 진정어린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에게 레드맨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생각보다 크다. 레드맨이 진정한 파트너이자 동지(同志)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