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재생
누군가 말했었다.
사람은 듣고 싶은 노래를 듣는 게 아니라,
지금 자기 감정과 같은 진동수의 음악을 찾는다고.
그래서일까.
나는 같은 노래를 반복해서 틀고 있을 때면
아, 나 지금 꽤 많이 흔들리고 있구나,
그걸 알 수 있다.
처음 한 번은, 그냥 좋다.
두 번째는, 놓치고 싶지 않아 다시 누른다.
세 번째부터는…
그건 이미 감정이 음악에 슬쩍 기대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네 번째쯤 되면 그 노래가 내 베개보다 포근해진다.
다섯 번째부터는… 이쯤 되면 거의 감정 전문 ASMR 수준.
슬픈 노래를 반복 재생하는 건
사실 위로를 받는 게 아니라,
슬픔을 천천히 ‘견디는’ 방식이다.
노래가 나를 울게 하도록
그냥 조용히, 내버려두는 것.
울고 싶진 않은데
울지 않아서 더 답답할 때,
그럴 땐 그 노래가 대신 울어주는 것 같다.
반대로 신나는 노래를 반복할 땐
기분이 좋아서일 수도 있지만,
사실은 기분이 안 좋아질까 봐
기분 좋은 척을 붙잡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기분이 좋았던 것 같은 기억’이라도
한 번 더 리와인드 해보자는 마음.
반복 재생은 참 신기하다.
멜로디는 그대로인데,
듣는 마음은 매번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어제는 배경음이었던 가사가
오늘은 심장을 관통하기도 하고,
그저 좋았던 멜로디가
어느 날은 눈물샘을 흔든다.
그리고 우리는 또, 아무렇지 않은 척
"아 이 노래 좋아서~"
하고 넘기지만,
사실은 "지금 이 노래 아니면
내 마음이 너무 조용해서 울음소리 들릴까 봐…"
하고 혼자 중얼거리는.것일지도..
내가 나를 가장 많이 위로했던 순간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고
같은 노래를 다섯 번쯤 틀었던 그 밤들이었다.
한 곡 반복 버튼 하나 누르고,
세상과의 연결은 슬며시 ‘오프라인’.
그리고 나 혼자, 무한 재생.
어쩌면 감정도 플레이리스트처럼
가끔은 멈추지 말고
‘계속 듣기’ 버튼을 눌러야
비로소 끝까지 흘러가는 게 아닐까.
그 감정이 다 지나가야
다음 트랙으로 넘어갈 수 있는 것처럼.
혹은, 앨범 전체를 들어봐야
왜 그 곡에서 울컥했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것처럼.
그러니까 오늘 너도
괜찮아질 때까지
그 노래 계속 틀어도 돼.
누가 뭐래도 상관없어.
그건 네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그리고
그 안에서 천천히 돌아오고 있다는 걸
말해주는 신호라는 걸
나는 알고 있으니까.
아, 그리고 혹시
그 노래가 이제 질릴까 봐 걱정된다면—
걱정 마.
진짜 흔들릴 땐,
그 노래가 질리는 속도보다
내 마음이 회복되는 속도가 더 느리더라.
…그러니까 반복 재생, 괜찮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