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SONG Aug 11. 2020

행복은 생각보다 별거 아니다.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다.


‘가슴 시리다'는 표현은 개인적으로 부정적인 표현으로 구분했다. 주로 슬픔이나 아픔의 깊이가 어느 정도 되는지 드러내고 싶을 때 이 표현을 사용했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가수는 한 노래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마침 그 노래가 이어폰에서 흘러나왔다.


"가슴 시리도록 행복한 꿈을 꾸었지" - 자우림 스물다섯, 스물 하나 중에서


가슴 시리도록 행복한 꿈은 얼마나 행복한 꿈이었을까 상상해봤지만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 임의로 세상 벅찬 순간이지 않았을까 지레짐작할 뿐이다. 의문이 이어졌다. ‘내게도 행복함을 넘어 가슴 시렸던 순간이 있었던가' 살면서 가슴 시리도록 행복한 순간을 경험한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될까 싶다. 혹시 경험한 사람이 있다면 꽤나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운이 좋은 사람이  보고자 행복한 순간을 떠올리려 애썼다. 막상 떠올리려니 그려지는 장면은 없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건지도 모른다. 운명의 흐름을 받아들여  앞에 직면한 순간들을 현명하게 넘기는 일이야말로 인생을 살아가는 소명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있는 척하며 장황하게 써내려 갔지만 결론은 되는대로 살기에 특별히 행복한 장면이 없다는 말이다. 사람은 욕심이 많아서 각자 자신이 품은 현실을 아쉬워한다.  나은 모습으로 포장해 드러내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SNS 세상에선 불행하고 우울한 모습은 찾아볼  없나 보다.


내가 남들보다 덜 행복해 보이는 느낌이 강한 이유는 내가 아닌 남에게 시선이 향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별거 아닌 나만의 행복함을 떠올리기에 시간이 필요했다. 서른이 넘어 달라진 점이 있다면 행복의 새로운 정의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다음과 같은 상황에서 ‘행복은 별거 아니다.’ ‘행복은 굉장히 주관적이어서 내가 쉽게 만들어 갈 수 있다.’ 하고 받아들였다.


하나. 더블린에서 좀처럼 만나기 힘든 청명하고 맑은 하늘을 맞이했다. 조금은 들뜬 마음으로 수업 시간보다 조금 일찍 도착한 교실에서 만난 선생님 아이리시와 짧게 나누었던 대화를 아직도 기억한다. '정말 운이 좋네! 시작이 좋다!' 시작이 반이다. 시작이 좋으니 왠지 끝도 좋을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순식간에 작은 것에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가슴 시린 행복의 순간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일상 속 장면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둘. 내가 찾은 행복의 순간은 어학원을 처음 가던 날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일곱 해가 지날 무렵 나는 학생의 신분으로 돌아왔다. 공교롭게도 처음 어학원에서 배운 주제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였다. 무엇이 되고 싶고, 어디에 가고 싶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첫 수업인 만큼 입을 여는 것이 조심스러웠지만 모두가 수줍게 말을 이어갔다. 곰곰이 생각하다 내 차례가 되어서 간단하지만 실현하기는 어려운 꿈을 입 밖으로 뱉었다.


"저는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아이리시가 차분한 목소리로 한 마디를 건넸다.

"꿈을 이루는 건 어렵지만 일단 뭐든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지니까! 아주 좋은 꿈이네~”


그녀의 한 마디로 나는 행복한 사람이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처음인데도 익숙함을 느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