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스타그램에 남긴 짧은 생각들2.txt
Dec. 17th. 2019
이 곳에서 지낸지는 짧은 시간이 흘렀지만 좋은 사람을 참 많이 만나고 있다. 나이가 들고 머리가 커지면서 ‘관계’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어릴 때(지금도 어리지만)는 사람을 만나는 것 자체가 조건없이 좋아서 새로운 관계를 맺는 것에 거부감이 없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것이 어렵고, 사람과 조금의 거리를 두는 것이 편하고 자연스러워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틈을 비집고 들어오는 ‘관계’는 뭔가 정제되었다는 느낌이 들어 순순히 받아들여진다. 생각지도 못했던 오늘의 만남, 곧 떠나는 룸메이트 Elisa처럼 좋은 사람 곁에는 좋은 사람이 모이듯 ‘나도 타인에게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하는 생각이 든 밤이다.
Dec. 19th. 2019
시선이 머무는 그 곳에 내가 사랑하는 것이 있다는 것.
내 아이를 바라보는 사랑스러운 시선은 어느 나라나 동일하고 한결 같다.
Dec. 23th. 2019
그녀가 떠났다. 더블린에 와서 처음 내 옆자리에 앉았고, 나에게 먼저 말을 걸어주었던 내 러시안 친구는 한 달 가까이의 시간을 함께하고 그렇게 집으로 돌아갔다. 이제 집에 돌아간다고 좋아하던 그 웃음 띈 얼굴을 잊을수가 없다. 참 좋은 친구를 사귀어서 다행이다. 그녀가 일상으로 돌아가도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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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e’s gone. She is first time to talk to me in Dublin and the first Russian friend of mine who is nearly a month's time together. I haven’t forgot her smile face. I'm just grateful we make a really good friend. I wish I can be happy even if she went back to reality.
Dec. 27th. 2019
누구에게 건네려는 꽃다발인지 소중하게 품에 안고 가는 더블리너의 뒷모습을 보면서 마음 따뜻해짐을 느꼈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누군가의 아빠로 살면서 그 따뜻함을 간직하기 위해 항상 노력하는 모습이 나에게까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Dec. 27th. 2019
일상 속 여유를 찾는 것은 힘든 일이지만 찰나의 여유를 느끼는 것은 한 순간이다.
Dec. 29th. 2019
한국으로 치면 명동과 같은 거리에서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웨딩사진을 찍는 한 커플이 있었다.
두 가지 놀라움이 공존했다. 하나는 추운 겨울에 얇은 실크 드레스 차림에도 전혀 추운 줄 모르고 사랑이 넘치는 눈빛으로 남편이 될 사람을 지긋이 바라보는 신부의 표정과 또 다른 하나는 그래프턴 거리를 지나는 많은 사람이 잠깐의 시간을 내어 이 예비 부부를 축복하듯 행복한 얼굴로 박수를 치며 지나갔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느낀건지 자리를 뜨는 두 사람의 표정은 사랑으로 가득했다. 너무 평화롭고 평온한 순간이었다.
Dec. 30th. 2019
아무리 주변의 시선이 나를 찌르고, 시끄러운 소음이 귀를 울려도 내 옆사람에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
그것이 당신이 지금 당장 해야할 일.
Jan. 1st. 2020
군중 속의 고독을 느꼈다. 영화 원스의 한 장면을 본 느낌. 더블린에서 보았던 수많은 버스커들 중에서 선곡부터 연주, 편곡, 노래가 가장 취향 저격이었던 분. 심지어 음원가지고 싶다는 생각까지 했으니 이건 말 다했다. 한참을 떠나지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
Jan. 2nd. 2020
드디어 #겨울왕국2 봤다!
1. 더블린 극장은 굉장히 작았고, 좌석도 지정석이 아니라서 오는 순서대로 아무대나 자리에 앉으면 끝
2. 티켓 구매는 예매하면 예매수수료가 1유로 붙어서 우리는 지나가는 길에 미리 표를 구매해놓고 오늘 보러왔다.
3. 관람만 하는 표와 스낵이 포함된 표 두 가지가 있는데 스낵 종류가 그리 많지 않다. 먹고 마시는 걸 사가지고 들어가는게 가능하니 후자를 추천함.
4. 주희랑 보면서 생각보다 집중 잘 되고, 내용 잘 이해되서 신기하다고 고개 끄덕였다. 근데 애니메이션이라 그렇겠지... 영화보면 3분의 1도 못 알아듣겠지... 올라프 랩하듯 말할 때 멘탈 나감.
5. 근데 엘사 걸크러쉬 오지고요. 가창력 실화? 그 와중에 앞에 앉은 꼬마아가씨 into the unknown 나올때마다 따라 불러서 귀여움 터짐.
6. 결론은 더블린에서 영어로 영화보기 성공에서 한껏 흥오르고, 자연을 파괴하지 말자라는 큰 교훈을 얻은 뜻깊은 시간이었다.
Jan. 2nd. 2020
한가로운 오후의 한 때, 공원에서 영화에서나 나올법한 아이의 웃음소리가 꺄르르하고 들리면 나도 모르는 새에 올라가 있는 입꼬리와 휘어진 눈매를 발견하곤 한다. 여기에 아이와 열심히 놀아주는 딸바보 아빠의 모습이라니, 세상에서 제일 평화로운 장면을 눈 앞에서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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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t one point in the afternoon of a leisurely day, when the laughter of a child like movie in the park is heard, I often find the corners of my mouths and bent eyes that I don't know. I saw the most peaceful scene in the world.
Jan. 3th. 2020
더블린에서 제일 유명한 피시앤칩스집을 방문했는데 감자튀김이 혜자스럽게 많고, 생선도 커서 인당 케찹이 모자랐다. 더 달라고 하면 돈 들겠지라고 말하는 순간 너무 시크한 표정으로 주인 할아버지가 케찹을 내밀어서 둘다 육성 터져서 크게 웃음. 한국말 알아들으시는 건 아니겠지 의심 할 정도로 타이밍이 너무 절묘해서 웃기디 웃긴 순간을 경험했다. 그래, 피시앤칩스는 역시 케찹을 산처럼 쌓아두고 먹어야 제 맛! 우리는 피시앤칩스를 먹은게 아니라 케찹을 메인으로 먹은 것 같은 기분을 경험했다. 쌓인 껍질을 보고 케찹의 중요함을 절실히 깨달은 토종 한국인 원 투. 주저리 주저리 끝.
Jan. 3th. 2020
아마도 내가 이곳에 도착한 이래 가장 깨끗한 하늘이지 않을까 싶다.
구름 한점 없이 맑은 하늘이라 도저히 밖으로 발걸음을 옮기지 않을 수 없었다. 어디든 발길 닿는 곳으로 가자!
Jan. 3th. 2020
햇살을 받고 그렇게 앉아있었다. 세월이 가는만큼 시간의 흐름을 고스란히 받아들이고 평소처럼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서 주변의 공기를 느끼며 그렇게 앉아있었다.
Jan. 4th. 2020
2019년은 변화와 결심이 많은 해였다. 오래 다녔던 회사를 그만두는 큰 결심을 했고, 이름을 건 책도 두 권이나 세상에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삼일밖에 안 지났지만 작년에 이어 더블린에서 지내고 있다. 머릿속에서만 맴돌던 것들을 결정하고 실천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고민만 하기엔 세상에 하고 싶은 것이, 할 것이 너무 많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이 마음을 잘 새기며 지금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기를’ 2020년 작지만 큰 나의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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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was a year of change and resolution. I made a big decision to quit my long-time job and two books of my name came to the world. And now it's only been three days but I've been staying in Dublin since last year. One of the biggest motive of deciding and practicing things that had been hovering around in my head was the fact that there were so many things I wanted to do in the world. It is my small but so big wish in 2020 that I will be able to take this into account and become a better person than I am now.
Jan. 5th. 2020
지냈던 레지던스를 나와 새로운 곳으로 이사를 했다. 지내게 될 공간도, 나의 마음가짐도 처음 이곳에 도착할 때와는 달라졌음을 느꼈다. 조금은 조급했던 것 같다. 시간이 많지 않다는 이유에서였다. 반대로 생각하기로 했다. ‘이만큼이나 남았다고. 그리고 편안히 상황을 즐겨보자.’ 이제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내일을 맞이하려한다.
Jan. 5th. 2020
인생은 레이스가 아니에요. - LIFE IS NOT A RACE
네, 그래서 저는 일요일인 오늘 하루 종일 침대와 하나가 되어 일어날 생각을 안하고 있답니다. 이런 날도 있어야죠. 집순이 여기와서도 안 변합니다. 하루 쉬고 내일부터 싸돌아 다닐게요.
Jan. 7th. 2020
아일랜드에 대한 역사, 문화, 사회 등 모든 것을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곳! 문을 연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잘 알려지지 않아서 티켓을 살 때 어디서 왔는지, 어떻게 알고 왔는지를 방문자에게 항상 묻는 것이 참 인상적이었다. 한국에서 왔다고 했더니 자기 베프가 한국사람이라며 TMI를 던져주었던 오빠, 잘 생겼어요. (결론은 잘 생겼어요)
다니면서 챕터마다 패스포드에 스탬프를 찍는 재미, 무거운 역사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가볍게 접근할 수 있는 다양한 이야기를 스토리텔링 해놓았고, 터치스크린, 키오스크로 비주얼적으로도 시선이 가도록 만든 점이 참 좋았다. 우리나라에도 ‘한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는 이런 박물관이 생긴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굉장히 재미있는 공간이니 더블린에 오신다면 꼭 들려보세요!
돌아다니면서 체 게바라, 비틀즈의 존 레논, 폴 메카트니, 조지 해리슨, 오아시스의 노엘, 리암 갤리거 형제, 리한나가 아이리쉬 혈통이었다는게 너무나 놀라운 사실이었다.
Jan. 7th. 2020
오늘따라 날씨가 너무나도 변화무쌍해서 한국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머리를 했다. 일명 ‘승무원머리’. 일단 내 얼굴이 승무원이 아니니까 할 수 없는 머리. 앞머리는 실핀으로 고정하고, 잔머리 한가닥도 남김없이 한데 모아 묶었다. 그래도 바람때문에 묶은 머리 끝이 앞으로 날아와서 머리카락으로 뺨 맞는건 피할 수 없었다. 어쨌든 여기서는 화장 안 하고 이 머리를 해도 마음이 편안하다. 한국에서도, 여기에서도 아무도 나에게 관심 없겠지만 ‘마음가짐이 다르다는 것’은 이렇게 행동의 차이를 만든다. 이런 생각이 한국까지 이어지면 참 좋겠지마는. 또 다시 스위치 오프되겠지.
Jan. 10th. 2020
방문한 여러 곳 중에서 특히 기억에 남거나 마음에 드는 공간이 하나, 둘 늘어가는 건 내가 지내는 이 공간에 스며들었다는 느낌이 들어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온몸이 따스한 추억으로 가득 차는 느낌이 들어 이 또한 기분 좋은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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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mong the many places I have visited, the fact that there are many memorable and favorite places is pleasant because it feels like they have penetrated into this space. I am happy because I have warm memories.
Jan. 11th. 2020
이름을 남겼다. 전시되어 있는 몇 점 없는 그림을 보고 괜히 이 곳에 흔적을 남기고 싶어 풀네임을 당당하게 적었다. 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진 모르겠지만 누군가 내가 여기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주길 바랬나보다. 그래서 조금 남아있는 종이의 공간을 채웠다. 이름을 적는 모습을 본 갤러리 직원이 씨익 웃으면서 이름을 남겨줘서 고맙다고 했다. 머쓱했던 마음이 사라지는 건 한 순간이었다.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귀에서는 아이유의 ‘이름에게’가 흘러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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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wrote my name. I wanted to leave a trace in the guest book after seeing some paintings on display. So I wrote down my full name proudly. I don't know why, but I think someone wanted me to remember I was here. So I filled up the space of the paper that was left. A gallery worker smiled and said, "Thank you for your name." IU’s ‘To My Name’ was heard at an amazing time.
Jan. 12th. 2020
어떤 사람이건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하지만 어떤 미래를 만들지 그릴 수는 있다. 곰곰히 생각하고 조금 더 나은 미래를 그리는 것,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일이다.
Jan. 15th. 2020
오늘의 가장 큰 이슈 : 베를린 장벽을 보다.
Today’s Big Issue : I saw that a lot of Berlin W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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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힙하다’는 사람은 다 모여있는 베를린에서 가장 먼저 봐야 할 것은 역시 곳곳에 흩어져있는 ‘베를린 장벽’이라고 생각했다. 분단 국가에 사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떠올리는 포인트가 아닐까 싶은데, 직접 마주한 베를린 장벽은 ‘지금’을 살아가는 베를리너의 삶에 자연스레 녹아있었다.
슈프레강을 따라 이스트 사이드 갤러리를 보며 걷다 잠깐 멈춰섰는데 신기하게 ‘형제의 키스’ 앞이었다. 유명한 벽화이다 보니 사람이 모여있었지만 북적이는 정도는 아니라 다행이었다. 그림을 멍하니 보며 서있는데 한 외국인이 나에게 한국인인지를 물었다. 어떻게 알았냐 되물었더니 자신은 이 근처에 사는 현지인인데 보통 한참을 멍하니 그림을 보고 서있는 동양인이 있다면 거의 한국사람이라고 했다. 그 말을 듣자마자 그러냐며 웃었지만 조금은 씁쓸해졌다.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이 높은 콘크리트 벽 앞에 서서 한참을 서있었던 한국인의 마음이 조금은 알 것 같았다. 독일이 통일된지 내 나이만큼 시간이 흘렀고, 그 역사는 고스란히 남아있다. 아마 ‘우리도 통일이 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라는 상상을 했다. 유일한 분단 국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우리만이 느낄 수 있는, 아마 지금 내가 하는 이 생각을 그들도 하지 않았을까.
Jan. 16th. 2020
난 크리스찬은 아니지만 이 공간 안에서 만큼은 조용히 눈을 감고 고개를 반쯤 숙여 상념에 잠길 수 밖에 없었다. 현장이 주는 무게감에 압도 당하는 느낌을 받은 것은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Jan. 17th. 2020
여행을 가면 꼭 미술관을 찾는데 이 곳은 제일 처음으로 구글맵에 표시했던 장소였다. 그리고 우연히도 호스텔에서 만난 Elisa를 통해 #CONNECT_BTS_BERLIN #RitualsofCare 를 진행하는 것도 알게 되었다. 아미는 아니지만 일일 아미라는 생각으로 자리를 잡고 앉았다.
#marceloevelin
공간이 주는 웅장함, 채워지는 소리와 나무 오브제가 묘한 느낌을 주었다. 여기에 퍼포머들의 움직임은 관람객의 집중도를 높히기 충분했다.
#doragarcia
#CONNECT_BTS 작품의 일환은 아니었지만 별도로 기획 전시된 퍼포먼스 작품이다. 두 퍼포머가 원을 따라 조금씩 공간의 이동을 한다. 서로 아이컨택은 하지만 접촉하거나 닿지 않는다. 그저 바라볼 뿐. 남녀의 시선이 너무 애틋하다. 마치 이전의 통일 전 독일의 모습처럼 말이다.
이 곳이 재미있는 이유는 단순히 평면적인 작품 외에 퍼포먼스 작품도 다수 전시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다. 미술관 안에 퍼포먼스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는 점이 가장 흥미롭다. 덕분에 어디서도 만날 수 없는 재미있는 전시를 만났다.
Jan. 17th. 2020
#CONNECT_BTS_BERLIN #RitualsofCare
Marcelo Evelin / Demolition Incorporada : A Invenção da Mald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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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공연장에 모였다. 이 중 단순히 한국의 아이돌 가수를 좋아하는 팬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순수하게 현대 예술을 즐기기 위해 모인 사람도 상당수 존재했다. 사람들은 주로 공연이 진행되는 중앙에서 벗어나 바깥 테두리를 중심으로 자리를 잡았고, 나도 들어가자마자 왼쪽 귀퉁이에 앉았다. 중앙에 서서 관람하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이 모습부터가 나에겐 신기한 광경이었다.
기척없이 조명이 어두워졌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퍼포머가 중앙으로 서서히 걸어왔다. 여자 두 명, 남자 다섯명으로 이루어진 그룹은 각자 정해진 위치에 흩어져 자리를 잡았다. 긴 나뭇가지를 든 여성을 중심으로 움직였고 풍경 소리, 나뭇가지를 휘두르며 나오는 바람 가르는 소리에 맞춰 퍼포머들이 조금은 그로테스크한 몸짓을 했다. 그 와중에 BTS만 생각하고 온 내 옆 자리 세 소녀는 엄청 놀라서 시작하자마자 뛰쳐나갔다.
공연을 보면서 여러가지에 놀랐는데 일단 퍼포머들의 용기와 이를 예술로 받아들이는 베를리너의 자세다. 어느 한 명 웃는 사람이 없었고 모두가 너무도 진지하게 예술을 즐겼다. 덕분에 나도 미간에 주름을 만들며 집중할 수 있었다. 아마 한국이었다면 아무리 예술이라도 블라블라 하며 시뻘건 19금 딱지가 붙었겠지. 그 다음은 어느 순간 땀으로 흥건히 젖을 정도로 열정적이었던 퍼포머들의 집중력이 인상적이었다. 시간이 지나고 어느새 리듬을 타는 관객이 생겨 그들이 공연의 일부가 되는 흐름이 놀라웠다.
멤버들이 미술관 관장에게 한 질문이 떠올랐다. 퍼포먼스를 통해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는지, 소중한 것을 통해 받는 치유에 대한 질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치유를 위한 의식(Rituals of Care)’이라는 타이틀이 직관적으로 보여지는 공연이라고 느꼈고,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서로 영향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것은 유대관계를 통해 연결되어 있다는 결론! 각자 다르겠지만 나는 종류에 상관없이 음악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 나를 치유하는 의식인데 아마 팬들이 이 부분을 캐치하길 원했던 게 아닐까.
구구절절 사설이 길었지만 결국 좋은 퍼포먼스를 보았다.
(BTS 덕분에 공연 잘 봤어요! 아미가 될 뻔 하였습니다. 찐 아미들을 위해 저는 그냥 뒤에서만 좋아하겠습니다. ㅎ_ㅎ..)
Jan. 18th. 2020
짧았던 베를린 여행이 끝나고 하루가 지났다. 어느 순간 여행을 다니면서 뭘 했고 어떤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아 여행이 주는 즐거움을 잃고 지냈는데 베를린은 다시 그 즐거움을 찾아준 고마운 장소로 기억될 것 같다.
개인적으로 여행의 공간을 컬러로 기억하는 습관이 있다. 나에게 베를린은 블랙의 도시로 남았다. 사진에 담긴 컬러, 도시의 분위기는 시크한 블랙이다. 여기에 여러 색이 입혀서 지루할 수 있는 분위기에 생동감이 살아났다. 더불어 좋은 친구까지 만나 더 오래 기억에 남을 듯 하다.
Jan. 21th. 2020
영국에서 가장 핫한 Bridget Riley 전시를 보았다.
전시 공간도 좋았고, 숙소에서 가까워서 더욱 좋았던 전시. 보면서 그녀는 병적으로 균형과 대칭을 좋아하며, 아주 디테일하고 세심한 사람이라고 느껴졌다. 어지러움 속에서도 균형과 철저한 규칙이 존재하니 이건 성격이 분명하다.
Jan. 22th. 2020
하늘에 구름 한 점 없는 날, 워털루 브릿지를 걷다가 자연스레 시선이 아래로 내려가 강물을 바라보았다. 그날은 유난히 물결이 크게 일렁거렸고 반짝였다. 한참을 바라보다 ‘저 강물에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 ‘과연 저 물결을 온전히 느끼면 얼마나 부드럽고 고요할까’ 하면서. 참으로 급작스럽고도 충동적인 감상이었다. 실제는 그렇지 않겠지만 시각의 힘은 위대해서 차갑고 탁한 템스강의 물도 따뜻하게 만들었다. 풍경을 보았던 그 찰나가 나에겐 따뜻한 순간으로 남았다.
Jan. 25th. 2020
한 도시에 오래 머무르면 나만 알고 싶은 숨겨둔 장소가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참새가 방앗간을 찾듯 마음에 든 이 카페에 뻔질나게 드나들었었다. 이제 가까운 시일내에는 못 간다고 생각하니 커피와 레몬 치즈케이크가 더욱 떠오르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