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처음 온 더블린인데, 왜 익숙하지?
더블린으로 날아오기 전, 엄마와 커피 한 잔 하기 위해 집 근처 쇼핑센터 안 단골 카페에 갔다. 주문한 커피 두 잔이 나왔다는 걸 진동벨이 격렬하게 알려주기에 얼른 카운터로 갔다. 본격적으로 사람 구경하면서 수다를 떨기 위해 자리를 찾아 앉을 때였다. 갑자기 엄마가 나에게 한 마디 건넸다.
"딸아, 난 이제 어디 못 다니겠어. 앞으로 길 잃어버리면 절대 못 찾을 거야."
엄마의 말을 이해 못해서 갑자기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엄마가 설명을 시작했다. 어떻게 매장 이름이 죄다 영어로 되어있는지 여기가 한국인지, 미국인지 모르겠다는 거다. 엄마는 영어 또는 꼬부랑글씨가 가득한 간판들이 마음에 안 들었던 거다. 엄마 말을 듣고 보니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너무 자주 가는 곳이다 보니 전혀 자각 못하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주변을 아무리 둘러봐도 한글이 하나도 없다. 정말 단 하나도. 과연 여기가 우리나라 고유의 한글을 쓰는 곳이 맞는지 의구심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이질감이라곤 찾을 수 없는 이 아이러니함이란.
시간이 지나고 옆 테이블에 한 가족이 앉았다. 그리고 엄마의 손을 잡고 다리를 흔들며 앉아있는 여자아이가 자연스럽게 영어로 쓰인 간판을 더듬더듬 읽기 시작했다. 엄마는 그 아이를 보면서 신기해하면서도 복잡 미묘한 표정으로 웃었다. 추측해보건대 저 작은 머리에 영어라는 것이 들어있어 신기하다는 생각, '과연 영어처럼 한글도 저렇게 공부시킬까' 또는 '요즘 아이들은 얼마나 공부를 많이 시키는 걸까'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나는 어쩔 수 없는 우리 엄마 딸이라 내가 생각하는 대부분의 것이 엄마와 공통적인 때가 많아 감히 이렇게 추측해본다. 아니나 다를까 그 장소를 벗어나서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길에 엄마는 내 생각을 그대로 입 밖으로 뱉어냈다.
다시 돌아와 휴일의 스테판 그린 쇼핑센터는 엄마와 커피를 마시러 갔던 하남의 쇼핑센터와 같이 북적거린다. 이층에서 아래 카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멍하니 쳐다보고 있자니 그 날의 엄마와의 대화가 떠올랐다. 쇼핑센터에 넘쳐나는 영어 간판 덕분에 꼬부랑글씨로 쓰인 간판이 난무하는 타지 더블린에서 나는 어색함은커녕 자연스러운 척하며 길을 걸을 수 있다. 온 지 이 주가 지난 지금 한국인을 한 명도 만나지 못할 정도의 타지인 이 곳에서 말이다. 조금 아이러니하게도 영어를 배우러 온 이곳에서 한글이 그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