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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SONG Aug 07. 2020

고정관념은 참 무섭다.

가끔은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고정관념이란 녀석이 더 무섭다.


이탈리아 나폴리에서 온 살바토레(Salvatore)는 올해 스물을 갓 넘긴 아이로 홈스테이 앞 방에서 지낸다. 젊음만큼이나 혈기왕성하고 에너지 넘치는 녀석이라 수업시간에도, 홈스테이 집에서도 웃음이 끊이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표현하는데 거침이 없다. 살바토레는 부모님이 운영하시는 슈퍼마켓을 이어받아 세계에서 유명한 슈퍼마켓 체인을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려면 당연히 영어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지금 더블린에 있다고 했다. 특유의 이탈리안 발음이 섞인 말투가 여유로워 보였다. 열심히 본인의 꿈을 말하는 이 친구가 참 커 보였다. 장난기 넘치고 까불기만 하는 이미지는 어느새 사라지고 진지하게 반짝이는 눈빛만이 남았다. 벌써 이때부터 나에게 고정관념이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나이가 어리고, 장난기 넘치는 사람은 가볍고 미래에 대한 기대와 고집이 없다는 고정관념이 순간 나를 꼰대로 만들어 민망했다. 


하루는 수업이 끝나고 살바토레와 함께 집에 돌아가는 중이었다. 보통은 같이 귀가하지 않고 친구들과 보내거나 같이 가는 날이면 서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스마트폰을 보거나 책을 읽는 등 각자의 시간을 가지는데 다른 날과 달리 시선이 서로에게 닿아있었다. 이야기를 나눈 이 날은 살바토레가 나폴리 집으로 돌아가기 이틀 남은 날 저녁이었다. 내일은 마지막 날이라 불타는 저녁을 보낸다고 선전포고를 했으니 오늘이 살바토레와 집에 함께 돌아가는 마지막 날인 셈이다. 가볍게 저녁 메뉴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자연스레 돌아가는 날은 며칠이고 비행 스케줄은 언제냐고 물었다. 놀랍게도 모른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아니, 이틀 남았는데 티켓팅도 하지 않고 뭐했냐고 물었다. 그가 약간 짜증 섞인 말투로 답했다.


“이해가 안 돼. 내가 언제 돌아가건 그건 내 맘인데 모두가 비행기 티켓을 아직도 안 사고 뭐했냐는 말을 해. 그 소리 너무 많이 들어서 나 좀 짜증 나.”


듣다 듣다 못 참겠는지 내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물론 '왜 하필 나한테 그러는 거야'라는 말은 가슴속에 숨겨두고 가만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러다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를 발견했다. ‘그렇지, 티켓 값이 비싸던 안 비싸던 어쨌든 돌아갈 시기가 되면 그는 집으로 떠날 것이고, 뭐 내 돈 드는 것도 아닌데.’ 문득 내가 건넨 질문도 고정관념 때문에 생겨났다는 자각이 든 것이다. 내 상황을 당연하듯 타인에게 대입해 기준을 잡고 강요하는 일은 참 무섭다. 상대방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무례함인 것이다. 바로 살바토레에게 사과의 말을 전했다. 예상대로 살바토레는 다음날 불타는 마지막 밤을 보내느라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 예정대로 이틀 뒤 부랴부랴 짐을 싸서 나폴리행 비행기를 타고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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