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사회를 배우고 경험하는 법
진지하게 고민한 적이 있다. 반려동물 전문가라고 하는 사람들이 나와서 입이 마르고 닳도록 말하는 '사회화'가 우리 개에게는 부족한 건가 하고 말이다. 일반적으로 태어난 지 삼 개월은 엄마 개에게 혼나기도 하고, 여러 상황에 부딪히면서 다양한 환경을 배우는 시기를 거친다. 그래야 어떤 상황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깨 발랄한 모습을 간직한 채 행복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중요한 시기를 똘이는 엄마 개에게 혼나지도, 친구들을 만나 세상을 배우지도 못했다. 무엇이 엄마에게 혼나는 일인지 알기도 전에 엄마와 떨어지게 됐고, 주변에는 같이 놀 또래 친구도 없었으며 살뜰히 챙겨줄 주인도 없이 시간만 흘러버렸다. 그러다 우리 가족에게로 뿅 하고 등장했는데 그때는 이미 삼 개월을 넘은 나이였다.
똘이는 남자 어른을 여자 어른보다 더 경계하고 낯을 가린다. 잘은 모르겠지만 기억 속에서 남자 어른들에 대한 안 좋은 기억이 특히나 많이 자리 잡은 듯했다. 다행히도 아빠에게는 한 없이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고 기회를 놓치지 않았던 똘이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가족이 되었다. 엄마와 나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직감했다. 배냇 털로 원숭이 얼굴을 한 포동포동한 흰둥이 한 마리가 떡하니 집안 한 구석 자리를 차지한 것을 본 순간, '아, 식구가 하나 늘었다.'하고 똑같이 생각했음은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유독 으르렁거리며 소리를 낼 정도로 싫어하는 사람들을 가뭄에 콩 나듯 마주치곤 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동네에서 유명한 개를 싫어하는 동네 할아버지, 아주머니처럼 반려견을 기르는 사람들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 지나갈 때였다. 견생은 얼마 되지 않아도 개는 개고, 본능은 살아있음에 놀란다.
이런 우리 집 막내 동생에게 나는 늦은 사회 경험을 시켜주는 중이다. 뭐든 배움에 시기는 없다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에게 강제로 스트레스를 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을 하면서, 배움에 대한 생각을 나 자신에게도 하면서 그렇게 방년 팔세 똘이는 사회 경험을 시작했다. 우선 새로운 냄새를 경험할 수 있도록 주기적인 산책 코스를 바꿔 다닌다. 자주는 아니지만 멈머 친구들이 있는 성수동에도 가끔 간다. 나름 아지트가 있는 우리의 똘이는 처음엔 꼬리를 내리고 현저히 느린 걸음으로 내 꽁무니만 쫓아다녔지만 n번째 방문에는 주변을 탐색하고 먼저 친구에게 다가가 냄새를 맡는 경지에 이르렀다. 큰 발전인 셈이다. 하지만 여전히 신나게 놀자는 신호는 보내지 않는다. 한결같은 그의 태도에 나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 집 개는 낯을 가리는 타입이다.'라고.
다음, 성수동에서 태어나서 처음 맛 본 멍푸치노는 똘이의 눈빛을 바꿔놓기에 충분했다. 확신하며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지금까지 먹었던 간식 중 똘이의 눈이 가장 많이 커졌기 때문이다. 엄마와 지방에 있는 반려견과 함께 할 수 있는 리조트와 함께 간 적도 있다. 규칙을 배우고, 작은 멈머 친구들이 아무리 짖어도, 엘리베이터가 늦게 도착해도 점잖은 우리의 똘이는 같이 짖지 않았고 흥분하지 않았다. 조금씩 지속되었던 경험들이 똘이에게 많은 변화를 주었다고 생각한다. 경험은 사람에게나 개에게나 이렇게나 중요하다.
똘이는 네 마리 봄, 여름, 가을, 겨울이의 엄마다. 사계절이들의 엄마로 활동할 시절의 똘이를 잊지 못한다. 앞서 말했던 '세상을 배우지 못한' 똘이는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본능적으로 끓어 올린 그의 모성애는 정말 놀라웠다. 금방 시간이 흘러 아이들은 눈을 뜨고 귀를 열고 아장아장 걷다가 순식간에 사방팔방을 뛰어다녔다. 자기주장을 펼치기 시작한 때가 온 것이다. 사람으로 치자면 중이병이 덮친 시기에 똘이의 연륜은 발휘되었다. 전선이니 벽지니 닥치는 대로 물어뜯는 아이들을 말리고, 낯선 인기척이 느껴질 때 짖는 아이들을 달랬다. 으르렁거리며 가족들에게 있는 성질 없는 성질을 부리는 새끼를 향해 강단 있는 소리로 꾸짖기도 했다. 덕분에 우리 집은 어린 강아지가 있는 집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로 항상 정돈된 모습을 유지할 수 있었다.
자기가 경험하지 못했던 엄마의 역할을 우리의 똘이는 해냈다. 배우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저렇게 가르쳐줄 수 있을까 하고 신기해했던 기억이 난다. 시간이 흘러 아이들이 좋은 가정으로 입양을 가던 그 순간까지도 똘이는 의젓했다. 배 아파 낳은 새끼들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심정을 가늠도 할 수 없지만 감히 예상하건대 충분히 가르치고 알려준 상태로 잘 키워 보냈다는 뿌듯함과 분명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마음속에 있지 않았을까 한다. 비하인드 스토리지만 아이들의 입양처를 확정하기까지 많은 노력을 기울였고 정말 좋은 분들을 만나게 되어 사계절이들은 사랑을 듬뿍 받고 독립했다. 그 증거는 엄마 개의 태연하고도 안정적인 반응이다. 경험은 마음의 안정을 가져온다. 이렇게 또 한 번 나와 똘이는 사회를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