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려견과 나의 산책길
어디서 꼬순내가 난다. 구수한 된장 같기도, 꼬수운 옥수수 과자 같기도 한 이 냄새는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이 독특한 냄새가 풍겨오면 눈으로 보지 않아도 ‘그 녀석’이 곁에 왔다는 걸 알 수 있다. 내가 사랑하는 꼬순내를 풍기는 반려견 똘이가 옆에 와 살을 맞대고 앉았다.
올해로 여덟 살이 된 똘이는 이름과 외모로 말미암아 남자아이라고 단정하기 쉽지만 ‘멋쁜’ 여자 아이다. 진도 믹스 종으로 하얀 털에 군데군데 콩고물이 묻어 있는 몸, 빤히 눈을 맞추고 있으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눈동자는 참 매력적이다. 가끔 내 얼굴에 방귀를 뀌고선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도망가는 걸 보면 얜 진짜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여느 반려견과 같이 똘이도 ‘산책’이라는 단어를 듣는 것만으로 한껏 하늘 위로 말려 올라간 꼬리가 좌우로 격하게 흔들리고, 활짝 웃는 얼굴로 현관문 앞을 빙그르르 돌며 온몸으로 ‘나 신났음’을 표현한다. 얼른 하네스를 채우고는 똘이와 매일 가는 산책로를 찾았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 길은 마치 다른 세계로 가는 통로와 같다. 한 발 내딛는 것만으로도 눈 앞에 전혀 다른 공간이 펼쳐지는 신비로운 곳이다. 산책로 초입에 진입하면 자잘한 돌이 섞인 흙길을 따라 양쪽엔 하늘로 쭉쭉 뻗은 키 큰 나무들이 하늘을 가리고 있다. 나무 그림자 아래로 산책하는 동안은 무더위도 느끼지 못한다. 공기가 바뀌고 동굴에 들어온 것처럼 시원한 바람이 몸을 감싼다. 나무 터널을 지나면 온통 초록빛으로 가득 차는데 그야말로 풍성한 자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이다. 조금만 걸음을 옮기면 나무껍질과 나뭇잎으로 덮여 푹신한 공간이 나오는데, 똘이가 여기저기 냄새를 맡는 동안 나도 깊은숨을 들이마시며 하늘도 보고 뛰노는 다람쥐도 본다.
나무 터널을 지나 경사가 진 길을 조금 올라가면 하늘길이 열리고 넓은 공터가 나온다. 공터를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소나무 숲을 열 걸음 정도 지나면 투박한 징검다리가 놓인 개울이 있다. 똘이 전용 샘이다. 똘이는 이 곳에서 흘러가는 나뭇잎을 보기도 하고, 물결 따라 헤엄치는 까만 올챙이도 본다. 그러다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징검다리를 오른다. 발이 젖는 것을 너무도 싫어하는 우리 똘이는 작은 발이 다 잠기지도 않는 아주 얕은 개울에서도 꼭 물이 없는 안전한 길을 파악해 움직인다. 그 모습이 신중하고도 조신하다. 가장 폭이 넓은 세 번째 징검다리에 착지하면 천천히 고개를 숙이고 물을 마신다. 똘이가 갈증을 해소하며 내는 찹찹찹찹 찰진 소리를 듣고 있으면 내 갈증까지 해소하는 착각을 일으킨다.
우리는 또 산책에 나선다. 언제 찾아도 마음이 절로 차분해지는 이 산책로에 우리는 하루 세 번 찾아가 몸과 마음을 다스린다. 하늘로 높이 솟은 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길 사이를 걸을 땐 조급해하지 않는다. 순간을 충분히 즐기며 천천히 걷는다. 평소 조용하던 나무들도 바람이 많이 부는 날엔 할 말이 많은지 소리를 크게 내며 대화를 한다. 풀냄새를 열성적으로 따라가던 똘이도 나무들의 대화가 궁금한지 걸음이 느려지더니 어느새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인다. 그 모습이 마치 자연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건네는 것 같다. 바람이 나뭇잎 사이를 스쳐 지나는 사이 똘이와 함께 전한 고마움은 유연히 흘러가는 파도처럼 산책로 저 먼 곳으로 전달된다.
같이 걷는 산책로에서 우리는 또 보통의 기쁨을 공유한다. 어느 방송에서 동물 행동 전문가가 이런 말을 했었다. “이다음에 내 반려견이 무지개다리를 건너면 나를 좋은 친구로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똘이도 언젠가 우리 가족을 떠나게 되면, 좋은 친구와 걸었던 산책길과 함께 나눈 기쁨의 순간을 꼭 기억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