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시미어의 털
캐시미어 100%면 어으음~청 부드럽고 좋은데, 가격이 안 좋을 때가 많다. 하루는 맘먹고 알레를 위한 작은 서프라즈 선물로 캐시미어 100% 비니를 구매했다.
일단 디자인이 예뻐서 홀린 듯 가까이 가서 보니 색상도 독특하고 예뻤다. 집어 들어 만져보니 질감도 부드럽고, 무게감도 적당히 가벼워 좋았다. 다음으로 상품표에서 원단을 체크해 보니 캐시미어 100%라고 쓰여있었고, 가격 또한 적당히 합리적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구매를 했다. 보통 내가 물건을 구입할 때 거치는 일련의 판단 과정이다.
설레는 마음으로 건네준 선물에 알레가 너무너무 좋아했다. 색상도 질감도 너무 좋다고 고마워했다. 거울 앞에서 썼다 벗었다 하며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선물 줄 맛 나고 기뻤다.
더 신나 하고 좋아했으면 해서 계속 어필했다.
"이런 색 흔치 않지? 내가 딱 봤는데 특별하더라고!"
"응! 역시 보는 눈이 있어!"
"나도 써보고 구매한 건데, 안 까끌하고 부드럽고 느므느므 좋아."
"맞아, 너무 부드럽고 질감이 좋다. 너무 편해!"
"그치? 캐시미어야. 100% 캐시미어!"
"캐시미어 뭐야?"
알레는 옷에도 원단에도 관심이 1도 없어서 가끔 나에겐 당연한 것들을 잘 모를 때가 있다.
"캐시미어 아주아주 좋은 원단이야. 부들부들한 고급 원단!"
"동물은 아닐까?"
아차 싶었다. ‘내 남자친구 비건이었지...’ 나에게 캐시미어는 부드러운 고급 원단이지, 살아 숨 쉬는 동물 캐시미어가 생각나진 않아 왔다. 동물인건 확실한 것 같고 어떻게 생긴 동물인지 보기 위해 함께 검색해 보니, 할아범 염소처럼 생긴 덥수룩한 수염의 네발 달린 친구들이 날 쳐다보고 있었다.
사진을 확인한 우리는 서로 멋쩍게 바라보며 웃었다. 그래도 난 그 비니가 너무 마음에 들어 알레가 꼭 썼으면 하는 마음에 물었다.
"근데 얘들 그냥 봐도 털 좀 정리해야 될 것 같이 생겼는데, 그냥 이발할 때 돼서 털 깎는 김에 그 깎인 털을 우리 인간들한테 주는 거 아닐까? 그럼 캐시미어 털로 만든 비니 정도는 우리가 써도 괜찮지 않을까?" 약간 말이 안 될 거 같으면서도 일리 있는 질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되면 좋겠지만, 돈을 받고 대량의 캐시미어 털을 공급해야 하는 입장이면 그렇게 바버샵에서 고객들 이발해 주듯 아름답게 손질해주지 않아. 동물복지적 차원의 문제가 많아." 미안해하고 아쉬워하는 듯 보였다.
우리의 마음에 쏙 들었던 그 예쁜 비니는 환불 확정이다.
그래도 나는 맘속 깊이 아직 그 비니 진짜 환불하고 싶지 않았다. 그날 난 Chat GPT(인공지능 AI)를 켰고, 캐시미어 울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확실히 구체적으로 어떤 동물 복지 문제가 발생하는지 물어봐야만 속이 후련했다.
A. 캐시미어는 몽골, 중국, 이란, 아프가니스탄과 같은 지역이 원산지이며 산이 많고 기후가 가혹한 곳에서 생활하는 동물입니다. 자연 서식지에서 캐시미어는 일반적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토착 식물을 풀을 뜯어먹으며 살았습니다. 야생에서 캐시미어는 정기적으로 털을 깎지 않습니다. 대신 봄과 초여름에 자연스럽게 스스로 겨울 코트를 벗습니다. 이 탈피 과정을 통해 계절 변화에 적응하고 체온을 조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상업적인 생산을 위해 길들여진 캐시미어는 더 길고 가는 캐시미어 섬유를 생산하기 위해 인간에 의해 선택적으로 사육되기 시작했습니다. 비건은 동물에 대한 윤리적 대우를 옹호하고 제품에 동물을 사용하는 것이 착취적이라고 믿기 때문에 캐시미어 및 기타 동물 유래 제품을 피합니다. [...] 캐시미어는 종종 비인도적인 관행에 노출됩니다.
A. [...] 거친 취급: 털을 깎는 동안 거친 취급은 동물에게 스트레스와 부상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캐시미어를 잘못 다루거나 강제로 구속함으로 인해 그들에게 신체적 고통과 심리적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부주의한 털 깎기: 부적절한 털 깎기 기술을 사용하면 캐시미어가 베이거나 흠집이 나는 등 피부에 상처를 입을 수 있습니다.
과도한 전단: 과도한 양의 털을 제거하는 과도한 전단은 캐시미어를 극한 온도, 일광화상 및 벌레 물림에 취약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자연 절연 및 보호에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무차별 털깎기: 무차별 털깎기는 털의 자연적인 성장 주기와 관계없이 일 년 중 언제든지 동물을 깎는 행위입니다. 이것은 캐시미어의 자연적인 온도 조절을 방해하고 온도 변화에 민감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
A. [...] 시간 및 효율성 압박: 많은 수의 캐시미어 털을 깎는 것은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일 수 있습니다. 효율성과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일부 전단 작업자는 공정을 서두르게 되어 거칠게 다루거나 부적절한 전단 기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익 중심 관행: 경우에 따라 이익 마진과 비용 고려 사항으로 인해 동물 복지보다 속도와 양을 우선시할 수 있습니다. 이로 인해 캐시미어의 편안함과 웰빙을 보장하는 것보다 양모 수확량을 극대화하는 것을 우선시하는 부주의한 전단 관행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규제 및 집행 부족: 캐시미어 생산 지역에는 동물 복지 기준에 관한 규제 및 집행 메커니즘이 제한적이거나 일관성이 없을 수 있습니다.
A. 수세기 동안 인간과 공존한 후 그들은 인간이 관여하는 환경에 적응했으며 더 이상 야생에서 생존하는 데 필요한 특성을 소유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인간과 가축 사이의 깊은 상호 연결과 의존성으로 인해 가축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생각은 가까운 장래에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대신 동물 복지 개선, 책임 있는 관리 촉진, 가축에 대한 윤리적 대우 보장에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가축을 둘러싼 윤리적 고려 사항에는 복지 문제 해결, 적절한 보살핌 제공 및 고통 최소화가 포함됩니다. 가축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추구하기보다는 가축의 관리 및 치료에 대한 책임감 있고 온정적인 접근 방식을 계속 육성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이 덥수룩한 네발이들을 위해 오늘날 소비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은, 투명성, 책임 있는 관행 및 동물 복지 기준을 우선시하는 브랜드를 조사하고 그 브랜드의 제품을 소비함으로써 윤리적 기업을 지지하는 정도가 되는 것 같다. 근데 언제 그거 다 조사하고 앉았냐... 그래, 그런 기업이 일단 있다 치고,
알레에게 다가가 내가 좋아하는 ‘만약에’ 시전에 들어갔다.
“만약에 농장이 있어. 그 농장 주인이 소수의 캐시미어들이랑만 살아. 한 2-3마리. 서로 보살피며 가족처럼 지내는 거야. 그래서 거친 취급, 부주의한 털 깎기, 과도한 전단, 무차별 털깎기 이런 거 절대 안 하고, 과거의 캐시미어들이 야생에서 했듯 봄과 초여름에 자연스럽게 털을 탈피할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줘. 필요하면 바버샵에 온 고객님들처럼 엄청 정성 들여 이발도 도와주는 거야. 그리고 어느 시기쯤 캐시미어들이 늙어서 더 이상 털을 생산하지 않더라도 상관없어. 왜냐면 가족이니까 함께 그냥 행복하게 지내는 거야. 근데 그 농장주인이 그 일 년에 한 번쯤 정도 그냥 커뮤니티에 글을 올리는 거야. 자기 캐시미어들 털갈이 한 김에 그 소량의 털들을 판매한다고. 그럼 살 거야? “
응, 당연하지! 그런 데가 진짜 있다면 구매하지. 진짜 있어?
없다. 없고, 동물복지 신경 쓰는 진짜 윤리적 기업 찾기도 쉽지 않다. 알레를 위한 선물을 구입할 땐 앞으로 그냥 차라리 속 편하게 페이크퍼(인조털)를 구매하기로 마음먹었다.
(다음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