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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공 May 09. 2021

너에겐 애인이 아니라 상담사가 필요해!

첫 상담을 고민하는 용기 있는 당신에게

You don't need a girlfriend
너는 여자 친구가 필요한 게 아니야

You just need a therapist
너는 심리 상담사가 필요하지


요즘 인기가 많다는 영국 싱어송라이터 Mae Muller의 노래 ‘Therapist’ 후렴구 가사다. 노래 속 화자는 애인을 행복하게 해 주고자 부단히 애쓰지만 정작 애인은 칭찬 한 마디, 선물 하나 없다. 화자의 마음엔 관심도 없거니와 늘 부정적인 생각만 하며 불평만 늘어놓는다. 그런 애인에게 말한다. “연애하면서 날 갉아먹을 생각하지 말고 가서 심리상담이나 받아!!!”


연애 상대와 가족, 친구 등에게 ‘감정 쓰레기통’으로 이용당하는 사람이 많아서인지 가사 내용에 공감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은연중에 깔려 있는 ‘상담받아야 되는 사람’에 대한 편견이 아쉽다. 그나마 전 세계에서 상담이 가장 대중화된 곳에 속하는 미국에서조차 내담자에 대한 인식이 이 정도다. “상담받으러 가보지 그래?”란 권유는 “몸이 안 좋으면 내과에 가봐”와 사뭇 다르다. 듣고서 날 생각해주는 마음보다는 ‘내 얘기가 지겹다는 건가’ 싶어 비난처럼 들리기도 한다.


온라인 커뮤니티 게시판이나 SNS에선 “저 상담받아야 될까요?”라고 의견을 구하는 글을 자주 찾아볼 수 있다. 친한 친구의 고민 얘기 끝은 “나도 상담이나 받을까?”라는 말로 마무리되는 경우도 많다. 그만큼 다들 심리적으로 어렵다는 얘기다. 하지만 그 힘든 마음에 너무나 깊이 공감한 나머지 “그래. 좀 받아보는 게 좋겠다”고 하는 순간 친구와의 관계는 어그러질 가능성이 높다. 묻는 이는 힘들긴 해도 ‘상담을 받을 정도’로 힘든 건 아니고 그보단 조금 덜 힘들어도 위로를 구할 정도로는 힘들다는 말을 듣길 바라는 경우가 많다. 마치 다툰 애인 욕을 한참 하던 친구에게 “그러면 헤어지라”고 하면 “아냐, 그 정도로 나쁜 사람은 아냐”하듯이.


왤까. ‘Therapist’가 그러하듯 ‘상담을 받아야 될 정도’인 사람이 상징하는 바가 있어서다. 일반적으로 상담은 그 자체는 긍정적으로 여겨지지만 상담을 받는 사람들에 대해선 부정적 이미지를 갖는 경우가 많은 특수한 행동이다(김우림, 김창대, 2019). 이른바 ‘낙인 효과’ 때문이다. 내가 타인에게 나약한 사람으로 여겨지진 않을까 하는 사회적 낙인, 스스로 약한 사람으로 느껴지는 개인적 낙인은 힘든 사람의 상담 신청을 주저하게 만든다. 실제로 비교적 상담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이 용이한 대학의 상담센터 이용률도 대체로 10% 내외에 그쳤다(최윤미, 2012).


감기 걸렸을 때 내과나 이비인후과를 찾는 사람은 의사에게 “어제부터 열이 나고 콧물도 나는 것 같아요”라고 얘기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상담에 가선 내가 얼마나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이 어려움이 수면, 식이 등 증상으로는 어떻게 나타나고 있는지 말하게 된다. 즉 스스로 심리적으로 힘든 상태에 놓여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그리고 이건 감기보다 명백하게 인정이 어렵다. 특히 집단주의적 경향의 동양 문화권에선 개인적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노출하는 것이 개인적인 유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며 사회적인 관계 질서를 깨뜨릴 수 있는 무례한 행동으로 평가되는 경우가 허다하다(유성경, 이동혁, 2000). 나 역시 첫 상담을 받을 때 나에게 상담을 권한 지인에게 버럭 화를 냈다. 나 그 정도는 아니거든? 이제 내 고민 듣기 싫다는 거지? 하면서.


하지만 아니다. 약한 사람은 상담을 받지 않는다. 상담은 강해야 받는다. 나의 힘듦을 인정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타인의 도움을 받으려는 그 생각 자체가 너무나도 큰 ‘강함’을 필요로 한다. 상담받는 건 욕이 아니라 칭찬이 돼야 마땅하다. 전문 의학이 발달한 세상에 몸살감기에 걸렸는데 끙끙 앓으면서 집에서 생강차만 달이는 게 과연 현명한 걸까.


우린 보충 학습이 필요하면 학원에 갔고 코로나 시대에 야식이 먹고 싶으면 배달 서비스를 이용했다. 상담도 마찬가지다. 심리적 어려움이 있을 땐 이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는 곳에 가면 좋다. 다만 아직 익숙하지 않을 뿐이다. 앞머리가 눈을 찔러 아프다는 친구에게 “미용실에 가보지 그러니?”가 욕이 아닌 것처럼 “상담받을래?”도 비난이 아니다. 친구가 직접 앞머리를 싹둑 잘라주지 않는다고 해서 친구가 날 떠난 게 아니듯 나에게 상담을 권하는 지인이 나를 지겨워하는 게 아니다. 오히려 잘 되길 누구보다 바라는 걸 수 있다.


쉽지 않다는 걸 안다. 나의 약함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도 화가 나는데 타인에게 도움을 요청하라고? 실패자가 된 것 같고 나약하고 낙오자처럼 여겨진다. 그치만 아니란 걸 자신은 알 거다. 상담실을 찾는 이는 현재 나에게 필요한 게 뭔지 잘 알 만큼 스스로를 아끼고 사랑하며 이 마음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추진력까지 갖췄다. 지지와 애정을 듬뿍 담아 상담을 고민하는 분들에게 전하고(노래하고) 싶다. You just need a therapist~


김우림, 김창대(2019). 상담 서비스 이용 의사결정 과정: 원형-의향 모형을 중심으로. 상담학연구, 20(1), 21-37.

유성경, 이동혁(2000). 한국인의 상담에 대한 태도에 관한 분석적 연구. 한국심리학회지: 상담 및 심리치료, 12(2), 55-68.

최윤미(2012). 한국과 미국 대학상담센터의 현황. 인간이해, 33(2), 2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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