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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시 탐색자 Dec 20. 2020

2020년 돈을 찍어내는 기계-강남 아파트

그녀가 정원이를 만나, 그녀의 어머니에 뒤이어 집은 '사는 거', '사야 하는 거'라는 주입식 교육을

받은 뒤, 대학교 동창인 현주를 만났다. 현주는 약 5년 전에 갭 투자를 통해 대치동에 아파트를 장만했다. 경제적인 형편상 현재는 대치동에 거주를 할 수 없지만, 최소한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에는 대치동 아파트로 입주할 계획이라고 했다. 현주를 만나자마자 첫째 딸은 집 이야기부터 했다.


지방에서 올라온 현주는 일찍부터 자취생활을 하며 독립적인 생활을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에는 오빠와 함께 직장 근처인 강남구 삼성동의 20평형 빌라를 전세 얻어 생활했다. 사실 처음엔 강남의 전세 가격이 부담스러워 강남과 가까운 강북 지역의 전세 가격을 알아보았다. 그런데 강남과 강북의 전세 가격 차이가 2-3천만 원이라면 거주 공간의 쾌적성이나 출퇴근 거리, 거주 지역의 치안 등의 면에서 강남 지역에 있는 것이 훨씬 낫다고 생각해 강남 지역에 거주하기로 했다.  


2009년, 첫째 딸보다 1년 정도 먼저 결혼한 현주는 강남구 삼성동 아파트에서 반전세(보증금 1억 2천, 월세 120만 원)로 신혼생활을 시작했다. 남편과 현주 모두 전문직에 종사하고 있어서 월세가 아주 부담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4년쯤 지나자, 집주인이 월세비용을 150만 원으로 인상하려고 했고 시간이 지나자 월세를 내는 비용이 점점 더 아까운 생각이 들었다. 전세 보증금이야 이사할 때 돌려받을 수 있지만, 월세는 매달 그냥 나가버리는 지출비용이었다.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돈을 모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청담동의 조금 낡은 아파트를 알아보니 삼성동의 아파트보다 가격이 저렴했다. 보증금 2억에 월세 80만 원의 반전세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청담동의 아파트에서 2년 정도 살다가 아이를 출산했는데, 집주인이 월세 인상(100만 원)을 요구했다. 인상된 월세 비용에 상주하는 베이비시터 비용(100-120만 원)까지 합치니 경제적으로 도저히 감당이 되지 않았다. 원래 살던 아파트 단지 가까이에 전세매물(5억 3천만 원)이 있어서 조금 무리를 해서 이사를 했다. 다행히 둘 다 안정적인 직장이 있어서 은행 대출이 어렵지는 않았다.


결혼 이후 2년마다 인상되는 전월세 재계약으로 인한 스트레스는 점점 더 심해졌다. 집주인이 요구하는 인상 비용을 마련하거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해야 했다. 이렇게 해서는 도저히 아이를 안정적으로 교육시킬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2014년부터 아이의 교육을 위해 남편과 강남구 대치동에 거주하기로 결정하고 본격적으로 아파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더 이상 쫓겨다니 듯이 살고 싶지 않았다. 우선은 아파트를 매입해서 거주할 형편이 되지 않으니 갭 투자를 해서라고 아파트를 장만하기로 했다. 남편과 둘이 앉아서 계산기를 두드려보니 대치동의 H아파트 30평형의 경우, 2억 1천만 원+5천만 원(세금, 중개수수료)만 있으면 되는 거였다.


현주는 남편과 함께 약 1년 6개월 동안 미친 듯이 아파트를 찾았다.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늘 부동산 관련 사이트를 열어두고 있었다. 주말에는 어김없이 대치동에 매물로 나온 아파트를 보러 다녔다. 지금이 아니면 도저히 강남에 아파트를 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남의 아파트 가격은 눈만 뜨면 오르는 거였다. 2015년 드디어 역세권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현주와 남편이 원하는 대부분의 조건을 만족시키는 아파트(매매가 11억 3천만 원, 전세가 9억 1천만 원)를 매입할 수 있었다. 요즘 표현대로 '영끌'해서 산 아파트였다. 그동안 두 부부가 아껴 모은 돈과 부모님, 그리고 은행 대출까지 - 전부 끌어모아 아파트를 장만했다. 2020년 현재 그 아파트의 매매 가격은 23억 원 정도이다. 5년 만에 11억 7천만 원이 오른 거다.


지금은 현금을 집안에 쌓아놓고 있지 않는 이상,
비강남권이 강남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은 0%에 가깝지 않니?
내가 만약 그때[2015년] 아파트를 안 샀더라면, 요즘 같은 때 전셋집을 구하느라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겠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아.


대치동의 아파트 가격은 지난 5년 동안 평균 10억 원이 올랐다. 게다가 최근 들어 전세 품귀 현상까지 생겨 전세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 2015년 9억 1천만 원이었던 전세보증금은 현재 13억까지 올랐다. 신문과 방송에서는 다시 강남의 '똘똘한 한채'로 갈아타려는 수요가 몰리고 있다는 내용이 연일 보도되고 있다. 현주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첫째 딸은 얼마 전 사무실 직원이 '강남 아파트는 돈을 찍어내는 기계'라고 한 이야기가 떠올랐다. 정말 그랬다. 어떻게 5년 만에 10억이라는 돈을 모을 수 있단 말인가... 평범한 직장인은 1년에 1천만 원을 모으기도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현주도 가파르게 오르는 강남의 아파트 가격이 이해도 가지 않고, 정상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하지만, 2015년 강남에 아파트를 장만하고 나니 마치 큰 숙제를 마친 것처럼 홀가분하다고 했다고 이야기했다. 2014년부터 얼마나 초조했는지 모른다고 했다. 문득 첫째 딸은 현주에게 '강남'은 어떤 의미일까 궁금해졌다. 비수도권, 비강남권에게 강남은 도대체 무엇일까? 왜 그토록 강남에 아파트를 사고 싶었던 걸까?


강남에 대한 현주의 생각이 매우 흥미로웠다. 현주에게 강남은 '자유로운 공간'이라고 했다. 뜻밖에 그녀는 강남에는 여러모로 잘난 사람들이 많아서 자신의 존재가 특별히 튀지 않고 조용히 묻혀 지낼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어린 시절, 지방의 소도시에서 받았던 지나친 관심과 간섭이 그녀에게는 큰 부담이었다고 했다. 지방의 국립대학에 진학할 것을 부모님과 학교에서 권유했지만, 오빠와 본인은 꼭 서울로 올라오고 싶었다고 했다. 친척들과 동네 어르신들의 감시(?)의 눈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고 했다.


그녀는 물론 강남에 살면 기본 생활비가 많이 들어서 부담스러운 부분이 많지만, 이 비용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들이 강남이라는 지역에 거주하면서 알게 모르게 누리는 부분들에 대한 비용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강남이라는 지역에 사는 덕분에 차로 30분 이내에 공원이며, 산, 쇼핑할 곳이 다 있어서 맞벌이 부부의 바쁜 주말을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의 고향 친구들도 기차를 타고 서울로 올라와 늘 현주네 집 근처에서 모임을 한다고 했다. 고향 친구들은 현주 덕분에 1년에 한두번이지만, TV에서만 보던 강남의 거리를 구경할 수 있어서 좋다고 했다. 마치 10대로 돌아간 것 처럼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걸어다닌다고 했다. 현주는 꼭 필요한 것이 아니면 지출을 하지 않았다. 옷도 늘 수수하게 입고 아이와 가족들이 먹는 식재료와 교육에만 지출을 하고 나머지는 모두 은행에 저금을 한다고 했다.


얼른 돈 모아야 대치동에 있는 '우리 집'으로 들어가지.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기 전에는 이사 가고 싶어. 그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걸.
너도 얼른 집 장만해.
무겁게 어깨를 짓누르던 무언가로부터 벗어난, 그 홀가분한 기분이란!
너도 네 집이 생기면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가 갈 거야.  



어머니가 집은 꼭 사야 한다고 귀에 목이 박히도록 이야기한 것이 떠올랐다. 어머니 말대로 2010년, 그때 집을 샀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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