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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May 29. 2024

그 남자네 집_박완서

주인공을 닮은 나

한국 전쟁 직후의 여성상을 보여주는 박완서 작가의 자전적 소설이다.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 다음으로 완독 한 책이다. 몇 작품은 읽다가 말아서 차차 읽어나갈 계획이다.

그 당시의 상황을 어쩌면 그렇게 생생하게 소설에 담았는지 '역시!'라는 감탄이 저절로 나온다. 동시에 주인공이 어쩌면 나와 성격, 생각이 비슷할까 하는 생각을 읽는 내내 했다. 교육받은 신여성의 모습을 그린 것이겠지만 시대 차이가 있는데 전업주부인 내 모습과 다를 바가 없는 게 더 놀랍다. 그래서 사람 사는 거 다 똑같다고 하는 것일까. 아마도 일탈하고 싶은 여자의 마음, 특히 주부의 마음을 글에 잘 표현해서 그럴 것이다. 

나는 내 생전에 도저히 끝날 것 같지 않은 시집의 식도락에 절망감을 느꼈다. 먹는 것 외의 딴생각을 하고 살 순 없는 것일까.
(중략)
누가 상을 줄 것도 아니고 인간이 신선이 되는 것도 아니다. 고작 혀끝에서 목구멍까지의 즐거움에서 벗어나 조금이라도 딴생각을 할 수 있다면 딴 세상이 열릴 것 같았다.

딴생각하기를 좋아하는 내가 격하게 공감했던 부분이다. 이런 내가 한편으로는 한심하고 한편으로는 박완서 작가와 닮은 꼴인가라는 행복한 착각을 하게 만든다. 또한 그녀가 소설에 담고 싶은 의미가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미국으로 이민 간 춘희라는 인물을 통한 미국과 양키에 대한 묘사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한국에 미친 영향과 동시에 박완서 작가가 생각하고 경험한 미국에 대한 인식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박완서 작가의 삶과 사상, 그리고 시대상이 모두 담겨 있는 너무나도 소중한 소설이다.

우리에게 시가 사치라면 우리가 누린 물질의 사치는 시가 아니었을까. 
그 암울하고 극빈하던 흉흉한 전시를 견디게 한 것은 내핍도 원한도 이념도 아니고 사치였다. 시였다.
전후의 궁상과 어울리지 않는 사치 풍조와 향락 산업, 외국 군인과 양공주의 범람, 그들이 만들어 내는 양풍에 대한 경멸과 동경, 내몰리듯이 생활 전선으로 나선 전쟁미망인들과 생과부들의 초인적인 생활력, 전쟁이 앗아간 인명 손실을 단숨에 복구시키고 말 것 같은 베이비붐, 악착같은 생존 경쟁의 터전인 동대문과 남대문 시장의 번영, 하룻밤 사이에 지을 수 있는 하꼬방 집들, 이런 엄청난 생산성이 다 억압됐던 성적 에너지의 표현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식욕 없는 자가 밥을 맛있게 지을 수는 없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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