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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미 Apr 12. 2024

봄, 첫 민화 수업을 가다.

어제 아이가 비염으로 학교를 못 가서 오늘도 못 가면 어쩌나 조마조마했다. 오늘은 나의 첫 민화 수업을 시작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엄마로 살다 보면 너무 많은 변수가 생겨서 나를 위한 스케줄은 항상 취소하거나 미뤄도 되는 스케줄이다. 집에서 열심히 밥 먹이고 약 먹이며 쉬게 한 결과 다행히 오늘 학교에 보낼 수 있었다. 그러고 나니 사실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고 싶었지만 계획대로 민화 공방으로 향했다. 나를 위한 시간을 사사롭게 생각하지 말자. 글쓰기도 마찬가지인데 참 쉽지 않다. 앞으로 일주일에 한 번 하는 민화 수업과 글쓰기는 반드시 함께 맞물려해야 하는 일이라고 정해 놓아야 할 것 같다. 쓰기 위해 그리고, 그리기 위해 쓴다


아크릴이나 오일페인팅은 해 보았지만 동양화 재료는 너무 낯설다. 먹을 갈아서 난을 쳐 본 적은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오래전이다. 오늘은 첫날이라 모란화와 까치호랑이의 도안을 먹물로 따라 그렸다. 따라 그리는 거라 부담 없이, 어느 순간은 정말 아무 생각 없이 무념무상으로 도안을 떴다. 먹물 냄새를 맡으며 도안을 따라 그리는 작업은 명상과 비슷하다. 먹물 냄새가 예전엔 이토록 향긋한지 몰랐다. 민화에 나오는 호랑이를 이렇게 유심히 본 적이 있었던가. 선생님이 동물 그리는 거 좋아하냐고 물어보셨다. 동물 너무 좋아한다고 하자 가끔 민화에 나오는 동물을 무서워하는 분도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무서울 수도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나는 너무 신기했다. 평면적이지만 탈처럼 복잡하게 그려진 호랑이 얼굴이 무섭다기보다 오히려 정감이 갔다. 까치호랑이는 권력자와 민초의 관계를 그린 그림이라고 한다. 그런데 내 눈엔 나와 아들 모습 같다. 내가 아이한테 화낼 때 저런 모습이지 않을까. 아이 눈에는 내가 우스꽝스럽고 아이는 오히려 당당한 모습. 딱이다 딱!


선생님이 나의 모습을 보시더니 "미술 하셨어요?"라고 물어보신다. 그래서 따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고 멋쩍게 대답한다. 어디 가서 미술 전공 했다는 이야기는 잘 안 한다. 예술학과를 설명하기에는 애매한 부분도 있다. 미술 전공이긴 한데 이론을 공부하는 학과니 그림을 잘 그린다고 할 수 없다. 물론 입시 미술을 하긴 했지만 실기는 자신이 없었고 결코 잘 그리는 편이 아니었기에 될 수 있음 숨기려 한다. 하지만 미술 하는 사람들은 매의 눈을 가졌기에 붓을 잡는 것만 봐도 어느 정도는 예상 가능 할 것이다.


나의 예상대로 그곳에서 대작을 하고 계신 분은 나이가 있으신 분이셨다. 딸과 손자 이야기를 하시는데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우리 엄마는 보태니컬 드로잉을 배우시는데 난 민화를 배운다. 우리 뭔가 바뀐 거 같다. 하지만 상관없다. 난 동양화 재료가 궁금했고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색을 자연 재료에서 내야 해서 역시나 복잡하고 까다로우며 비용도 많이 든다. 재료비만 해도 거의 20만 원 가까이 들었고 앞으로도 많이 들것이다. 그림은 연필 하나로도 그리고 배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싼 재료로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 한지에 그리는 이유는 분명 있을 것이다. 천연 재료들은 평면적인 그림에 정서적인 깊이를 더하기 위한 필수불가결한 재료가 아닐까. 한지에 색이 번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아교포수라는 작업을 한다. 한마디로 한지에 풀을 먹이는 작업이다. 서양 미술 재료에 비하면 이런 작업은 정말 사서 고생하는 작업으로 보일 수밖에 없다. 그림 그리는 것도 힘들어 죽겠는데 할 게 너무 많다. 요리로 말하자면 서양 미술은 밀키트 같고 동양 미술은 재료 하나하나 준비해 정석으로 만든 요리 같다. 요리는 야매로 하는 내가 그림을 정석으로 그릴 수 있을까. 그건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이제 막 민화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신 민화 선생님과 공방에서 배우시는 분들의 오묘한 조화, 그리고 종이 안팎에서 펼쳐지는 봄을 느낀 나의 첫 민화 수업은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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