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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심한 주피 Dec 21. 2020

-7.0 디옵터로 보는 세상

아름다움과 다름에 대해 

어머니한테 물려받은 건 검은머리 

아버지한테 물려받은 건 곱슬머리 

그리고 약한 시력과 치아입니다. 


전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안경을 썼습니다. 안경 없는 세상은 제 기억 속에 거의 없습니다. 초등학교 전의 기억에서도 저는 계속 안경을 쓰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착각도 드는데요,  제겐 앞이 잘 보인다는 건 안경을 쓰고 있는 거라는 도식이 오랫동안 자리 잡아 왔으니까요. 


어렸을 때 사진 속에서는 안경 없는 제가 환하게 웃고 있지만 지금의 저는 안경 없이는 자동반사로 조금이라도 잘 보려고 눈을 찌푸리고 이마에 힘을 꽈악 쥐며 인상을 씁니다. 


제 두 눈의 시력은 -7.0 디옵터인데요, 

안경점에서 눈에 힘을 집중하면 시력판의 맨 윗글자만 흐릿하게 떠오릅니다. 

수십 년의 기억이 속삭입니다. 저건 4라고. 


안경 없이 보는 세상은 답답하고 힘들 거라고 생각하실 텐데요. 

네 맞습니다. TV도, 책도 보기 힘듭니다. 사람들도 알아보기 힘듭니다. 

어렸을 때 학교에서 친구들과 격하게 놀다가 안경다리를 부러뜨리고 집으로 걸어올 때 아는 사람을 인지하지 못해 버릇없다는 소리도 들어봤습니다.  버스를 탈 수도 없습니다. 번호판을 확인할 수 없으니까요. 버스가 서서 내가 타야 할 버스를 알아차리면 이미 그 버스는 출발을 해 버린 이후 였죠.   


그런데 재미있는 점이 하나 있는데요, 안경 없이 보는 세상은 예상 외로 예쁩니다. 

특히 야경이 정말 예쁜데요, 알록달록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다양한 색깔이 여러 크기로 다가옵니다. 

정체불명의 불빛과 명암. 초점이 맞지 않은 사진과 비슷한데요. 제대로 나온 사진은 없지만 대충 아래와 비슷하지만 훨씬 몽롱하고 뿌옇게 보입니다. 


한강 위 어느 다리. 버스 안에서 
제주 플레이스 캠프. 밤에


도쿄 미나토 미나미아자부 후배 녀석 집. 밤에.


너무 뻔한 표현이겠지만 빛의 향현, 번짐의 미학이라는 단어로 퉁쳐야 할 거 같은데요, 그렇게 제게 보이는 세상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단순히 초점이 맺히는 지점이 달라지는 건데 세상이 들어오는 모습 자체가 너무 달라지는 게 참 신기한 것 같습니다. 몽골에서는 시력 4.0, 8.0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먼 곳을 봐야 하기 때문에 눈의 근육이 그에 맞춰 발달했다고 하던데요. 


이렇게 보면 세상은 내가 어떤 눈의 상태로 보냐에 따라 달라지는 거 같습니다. 아름다움과 다름에 대해서도요. 제가 안경을 벗고 세상을 바라보면 모든 사람이 다 잘 생기고 예뻐 보이거든요. 


흐릿한 세상이니까요. 

경계가 모호한, 선이 두꺼워지며 면이 작아지는 세상, 구별하기 힘든 세상  


시력 0.1이 평균인 사회는 어떨까 싶은 생각이 든 적이 있습니다.  

아마 주제 사라마구의 <눈먼 자들의 도시>를 무척 인상 깊게 읽고 난 후였던 거 같은데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눈먼 자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도시. 

모두가 백색 실명을 하지만 아마 한 사람만이 눈이 보인다는 설정 등 

인간됨과 폭력 등에 대해서 너무나 적나라하지만 참 건조하고 침착하게 그렸다는 기억이 있습니다. 

주제 사라마구 <눈먼 자들의 도시>


아무튼 아름다움이란 것이 고작 시력의 차이로 달라질 수 있다. 

눈의 근육과 수정체의 다름이 아름다움의 기준을 바꿀 수 있다.

어찌 보면 상당히 공허하게 들리는 말인데요, 내가 보고 있는 세상이 절대로 사실이 아닐 수 있다는 물리적 거리로 보지 못하는 차원이 아니라 같은 거리도 다르게 보일 수 있고 각각의 현실이 존재할 수 있다는 점이 조금 무게 있고 다가왔습니다. 


오늘의 노래는 기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영화 <Shape of Water>로 잘 알려진 곡이죠. 

영화 속에서는 르네 플레밍(Renee Fleming)이 노래를, 영화감독인 알렉상드르 데스플라(Alexandre Desplatd)가 플륫을 연주했는데요. 데스플라는 이 영화로 골든글러브 시상식에서 음악상을 수상했구요. 


우리에겐 정말 친숙한 목소리죠. 로드 스튜어트가 부르는 버전으로 준비했습니다. 

영화 OST 보다는 조금 더 편안하고 익숙하게 들으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Rod Stewart / You'll Never Knows 


믹스테이프는 들으신 곡을 우리나라 재즈 보컬리스트가 부른 버전으로 시작해서 재즈가 묻은 노래로 이어 나가볼까 합니다. 


오늘의 믹스테이프 (한 번에 듣기)

 

곡별로 듣기 

- 김민희 / You'll Never Knows (기타리스트 준 스미스씨가 콘트라베이스와 목소리로만 편곡한 버전입니다. 재즈 보컬리스트 김민희씨의 매력을 제대로 느끼실 수 있습니다. 베이스란 악기의 힘도요)

- 김민희 / If You Go Away (같을 앨범 수록곡으로 샹송 Ne me quitte pas의 영문 버전입니다. 이 곡은 기타, 보컬 듀엣으로만 연주됩니다.) 

- 로켓트 아가씨 / Let's Call It a Day (피아니이스트자 싱어송 라이터 로켓트 아가씨(본명 고진수)의 정규앨범 수록곡으로 일렉기타는 수상한커튼님이 연주했습니다.)

- 로켓트 아가씨 / Toi Et Moi (feat. 리사)

- 유발이의 소풍 / 선물 (김창완 아저씨랑

- 유발이의 소풍 / 봄이 왔네 (feat. 캡틴락(크라잉넛), 네스트나다 'CaptainRock & R0ll vol.2 티저 영상)  

유발이의 소풍 / 봄이 왔네 (feat. 캡틴락(크라잉넛), Audio)  (유발이님은 재주 연주자 출신답게 재즈풍의 터치와 어쿠스틱 한 감성을 보여주는 아티스트입니다. 프랑스 유학 중에 더 보이스 프랑스 시즌7에도 출연하셨구요, 공연에서 샹송도 많이 부르십니다.) 

- 이하늬 / 흔들리는 밤 (정지우 감독의 영화 <침묵> OST로, 영화에 출연한 배우 이하늬씨가 불렀습니다.) 

- 이하이 / 짝사랑 (여러 말이 필요 없는 보컬리스트 이하이씨의 노래이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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