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웨지니 Jan 22. 2021

필요에 의한, 벼락치기 영어 회화 공부가 가져다준 것

2019년 6월.


스웨덴에 두번째 방문을 하기로 했을 때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내가 2주간 스웨덴에 다녀올 거라고 친구들에게 말하니 다들 '회사는 어쩌고?'라고 물어왔다. 입사한 지 4개월 정도밖에 안 되어서 아직 제대로 해낸 일도 없고 입지도 약한 주제에, 언니를 만나러 스웨덴에 다녀오고 싶다고 대표님과 얘기해서 2주간 스웨덴에서 원격근무를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스웨덴까지 가서 하루종일 일하는 데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으니 매일 4시간만 일하기로 했다. 여름휴가로 일주일 연차를 쓰는 대신 2주로 쪼개어 매일 반차를 쓰는 셈이었다. 직원이 많지 않고 유동적인 체계를 가진 스타트업이라서 가능한 일이었지만, 우리 회사에서도 역시 예외적인 일이기는 했다.(당시만 해도 재택이나 원격근무에 친숙하지 않을 때라) 그렇게 해서, 회사를 다니는 중에도 나는 2주 남짓의 넉넉한 기간 동안 스웨덴에서 휴가를 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내게는 다시 스웨덴에 가기 전에 해내야할 과제가 있었다. 바로 내 빈약한 영어 회화 실력을 향상시키는 것. 1년 전 처음 스웨덴에 가서 언니와 담담네 집에 얹혀 지내는 동안, 나는 내 영어 실력이 얼마나 형편없는지를 충격적으로 실감했다. 담담은 한국어를 못하니 항상 영어로 소통해야 했는데, 담담이 우스갯소리를 건넬 때마다 잘 알아듣지 못하거나 적절히 대꾸할 말을 찾지 못해 그저 웃을 수밖에 없는 내 모습이 어찌나 한심하던지. 한국에 돌아가면 반드시 영어 회화 공부에 힘쓰리라고 다짐하며 나는 스웨덴에서의 마지막 날 담담에게 남긴 엽서에서 이렇게 호언장담했었다. '다음에 다시 올 때는 내 영어 스피킹 실력을 반드시 더 높여서 올게!' 이렇게 말해둬야 다음에 민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내가 더 열심히 하겠지라는 계산에서였다. 


스웨덴을 떠나기 전날 밤 담담에게 남긴 엽서(뒷면에 그린 그림)


그런데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지는 않고 그냥 민망하게 될 처지가 된 것이다. 무려 1년이 흐르는 동안 나는 영어 공부를 거의 하지 않았고 내 영어 회화 실력은 조금의 진전도 없었다. 



#1. 영어학원


그래서 스웨덴으로의 출국을 두 달 앞둔 4월, 나는 부랴부랴 영어회화 학원에 등록했다. 교포 출신 선생님과 영어로 레벨 테스트를 보는데 영어로 한 땀 한 땀 문장을 만들어 내뱉느라고 얼마나 진땀이 나던지. 그리고 1부터 5까지의 레벨 중에 3+를 받았다. 회사 바로 앞에 있는 학원이라서 12시부터 1시까지 점심시간을 사용하여 주 3회 수업을 들었다. 당연히 점심 먹을 시간이 없어져서, 수업이 있는 날에는 오전에 김밥을 사가서 사무실 자리에 앉은 채로 먹었다. 참 열심히 사는 직장인의 모습이 아닐 수 없었다. 지각은 좀 했지만 한 달간 한번도 빠지지는 않았다. 뿌듯. 



#2. 영어회화 스터디


하지만 그 학원 수업도 큰 도움이 되는 느낌은 아니었다. 1시간 동안 네다섯 명이 원어민 선생님과 함께 둘러앉아 그날의 토픽에 대해 글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데, 모두가 돌아가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내 실제 발화시간은 10분이나 채 될까? 한 시간 수업에 만칠천원 꼴이었는데 학원비가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한 달만 다니고 그만두었다. 대신 온라인에서 자유롭게 참여인원을 모집하는 영어회화 스터디 중에 원어민과 함께 하는 모임을 찾아 이것저것 참여해보았다. 외국인과 한국인들이 어울려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고 뒷풀이도 하는 모임, 외국인 1대1 매칭을 해주어 30분씩 파트너를 바꿔가며 대화할 수 있는 모임 등 다양했다. 학원보다 훨씬 저렴하게 더 긴 시간 영어로 말할 수 있어서 도움이 되었다. 단점은 저녁시간을 내어 모임장소까지 가야하고 강제성이 없다보니 아무래도 자주 발걸음하지는 않게 되더라는 것... 외국인 친구 하나 없이 스스로 꾸준히 영어를 쓸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전화영어도 알아보았지만 역시 짧은 통화시간에 비해 비용이 만만치 않았다. 아무래도 돈이 아깝게 느껴져서 결제까지는 가지 않았다.



#3. 언어교환 어플 


그래서 또 하나의 수단으로 나는 언어교환 어플을 이용했다. 어플로 외국인 친구를 만들어 영어로 대화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사실 1년 전 스웨덴에 다녀온 직후 영어 회화에 대한 열의가 올라왔을 때 어떤 웹사이트에서 외국인 친구를 구해본 경험은 이미 있었다. 한국에 살고 있는 독일인 여자애와 두어 번 만나 같이 한복 입고 경복궁 나들이까지 했었다. 좋은 애였지만, 특별히 죽이 잘 맞는 것은 아니었고 시간 내서 만나는 게 힘들다보니 자연스레 연락이 끊어졌다. 그래서 실제로 만나는 것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고, 어플을 통해 전세계 각지에 있는 다양한 외국인들과 채팅을 주고 받았다. 스웨덴 사람이 뜨면 더 관심이 가서 대화를 걸어보기도 했고, 또 나에게 대화를 거는 사람은 한국에 관심이 있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통분모를 가지고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저 채팅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뿐이지만 영어로 이런 저런 할 말을 쓰려다보니 매번 사전도 찾고 계속 영어로 문장을 만드는 연습을 하게 되었다. 특히 따로 시간을 내지 않고도 일상 속에서 영어와 함께 하는 느낌이 아주 좋았다. 그리고 또 놀라운 점은, 누군지도 모르고 만나볼 일도 없는 랜덤한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한 번도 이상한 변태를 만난 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정말 모두 괜찮았다. 추천함.




그렇게 막판에 열을 올려 여러가지 방법을 통해 영어에 나를 노출시키다 보니 어느새 조금 자신감이 붙었다. 물론 그거 조금 한다고 회화 실력이 엄청 늘지는 않지만, 평소에 워낙 영어를 쓰지 않다보니 조금 영어를 하는 것만으로 굳었던 머리가 한결 풀린 것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6월 15일이 되어, 나는 언니가 기다리는 스웨덴으로 날아갔다. 어쨌든 1년 전 엽서에 되도 않는 호언장담을 던져놓는 바람에 마지막에 벼락치기로나마 영어 공부에 힘썼으니, 그 장치는 제법 효과가 좋았다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말이라도 안 해놨으면 '역시 내가 그렇지 뭐'하고 1년 전의 다짐은 없었던 척, 형편없는 영어실력 고스란히 가지고 뻔뻔스럽게 스웨덴에 나타났을 텐데. 


그래서 내 영어공부의 종착지인 담담을 만나 이전보다 더 잘 대화를 나눴느냐면, 전보다는 확실히 나았다고 하겠다! 실력이 늘었다기보다는, 영어로 말하는 것을 겁내지 않게 된 덕분이었다. 그전에는 하고 싶은 말이 떠올라도 내가 이 말을 영어로 할 수 있는지를 몰라 선뜻 입을 열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열심히 그 말을 영어로 번역하다보면 그 말을 할 타이밍은 벌써 옛적에 떠나가고 없기 마련. 그런데 영어학원과 스터디, 채팅으로 영어를 많이 쓰다보니 내가 어느 정도 하고 싶은 말은 영어로 할 수 있다는 데 자신이 붙은 것이다. 여전히 담담의 농담은 바로 알아듣기 어려웠지만, 담담과 둘이 나가도 두렵지는 않을 만큼 대화가 편해진 걸 느낄 수 있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스웨덴에서의 첫 기억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