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장거리 연애를 한 지도 1년 반이다. 삶의 터전이 다른 우리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다음에 또 만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 늘 따르는 과제다.
섬이는 스웨덴 사람, 공대 다니는 학부생. 한국에 몇 번 와보고 반해서 한국살이를 꿈꾼다.
나는 서울 토박이, 직장인. 스톡홀름에 살고 있는 친언니가 있다.
첫 만남은 2019년 6월 말, 스톡홀름에서였다. 언니를 보러 스톡홀름에 여행 갔다가 우리는 만났다. 카페에서 피카를 하고, 거리를 걸으며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3시간 남짓 함께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나는 한국으로 귀국했다. 좋은 만남이었지만 현실적으로 며칠 정도 연락하다가 끊어지고 각자의 삶을 살겠거니 생각했다.
두번째 만남은 생각보다 빨리 이루어졌다. 첫 만남으로부터 두 달 뒤, 이번에도 스톡홀름. 나는 스톡홀름에 딱 나흘을 머물렀고, 우리는 그 중에 3일을 꽉 채워 만났다.(언니는 스톡홀름까지 와서 자신이 아닌 웬 남자애를 만나는 데 정신이 팔린 나에게 배신감을 느꼈다고 한다) 그때까지 줄기차게 연락만 주고 받던 섬이를 드디어 다시 만나게 되었다는 게 그렇게 기쁘고 설렐 수가 없었다. 여전히 다음 만남을 기약할 수 없었기에 관계를 확실히 하지 않았지만, 그 때부터는 이미 연인이나 다름 없었다.
세번째 만남은 한국이었다. 학생이라 돈도 없는 섬이였지만 장거리 기간이 너무 길어지게 둘 수 없어 한국에 왔다. 2020년 1월, 딱 2주를 머물렀다. 늘 스톡홀름에만 존재하던 섬이가 한국에 와서 나와 함께 서울 지하철을 타고, 삼겹살집을 가고, 내 사람들을 만나고 있는 게 신기하기도 하고 늘 그래왔던 듯 익숙하기도 했다. 주로 멀리서 영상통화로만 소통해오던 우리였지만 긴 시간을 함께 하는 것도 편안했다. 그제야 서로를 남자친구와 여자친구라고 부르기로 했고, 이 관계를 위해 더 노력해볼만 하겠다는 마음을 다졌다. 섬이가 스웨덴으로 돌아가자마자 코로나가 무섭게 번졌다.
네번째 만남은 다시 스웨덴이었다. 나는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3월에 스웨덴으로 건너가 무비자로 체류할 수 있는 최장기간인 3개월을 보낼 생각이었다. 서로를 충분히 겪고서 지지고 볶다가 헤어지는 것은 괜찮지만, 마냥 제 자리에 있다가 장거리의 시간이 너무 길어져서 관계가 흐지부지되는 것은 싫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코로나라는 사상초유의 사태로 하늘길이 끊기고 국경이 차단되어 3월에 떠나지 못했다. 긴 기다림 끝에 7월에 간신히 국경이 열렸고, 바로 스웨덴으로 날아갔다. 퇴사는 하지 않았고 대신 스웨덴에서 원격근무를 했다.
장거리에서도 안정적인 관계를 이어오던 우리는 3개월 간 제법 부딪히기도 했다. 속상한 일도 많았고 얘가 정말 괜찮은 상대인 걸까 의심되는 순간도 있었고 눈물도 있었다. 나는 상대방으로 인해 가슴에 시큰한 감정이 생기면 삭이지 않고 말하는 편이다. 섬이는 그 때마다 잘 들어주었고, 내 감정을 존중하면서 자신의 행동의 이유를 설명해주었고, 미안하다고 하고 다음번엔 더 조심하는 모습을 보였다. 갈등을 겪고 그것을 대화로 해소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더 긴 시간도 해나갈 수 있겠다는 신뢰를 쌓았다(언니가 늘 곁에서 현명한 조언을 준 것에 다시 한 번 감사!). 한국에서 2주를 보낼 때는 마냥 좋기만 했었는데, 이렇게 서로의 민낯도 더 잘 알게 되었으니 우리의 관계를 위해 참 소중했던 3개월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떠나야 하는 날이 왔고, 2020년 10월 초에 나는 귀국했다. 2주 간의 자가격리를 거쳐 한국에서의 일상으로 돌아왔다. 언제 그렇게 붙어 있었냐는 듯, 각자의 자리에서 지내는 것도 익숙해졌다. 하지만 스웨덴을 떠나는 날부터 우리에게 어김없이 주어지는 과제가 있다.
다음에는 어디서 만날래? 어떻게 다음 만남을 가능하게 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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