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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나이 Apr 09. 2022

하루하루 더 풍요롭게

게리 퍼거슨, <자연처럼 살아간다> 중에서



깊은 관찰에서 배움은 시작된다. 생물학자 레이철 카슨이 말했듯, 아이들을 가르칠 때는 아이들이 무언가를 아는 것만큼 그것을 ‘느끼는’ 것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카슨은 이렇게 말했다. “사실이 지식과 지혜를 품은 씨앗이라면,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인상과 감정은 그 씨앗이 자라는 데 꼭 필요한 기름진 토양과 같습니다.” 



이 문장을 읽고, 문득, 나는 지금까지 정보를 입력하는데 급급해하며 살아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관에 가서도 작품을 만나기도 전에 작가의 이력과 작가의 의도를 파악하고, 때로는 작품 이름을 외우는데 더 집중을 하곤 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작품 앞에 마주 서서, 그 작품을 통해 오롯이 전달되는 내 감정에 나는 얼마나 주목했던가? 자연 앞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무 이름이나 꽃 이름이 뭐지? 궁금해할 뿐, 그 꽃의 색감, 향기, 촉감, 인상이 전해주는 나의 느낌에는 관심이 없었다. 

저자 게리 퍼거슨은 보이는 것에만 의존하는 것은 신비로움을 마주하는데 방해물이 된다고 말한다. 시각은 우리를 구속하는 굴레라고 표현한다. 그러고 보면 어떤 정보를 받아들일 때 시각적인 것에 휘둘리면 안 된다는 걸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다. 특히 누군가를 만났을 때 외모나 외적인 요소로 그를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경험을 종종 하곤 한다. 

이 문장을 읽고 다시금 다짐했다. 이제는 시각 너머로 촉각, 청각, 후각 등 여러 가지 나의 감각을 동원하여 정보를 이해하고, 또 아는 것을 넘어 내 내면에서 일어나는 변화의 소용돌이를 관찰해야겠다고.  


한 문장 더) 

때로는 눈을 감고 시각적 편견을 무너뜨릴 촉각, 청각, 후각, 혹은 미각을 활용해보자. 향과 촉각, 소리는 시각보다 훨씬 자유롭기 때문이다. 눈을 감고 들장미 다발의 향을 맡을 때, 대상과 행위자의 경계는 사라진다. 매혹적인 감각만 남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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