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중에서
외부의 명령이 아니라 오로지 그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것, 이처럼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는 것, 그것은 좋은 일이었으며,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것 말고는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내면의 소리를 따르라’는 문장은 수많은 책, 철학서를 비롯해 심리학 서적, 자기 계발서 등에서 흔하게 마주하는 조언이다. 그만큼 이는 삶의 진리이며, 실천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일이구나 싶다. 그렇다면 나는 얼마나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줄 아는가, 혹은 그럴 만반의 준비 태세를 갖추고 있는가 되돌아볼 일이다.
나는 명상을 꾸준히 하면서 비로소 ‘아, 내면의 소리라는 게 이거구나’ 알게 된 것 같다. 명상을 통해 어떤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이 정말 내가 생각하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자라면서 고착된 관념의 결과인지 분별하는 훈련을 할 수 있었고, 점점 체화가 되다 보니 생각과 감정의 알맹이를 또렷하게 마주하곤 한다.
이를 테면, 내가 사표를 쓰던 순간을 예로 들 수 있겠다. 거의 20여 년 간 직장을 잘 다녔고, 비교적 조직 생활에 갈등이 없었기 때문에 이변이 없는 한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었을 것이다. 승진해서 더 많은 권한을 얻고, 꼬박꼬박 월급 나오는 삶 말이다. 하지만 당시에 나는 내면의 소리를 듣기 시작했다. 위에서 시키는 회사를 위한 일 대신에 내가 관심 있고 나의 미래를 위한 일을 하고 싶다는 강렬한 욕구. 그리고 멋진 타이틀과 고정적인 돈이 과연 내 본성을 거스르며 지켜야 할 만큼 그토록 중요한가 하는 의문. 물론 동시에 수입이 줄어도 괜찮을까?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이 무너지면 어떡해? 하는 불안과 두려움도 일어났지만, 들여다보면 불안과 두려움은 진짜 나의 소리가 아니었다.
무엇이 진짜 내 내면의 소리인가? 나는 여러 가지 내면의 소리 중에 욕구에만 주목하라고 말하고 싶다. 불안, 걱정, 두려움은 거짓이요, 나의 순수한 바람, 의지만이 진짜 내면의 소리다. 그리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만반의 준비 태세란, 그렇게 자신을 믿고 나아갈 수 있는 용기일 것이리라.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안다. 특히 진로 선택부터 사사건건 부모의 관여가 컸던 환경에서 자랐다면,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훈련이 부족하고 그 소리를 따르려는 의지도 나약할 것이다. 그래서 내면의 소리를 듣기 이전에 가장 중요한 일은 준비 태세, 즉 스스로를 믿는 용기를 지니는 것이다. 스스로를 믿기까지 오랜 마음의 훈련이 필요할 수도 있겠다.
그리하여 나는 시시때때로 확인하고자 한다. 얼마나 외부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운가, 타인의 생각이 아닌 나의 생각을 바라볼 수 있는가 확인하려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을 들여다보는 절대적 시간이 필요하다. 내가 명상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이유다.
한 문장 더)
내가 나 자신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고 있다는 것, 싯다르타가 나에게 그토록 낯설고 생판 모르는 존재로 남아 있었다는 것, 그것은 한 가지 원인, 딱 한 가지 원인에서 비롯된 것이다. 나는 나를 너무 두려워하였으며, 나는 나로부터 도망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 이제 다시는 고행자의 가르침도, 그 어떤 가르침도 받지 말아야지. 나 자신한테서 배울 것이며, 나 자신의 제자가 될 것이며, 나 자신을, 싯다르타라는 비밀을 알아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