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시작 1
더 이상 나는 초라한 혼자가 아니었다.
지금으로부터 10년 전, 2013년 10월의 나는 다시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나는 싱글에서 기혼으로, 한 생명을 잉태한 존재가 되어있었다.
자신은 독특하고 남과 다르다는 생각을 가진 경쟁자들 사이에서 특별함을 뽐내기엔 이것도 저것도 다 어중간했기에 지치고 또 지쳤던 내가 선택한 일은 결혼이었다.
내게는 마음을 나누고 휴식을 취하게 해 줄 누군가가 절실하게 필요했다.
남편을 만난 건 2012년 12월, 부천에 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통창을 사이에 두고 검은색 캐시미어 코트에 양복까지 받쳐 입은 그의 뒷모습이 보였다.
한걸음 두 걸음 내 발소리에 동그란 눈에 네모난 안경을 쓴 그도 고개를 돌린다.
"혹시 ㅇㅇㅇ씨일까요?"라고 말하며 서로를 확인했을 거다.
그는 나의 첫인상을 '무표정하다'라고 묘사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제 슬슬 인생의 희로애락과 거리를 두는 중이었기 때문이다.
육체는 시간의 흐름에 맞춰 차근차근 나이 들어갔지만 여전히 젊었던 30대 중반의 나는 이를 거의 느끼지 못하는 중이었다.
운동과 회사생활, 그리고 적절한 휴식이라는 이십 대의 어느 날부터 삼십 대 중반이 되도록 매일 똑같이 반복되 온 루틴은 마치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다.
여름의 푸르른 녹음도, 가을의 알록달록한 단풍도, 아이들의 화사한 웃음소리조차도 내게는 아주 멀리 있는 듯했다. 감히 손에 잡을 수 없는 진공상태 속을 사는 것 같았다. 겉모습이나 하는 행동은 거리의 많은 사람들과 다를 바 없지만 마음속은 공허한 상태로 나이 들어가는 중이었다. 몸이 건강하고 큰 문제없이 현재를 살고 있기에 마땅히 행복해야 하나 사실은 몹시 공허한 상태, 그 마음을 털어놓고 바꾸고 싶지만 방법을 알아낼 용기조차 내보지 못하고 그저 살고 있었다. 그렇게 언제까지나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으면 행운이 저절로 굴러오기라도 할 것처럼.
사실은 그래서 자주 슬픈 감정에 사로잡히곤 했지만 나는 나를 무심하게만 대했다.
어떤 변화도 주지 않는 삶, 두려움에 갇혀 현재를 유지하는 것만이 최선인 삶.
그런 삶은 내게 '무표정한 얼굴'을 선물했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짐작조자 귀찮은 멍한 얼굴.
남편은 다소 수줍은 편이었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사람이었다.
'사랑받으며 자란 사람' 그래서 차분하고 여유 있는 손짓으로 나를 따뜻하게 배려할 수 있는 사람.
내가 느꼈던 그의 첫인상은 그랬다.
제법 나이차이가 났지만 동갑내기 같은 사람, 나를 편히 웃게 할 수 있는 사람.
회사에서 늘 마주치는 이성 동료들과 비슷한 듯했지만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
그와 함께 있으면 자꾸 웃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방심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외모는 내 이상형이 아니었다. 계속 만난다고 해도 그를 좋아할 리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해외출장이 잦았던 그에게 그만 만나자는 통보를 하기도 전에 그는 이미 미국으로 떠나버렸다.
돌아온 후에 하고 싶은 말을 건네기로 하고 그가 돌아올 날을 기다렸다.
그 사이 그는 나이아가라폭포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내오기도 하고 유명 아웃렛에 가서 예쁜 그릇을 봤노라고 혹시 관심이 있느냐는 연락을 해오기도 했다.
그릇을 볼 줄도 몰랐고 나이아가라폭포 관광은 더더욱 몰랐던 나는 그를 통해 보게 될 새로운 세상에 대한 기대감조차 깨닫지 못했다. 줄곧 '돌아오면 그만 만나자는 말을 해야겠다'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돌아왔다.
몸 건강히 돌아온 그가 내게 던진 첫 번째 물음은 먹고 싶은 것 없느냐는 말이었다.
소박한 소비만이 미덕이라 여기며 살았던 내가 선택한 메뉴는 동네의 작은 바비큐집이었다.
아직 차가운 바람이 불던 늦은 겨울의 어느 저녁 500cc 맥주 두 잔과 숯불바비큐를 앞에 두고 나는 그에게 이제 그만 만나자는 말을 건넸다. 내 입에서 쏟아지는 많은 말들을 그저 듣고만 있던 그는 한마디 제대로 된 항변도 하지 못한 채 조용히 수긍해 주었다.
이제 다시 혼자로 돌아간다는 기분에 쓸쓸하기도 하고 후련하기도 한 마음이 된 나를 그는 끝까지 바래다주겠다 했다. 그의 손에는 미국에서 사 온 선물보따리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한사코 마다하는 내 손에 선물을 쥐어준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의 집으로 쏜살같이 내달렸다.
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는 이미 가고 없었다.
조용히 내 방으로 돌아와서 열어본 그의 선물보따리 속에는 내 선물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나의 부모를 배려한 선물들이 하나 가득이었다. 지금껏 나를 간 보고 재던 사람들과는 다른 종류의 배려가 느껴졌다. 몇 번 만나지도 않은 나를 위해 머나먼 아메리카대륙에서 이곳까지 이 많은 짐들을 사서 운반해 왔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 빚을 어떻게 갚아야 하나... 내 것을 빼앗아갈 땐 섬광처럼 빠르지만 돌려받는 순간이 되면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느려 터진 세상의 이치를 떠올리며 나는 빚을 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가득해졌다. 뭔가 잘못된 것만 같았다.
- to be continued , 다음 편에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