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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핑크 Feb 22. 2024

새 생명의 기운

아기를 가진 후의 나는 더 이상 예전의 내가 아니었다.

그와 결혼을 결심하고 난 다음은 일사천리였다.

결혼의 또 다른 이름을 지어줘도 된다면 '선택'이라고 고 싶어질 만큼 내게 결혼이라는 절차는 많은 것을 단시간 내에 결정하는 과정다.

가전을 보기 위해 들렀던 백화점 식당가에서 밥을 먹으며 살림을 구성하기 위해 드는 수많은 비용을 계산했다.

밥값이나 차비 같은 기본적인 비용조차 아끼며 살았던 지난 세월이 무색할 만큼 돈이 연기처럼 사라지는 중이었다.


은 것 하나를 사더라도 꼼꼼히 계산하며 눈빛을 빛내던 나는 피곤함 뒤로 자취를 감춰버렸다. 

눈앞에 펼쳐진 양한 옵션들 앞에 얼이 빠져버렸으므로 가능하다면 군가 대신 결정해 주기라도 바라는 마음이 되어갔다. 

판매사원이 권유하는 베스트 상품에 약간의 할인이 추가되면 수백만 원이 증발하는 기이한 경험이 반복되었다. 


그뿐인가.

허니문베이비를 가졌던 나는 임신이 한 사람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을 만큼 힘든 과정이라는 것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로맨틱하고 따뜻하게만 보였결혼은 당당히 그 민낯을 드는 중이었다.

'네가 뭘 안다고.' 하고 못마땅하게 내뱉곤 하던 부모님의 말이 무슨 뜻인지 그제야 조금 알 것도 같았다.

결혼은 그동안 성장하며 내 안에 쌓여온 가장 소중한 것들(이를테면 돈이나 건강 같은)을 오롯이 살기 위해 소비하는 과정의 첫 단추일 뿐이었다.


임신은 돌아올 수 없는 배를 타는 것과 같았다.

정확히 5주 차가 되었을 때부터 정말로 배에 타고 있는 것 같아서 차마 지도 그렇다고 서도 힘든 입덧을 시작했다.

한두 걸음 떼기도 어려워서 아침에 눈을 뜨는 사저 끔찍했던 기억이 선하다.

그 안에서 예쁜 아기가 성장하고 있다는 건 정말이지 믿기 힘들었다.

지옥이라고 하면 딱 맞을까.

나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오직 시간이 흐르기만을 기다리는 시한부 환자가 된 듯했다.


어딘가에서 받은 '나는 임산부예요'라고 적힌 이름표를 핸드백에 달고 사에 다녔다.

(방이라도 길바닥에 쓰러질 것만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디서든 임신사실을 숨기지 못했다.

지하철에서도 사무실에서도 구역질은 멈출 줄 몰랐다.

다양한 냄새 앞에 점점 창백해져 가는 나를 사람들은 타까움과 불편함에 찬 눈으로 바라보았다.

급격히 체중이 줄어서 알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살이 빠진 상태로 수개월을 다.

도무지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입덧 앞에 모두들 고개를 갸우뚱할 무렵 서서히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생기기 시작했다.

고기와 과일이었다.


음식이 입에 들어가기 시작하자 내 몸은 금세 건강한 임산부의 모습으로 변화해 갔다. 

급격히 빠져버렸던 체중은 무려 15킬로 이상이 불어 임신성 당뇨를 걱정할 정도였다.

열심히 발차기를 해대는 아기 덕분에 하루하루가 행다는 생각에도 한 번씩 빠지곤 했다.

하지만 여전히 임신은 버거운 일이었다.

호르몬의 영향으로 하루하루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지치고 피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랬으므로...

나는 아이를 어떻게 키울지에 대한 계획은 고사하고 하루살이 같은 인생을 이어가는 과업 외에는 어떤 생각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부족한 내게 약소한 월급과 약간의 여유를 누릴만한 시간을 허락해 주어서 고맙다는 생각만 가득했다.

그렇게 접시물처럼 얕은 내 내면에도 불구하고 아기 무럭무럭 잘 자었다.

예상했던 5월의 마지막날에서 일주일이나 지난 6월의 어느 날 디어 이슬이 비쳤다.

1년의 육아휴직을 거치고 나면 어린이집에 보내겠다고 호언장담하던  생명의 눈부신 자 드러났다.

태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힘껏 인상은 썼을지언정 울지  모습은 '예쁘다'는 말을 무한 반복하게 했다.

 

그 따뜻한 숨결과 작은 생명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기는 내게 세상 누구보다 강한 모성애가 있음을 알려주었다.

온 힘을 다해 이 아이를 사랑할 것이라고 누구도 강요하지 않는 맹세를 마음속으로 하고 또 하게 되었다.

오직 울음으로만 소통할 수 있는 이 작은 생명체가 내 곁에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안심이 되었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남편을 얻었을 때와는 전혀 다른 기적이 내게 일어났다고 느꼈다.

아직 눈도 제대로 못 뜨는 아기를 통해 내 안에 잠자던 본능에 따른 혈육의 정을 배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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